[인터뷰] ‘대세 배우’ 정해인 “인기? 맥주 거품과 닮은 것 같더라고요”

입력 2018-06-04 07:40



배우 정해인이 ‘대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정해인은 지난달 19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극본 김은/연출 안판석 이하 예쁜 누나) 속 서준희 캐릭터를 맞춤옷을 입은 듯 완벽히 소화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드라마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어요. 보통 작품이 끝나면 허전함과 시원섭섭함, 후련함이 들기 마련인데, ‘예쁜 누나’는 그런 말로는 표현하기 부족해요.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그만큼 이 작품에 집중하고 이 작품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작품이 끝나면 스스로를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한데, ‘예쁜 누나’가 끝난 뒤로는 아직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어요. 밀린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하루도 못 쉬었거든요. 그리고 7월에 일본에서 ‘예쁜 누나’가 방영해서 엊그제 3박 4일로 일본에도 다녀왔고요. 바쁘게 열심히 살면 서준희가 잊힐 줄 알았는데 문득문득 크게 타격이 오더라고요.”

‘예쁜 누나’는 그냥 아는 사이로 지내던 두 남녀 서준희(정해인)와 윤진아(손예진)가 사랑에 빠지면서 만들어간 ‘진짜 연애’를 그려냈다.

“드라마를 하면서 사랑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됐어요.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할까요. 우선 상대와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해요. 서로 원하는 건 같지만 표현 방식은 달라요. 물론 눈빛만 봐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걸 피부로 느끼게 하려면 많은 생각을 공유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해요. 무엇보다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진아 누나가 준희의 손을 잡았을 때의 용기, 준희가 제주도로 내려갔던 용기처럼요.”

‘예쁜 누나’는 현실 속 연애가 주는 설레임, 행복의 빛나는 순간은 물론 분노, 상처, 안타까움, 씁쓸함 그리고 그 끝에 마주하게 되는 이별이라는 어둡고 아픈 순간들까지도 모두 담아내며 시청자들을 웃고 울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리얼함을 담아내는 이 작품의 중심에 정해인이 연기하는 서준희가 있었다.

“윤진아는 무척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그에 비해 서준희는 사랑밖에 모르는 판타지적인 면이 있었고요. 준희는 결정적인 순간에도 실리를 따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봐도 그 점이 멋있었어요. ‘서른한 살의 남자가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정해인은 ‘예쁜 누나’로 멜로 연기도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윤진아를 향한 직진 사랑을 펼친 것. 정해인은 사랑에 빠진 모습부터 이별 후까지 다양한 감정선을 소화하며 호평 받았다. 윤진아가 힘들 때마다 누구보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서준희는 누나들의 마음을 제대로 흔들었다.

“극중 윤진아가 ‘내가 좋은 이유가 뭐야?’라고 묻는데 서준희가 대답을 못해요. 결국 ‘많은 이유가 없어. 그냥 윤진아라서’라고 말하는데, 제가 손에 꼽게 좋아하는 대사에요. 실제로도 그렇잖아요. ‘네가 좋은 여섯 가지 이유가 있어’라며 연애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냥 좋은 거죠. 좋으니까 장점도 더 많이 보이는 거고. 마지막 회에 제주도에서 진아 누나를 만난 준희가 ‘내 우산 어딨어?’라고 물어보는데, 저는 그게 많은 의미를 함축한 시적인 대사라고 생각해요. ‘네가 너무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는 말을 사소한 소품 안에 담아서 묻는 거잖아요. 준희를 보여줄 수 있는 대사 중 하나라고 봤어요.”




정해인과 손예진은 비주얼부터 연기까지 완벽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며 ‘예쁜 누나’에 힘을 보탰다. 두 사람이 보여준 케미는 역대급이었다. 사랑스러운 연상연하 커플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며, 진짜 현실 어딘가에 진아와 준희 커플이 존재할 것 같은 설렘을 선사했다.

“‘안 사귀는 거 알아. 그런데 너무 잘 어울리니까 한 번 만나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면서 진심으로 응원해 주시더라고요. 그 때마다 뿌듯했어요. 픽션이지만 진심을 담아서 연기하려고 했거든요. 그게 전달된 것 같더라고요. 손예진 선배님과의 연기가 처음에는 엄청나게 부담스러웠어요. 어깨가 무거웠죠. 저는 첫 주연인데 선배님의 커리어는 대단하잖아요. 저의 부족함 때문에 선배님이 쌓아놓은 탑에 금이 갈까봐 걱정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게 연기에 묻어 나왔나 봐요. 하루는 예진 선배님이 문자 메시지를 주셨어요. ‘해인아. 너는 서준희 그 자체니까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네 마음대로 해’라고요. 그게 제겐 어마어마한 힘이 됐어요. 촬영 내내 그 메시지를 봤죠. 후배 혹은 상대 배우를 떠나서 저를 사람으로서 존중해주신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덕분에 더 좋은 호흡이 나온 것 같아요. 예진 선배님을 보고 제가 갖고 있던 모든 편견이 깨졌어요. 사실 예민하고 까다롭고, 어딘가 모르게 무서울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털털하고 소박하고 웃음도 굉장히 많아요.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태프들과 편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이 가져야 할 현장에서의 태도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어요.”

‘예쁜 누나’의 전개를 두고 시청자 사이에선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준희와 윤진아의 다시 시작하는 사랑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며 2개월여 간의 여정을 끝냈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다시 만나 사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좋았어요. 두 사람이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잖아요.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작품 안에선 3년이지만 실제론 이틀 간격으로 찍었어야 했거든요. 1년 반이나 2년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만큼 서로를 많이 그리워하고 사랑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예쁜 누나’는 정해인과 손예진의 환상적인 케미스트리, 현실적인 회사 생활 이야기로 인기를 모았다. 최고 시청률 7.281%를 기록하는가 하면, TV 화제성 및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제 정해인 앞에는 ‘멜로장인’이나 ‘국민 연하남’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도망치고 싶어요. 감사하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다음 작품을 하면서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이고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수식어라는 건 작품이 주는 타이틀이잖아요. 다음 작품에서 제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수식어는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심을 잡는 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예쁜 누나’를 사랑해주신 분들이 제게 많은 수식어를 붙여주셨는데, 거기에 너무 빠져 있다 보면 중심이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맥주를 좋아해요. 그런데 인기가 맥주 거품과 닮은 것 같더라고요. 맥주를 따라놓고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거품이 사라져 있잖아요. 그것처럼 너무 인기를 만끽하거나 심취해 있으면 본질을 자꾸 잊게 돼요. 그래서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을 딱 절반만 느끼려고 해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2014년 드라마 ‘백년의 신부’로 데뷔한 정해인은 ‘삼총사’, ‘블러드’와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에 출연했다. ‘응답하라 1988’과 ‘도깨비’에서 각각 혜리와 김고은의 첫사랑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부터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까지 3연타를 달성했다. 단편 영화 ‘훈련소 가는 길’과 상업 영화 ‘장수상회’의 단역, ‘임금님의 사건수첩’ 조연, 독립 영화 ‘서울의 달’, ‘역모-반란의 시대’, ‘흥부’ 주연 등을 통해 스크린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연기를 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 없어요,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고, 한 순간도 조급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차분하게,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묵묵히 걸어 나갈 계획이에요.”

‘예쁜 누나’를 통해 배우로서 입지를 공고히 다진 정해인. 연하남 준희의 사랑스러움과 때때로 보여주는 남자다움을 자신만의 매력으로 표현해내며 ‘타이틀 롤’ 역할을 톡톡히 해낸 그가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너무나도 행복하고 감사한 나날이라서 힘든 건 모르겠어요. 지금처럼 말하는 시간도 행복하고요, 작품 때문에 일본에 가서 프로모션 활동을 하는 것도 행복해요. 긍정적으로 느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행복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어요. 몇 개의 시나리오를 보고 있어요.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차기작을 결정하려고 해요. 안판석 감독님께서 저에 대해 ‘연기를 정말 사랑하는 친구이고 자기 외모가 소비되는 것을 싫어한다’고 인터뷰하신 걸 봤어요. 정말 감사했죠. 감독님 말씀처럼 연기에 대한 애착이 커요. 연기로써 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