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역주행 사망사고' 운전자, "기억 안난다"

입력 2018-05-30 22:20


새벽 시간에 만취 상태로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다 택시를 들이받아 2명을 사상케 한 20대 운전자가 사고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술을 마시고도 도대체 왜 운전대를 잡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 이뤄지지 않아, 어이없이 목숨을 잃고 크게 부상한 택시승객과 택시기사만 억울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30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 운전 치사상) 및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노모(27·회사원)씨를 형사 입건했다.

노씨는 이날 0시 36분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양지터널 안 4차로 도로 2차로에서 자신의 벤츠를 몰고 역주행을 하다가 마주 오던 조모(54)씨의 택시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그는 면허 취소 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176%의 상태로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택시 뒷좌석에 탄 승객 김모(38)씨가 숨졌고, 조씨는 가슴과 팔 골절, 장 부위 파열 등의 부상으로 위중한 상태다.

노씨는 사고 전날인 29일 오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 수원시 영통구에서 음주 운전을 시작해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이어 사고 당일인 30일 0시 25분께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덕평 IC 부근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유턴한 뒤 7㎞가량을 역주행하다가 사고를 냈다.

골반 골절로 병원 치료 중인 노씨는 사고 상황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면서도 "(술을 마신 뒤) 대리운전 기사를 부른 기억이 있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번 사고로 숨진 김씨는 경기도에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외근 후 밤늦게 택시를 타고 거주지로 돌아오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남 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아내의 남편이자, 9살·5살 난 어린 두 자녀의 아버지로, 평소 근면 성실하게 일하고 주말이면 가족들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소중하게 가꿔온 주말부부의 단란한 가정이 무책임한 음주 운전으로 인해 일순간에 풍비박산이 난 셈이다.

경찰은 최대한 빨리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아울러 벤츠와 택시 내 블랙박스를 수거해 자세한 사고 경위를 밝힐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자신의 거주지 주변 IC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자 차를 돌려 역주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조사를 마치는 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끊이지 않는 음주 사망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술에 관대한 문화를 꼽는다.

정월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우리나라는 술과 음주운전에 대해서 매우 관대한 편"이라며 "자신과 주변의 경험에 비춰 술을 마시고도 '이 정도는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을 하고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술자리에는 아예 차를 가지고 가지 않도록 하고, 술을 한 잔이라도 마셨다면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는 등 운전자들의 인식은 물론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