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시위 모인 1만명 여성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입력 2018-05-19 22:27


포털사이트 다음 '불법촬영 성 편파수사 규탄 시위' 카페를 통해 모인 여성 1만2천여 명(경찰 추산 1만 명)은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이들은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반발하며 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시위는 '여성'이라는 단일 의제로 국내에서 열린 사상 최대 규모 집회로 알려졌다. 최근 여성 집회 참가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지난 3월 열린 미투 집회는 2천명(경찰 추산 1천500명), 강남역 살인사건 관련 집회는 2천500명(경찰 추산 1천명)에 그쳤다.

1만2천여 명이 운집하면서 시위 참가자들이 혜화역 2번 출구 앞 '좋은 공연 안내센터'부터 방송통신대학까지 200m가량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경찰은 당초 시위 참가자를 500명으로 예상했으나 시위 당일 참가자들이 대거 몰리자 집회를 관리하는 데 당황한 모습이었다.

시위 장소도 처음에는 인도에 한정됐지만, 시작 시각인 오후 3시께 이미 2천명이 몰리면서 버스전용차선을 통제해 시위 장소를 넓혔고 30분 후에는 버스전용차선 옆 차선까지 통제구간을 늘려야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참가자가 늘어나면서 혜화역 2번 출구 일대가 마비되자 경찰은 오후 4시께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동로터리 방향 4차선을 전면 통제했다.

발언대에 선 운영진은 "불법촬영을 비롯한 성범죄에 대한 경찰, 검찰 그리고 사법부의 경각심 재고 및 편파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회 전반에 성별을 이유로 자행되는 차별취급 규탄을 위해 모였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빨간 옷을 입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다.

이들은 "남자만 국민이냐 여자도 국민이다", "동일범죄 저질러도 남자만 무죄판결", "워마드는 압수수색, 소라넷은 17년 방관"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 '동일범죄·동일처벌'이란 문구가 적힌 막대풍선을 흔들거나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던 거네', '또 몰카찍나' '편파수사 부당하다'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기도 했다.

발언대에 올라온 한 참가자는 그동안 남성 몰카 범죄자들에게 선처가 이어졌다며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남성 성범죄자들을 줄줄이 읽어내려갔다.

그는 "노출이 심한 여성을 몰카 찍는 것은 처벌 대상도 아니다"라며 "여성을 상습 성추행하고 몰카 찍은 20대 집행유예, 소개팅녀 알몸을 친구에게 유포한 의사도 집행유예"라고 소리쳤고, 그때마다 참가자들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고 흔들며 야유했다.

이들은 경찰 캐릭터인 '포돌이' 형상을 한 박을 깨뜨리고, 대형 현수막에 그려진 '법전'에 물감을 던지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참가자들은 대다수 질서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위가 가열되면서 곳곳에서는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시위 중간 자신들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남성이 보일 때마다 손가락으로 당사자를 가리키며 "찍지마, 찍지마"라고 외쳤다.

시위 도중 운영진이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집회를 생중계하고 있고, 염산 테러를 계획한다는 글이 올라왔다는 소식을 전하자 함께 고함을 치며 분개하기도 했다.

시위 시작 전에는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남성이 참가자들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으려다 물세례를 맞기도 했다. 이 남성은 경찰에 의해 시위 장소 밖으로 끌려 나왔다.

한편 이날 오후 8시에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직후 구성된 '불꽃페미액션'이 신촌역에서 시위를 열어 여성혐오 근절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들은 홍대 몰카 사건과 관련해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여성의 가해에 경찰은 이례적인 태도와 수사방법을 보였다"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가해는 몰카, 폭행, 살인을 막론하고 관대한 처벌이 내려지지만, 그 반대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