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삶' 원로배우 최은희 별세, 향년 92세
신상옥 감독과 한국영화 중흥기 이끌어…납북·탈출 등 파란만장한 삶
고 최은희 누구? 영화 같은 삶 봤더니.. 결혼→납북→탈출까지
김정일과 사진찍는 최은희·신상옥 부부 재조명
최은희 별세 소식이 영화계를 큰 슬픔에 빠지게 했다. 배우 최은희가 지난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한 것. 향년 92세.
최은희 장남인 신정균 감독은 최은희가 전날 오후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은희는 지난 2006년 4월 11일 남편인 신상옥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했다. 별세하기 직전까지 최은희는 서울 화곡동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아왔다.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이후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최은희는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올랐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최은희는 1954년 결혼한 뒤 부부가 함께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최은희는 배우이자, 우리나라의 세 번째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다.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는 등 최은희는 영화계의 거목으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엄앵란은 남편인 신상옥 감독과 함께 영화제작사 신필름을 운영하고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후진을 양성한 최은희를 "길이 기념해야 할 배우", "집념의 여인"이라고 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신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는 그러나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된다. 이후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다.
최은희 등 두 사람은 이후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신 감독과 최은희는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한다. 이후 10년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
이처럼 16일 향년 92세의 나이로 타계한 원로배우 최은희는 한국 영화계의 거목이자, 삶 자체가 한 편의 영화였다는 점에서 영화팬들은 그야말로 슬픔에 빠졌다.
최은희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납북과 탈출 그리고 수백 편에 이르는 영화 출연과 제작·연출까지. 고인의 인생은 드라마틱한 사건의 연속인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애도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최은희는 자서전을 통해 "사람들은 내게 영화와 같은 삶을 산 여배우라고 말한다. 나는 평범한 여자에 불과한데 어쩌다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됐을까. … 나는 분단국의 여배우로서, 신 감독은 분단국의 영화감독으로서 조국의 비극에 희생양이 되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배우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연기를 통해 타인의 삶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며 살면서 모든 이들의 인생이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기술했다.
한편 유족으로는 신정균(영화감독)·상균(미국거주)·명희·승리씨 등 2남 2녀가 있다.
고 최은희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3호실(17일 12호실 이전 예정), 발인은 19일 오전이며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로 정해졌다.
최은희 이미지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