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남주가 만난 마흔일곱 살 고혜란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에 고급감이 더해진 거죠”

입력 2018-04-09 09:52



배우 김남주가 JTBC ‘미스티’를 통해 대체불가 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김남주는 지난 2012년 방송된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 약 6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 압도적인 열연으로 극을 쥐락펴락했다. 또 다른 인생 캐릭터를 탄생시킨 것이다.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었어요. 그러던 중 ‘미스티’를 받은 뒤 모든 걸 접고 40대의 열정을 쏟아야겠다고 결정을 내렸죠. 기다려왔던 작품이었어요. 나이 많은 여배우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뿌듯했어요.”

매회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였던 ‘미스티’는 지난 3월 24일 전국 8.5%(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 자체 최고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미스티’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앵커 고혜란(김남주 분)과 그의 변호인이 된 남편 강태욱(지진희), 이들이 믿었던 사랑의 민낯을 그린 드라마다. ‘미스티’의 성공에 있어서는 김남주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시청자 반응, 기사로도 이렇게 폭발적인 극찬을 받은 것은 처음이에요. 그것만으로도 됐어요. 상투적인 말이지만 진심이에요. JTBC에 시상식이 없어 아쉬워요. 하나 만들어주세요.(웃음) 백상 후보에는 올랐더라고요. 촬영 현장에서는 ‘내 인생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했죠. ‘이제 연기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캐릭터, 이런 작품이 제 나이에 얼마나 들어올까 싶다는 의미죠. 쉽게 만날 수 없어요. 솔직히 ‘미스티’를 하면서 욕심이 생기긴 했죠. 50대 초반까지는 이런 역할을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연기하면서 스스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았어요. 저는 아줌마 그룹에 들어가 있는 배우잖아요. 결혼 안 한 연기자들과는 다른. 그 그룹 내에서 개척자가 된 기분도 들어요.”




김남주는 고혜란의 입체적인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극 초반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는 냉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갑작스런 시련으로 인한 불안과 초조함, 남편 강태욱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모습까지 고혜란의 다채로운 심리를 깊이 있게 그려내며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 성공과 야망을 좇는 고혜란은 카리스마와 고혹미가 넘쳤다.

“사실 처녀시절부터 해보고 싶었던 앵커 역할, 팜므파탈 캐릭터를 이제야 만났어요. ‘내조의 여왕’(2009)을 하기 전에 팜므파탈 캐릭터를 너무 하고 싶어서 ‘내조의 여왕’을 세 번 거절했었어요. 그런데 나이 먹고 ‘미스티’가 저에게 왔죠. 고혜란이 37세인데 제 나이 48세에 드라마가 끝난 거예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서른일곱 살에 만난 고혜란과 마흔일곱 살에 만난 고혜란은 깊이감이 달랐을 거 같아요. 저는 20대 때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가진 배우였어요. 40대인 지금은 고급감이 더해진 거죠. 그 고급감이란 건 연륜, 깊이를 의미하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직접 느꼈어요.”

특히 최종회에서 “지금 행복하세요?”라고 묻는 질문에 미소를 띠고 눈물을 보이는 모습에서는 고혜란의 비극적인 삶을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표현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와 더불어 김남주는 고혜란을 통해 자신을 위협하는 후배에게는 논리적인 일침을, 곤경에 빠뜨리는 이들에게는 시원한 한 방을 선사하며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그려냈다. 어설프거나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 아닌 소신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나아가는 ‘걸크러시’ 고혜란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엔 고혜란이 악녀여서 좋았어요.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설정으로 준비를 했어요. 일반적인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시청자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우리 작가도 대단하고요. 이미 16부 대본이 나와 있었고 지진희(강태욱 역)가 범인인 것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요. 저는 최고의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김남주는 실제 앵커 못지않은 정확한 발음으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였다. 걸음걸이와 생활 습관을 바꾸고 5개월 동안 닭고기, 계란을 먹으며 체중을 감량하는 등 김남주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었다.

“압도적인 분량만큼이나 비주얼적인 부분이 부담스러웠어요. 드라마 할 때 47kg대를 유지하다 46kg까지 내려갔어요. 드라마 찍고 먹었더니 50kg를 회복했어요. 드라마 하면서 참았던 한풀이를 했어요. 한식도 먹고 매운 것도 엄청 먹었죠. 원래 매운 음식을 좋아했는데 나트륨 때문에 안 먹었었어요. 닭발, 족발, 골뱅이 소면 같은 음식을 다 먹었어요. 신랑이랑 술도 많이 마셨죠,”




김남주는 지금까지 출연하는 드라마 속 의상부터 가방, 메이크업까지 매회 화제를 모으며 완판 신화를 기록, 뭇 여성들의 뮤즈로 떠올랐다. ‘미스티’에서도 ‘고혜란표 스타일링’으로 매회 화제를 모았던 그녀는 오피스룩부터 일상 패션까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 소화해내며 다시 한 번 여성들의 ‘워너비’임을 입증했다.

“의상은 신에 맞게 결정해요. 뉴스를 할 때는 세보여야 하니까 슈트를 입고 시어머니 혹은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여성스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내는 의상을 선택했어요. 의상은 연기자들한테 많은 도움을 줘요.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연기할 땐 스스로도 많이 부담스러워요.”

‘미스티’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배경에는 남편 김승우와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자녀들도 큰 몫을 했다. 김남주에게 ‘미스티’ 대본을 읽어보라고 권한 것은 김승우였다. 파격적인 멜로 장면이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았다.

“야한 장면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에 대해선 거리낌이 없더라고요. ‘미스티’를 온전히 작품으로 봤으니까요. 김승우는 ‘이건 반드시 네가 해야 할 작품이다, 잘 할 것 같다’고 했어요. 이 드라마 아니었으면 딸이 한 말처럼 ‘엄마 시어머니 역할 할 나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이 든 연기자들이 설 수 있는 드라마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나이에 맞게 순응하며 살고 있는데 ‘미스티’로 나이의 한계를 연장했어요. 저는 운이 좋은 연기자인가 봐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기 전까지는 고혜란을 남겨놓고 싶을 정도로 고혜란보다 좋은 캐릭터를 만날 수 없을 거 같아요. 만나기 쉬웠다면 ‘미스티’를 하기까지 6년이 걸리진 않았겠죠.”

이처럼 김남주는 ‘미스티’를 통해 성공적인 안방극장 복귀를 할 수 있었고,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차기작은 뭘 해야 할까요. 고혜란이 너무 강렬해서 저 스스로도 굉장히 부담되거든요. 다음에는 쇼킹하게 사극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근데 시청자분들이 저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굳이 버릴 필요는 없죠. 마음에 드는 작품이 기적처럼 바로 나타난다면 바로 찾아뵐 거 같아요. 저의 팬들이 내 재능을 썩히지 말라고 해줘서 고마웠거든요.”

(사진제공 = 더퀸A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