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초 인질극, 50대 경찰이 제압했다

입력 2018-04-02 20:17


2일 서울 서초구 방배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인질 사건의 범인 양모(25)씨는 아무런 제지 없이 학교 건물에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까지 경찰 조사와 학교 측 설명에 따르면 양씨는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정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보안관은 "방배초 졸업생인데, 졸업증명서를 떼러 왔다"는 양씨의 말을 그대로 믿고 들여보내 줬다. 신분증도 확인하지 않았다.

서류발급이나 민원업무를 위해 학교에 방문한 사람에 대해서는 학교보안관이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확인한 뒤 일일방문증을 발급해야 하지만 이를 어긴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양씨는 재학증명서를 발급해주는 행정실을 지나쳐 그 옆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는 여교사 1명과 행정직원 1명, 그리고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학급 물품을 가지러 온 학생 6명이 있었다.

11시 33분께 교무실에 들어간 양씨는 4학년 여학생 A(10)양을 붙잡아 흉기를 들이댔다. 이어 "기자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학교는 11시 40분께 교실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내용의 방송을 하는 한편, 교감이 직접 양씨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양씨는 피해 여학생에게 "미안하다"고만 했을 뿐, 자신의 요구사항만 반복해서 말했다.

학교 측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시각은 11시 47분이었다. 3분 뒤인 11시 50분께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교무실에 있던 교사와 직원을 내보내고 교무실 밖 복도를 통제했다.

방배경찰서 이수지구대 정근하(56) 경위는 복도에 서서 양씨와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집이 어디냐", "학교, 군대는 어디 나왔냐" 등 질문을 던지며 양씨를 안심시키려 했다. 또 담배를 피우라 권했고, 실제 양씨는 교무실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양씨는 인질극을 벌이면서 "군대에 있을 때 상사에게 욕을 먹어서 정신병이 생겼다"는 등 횡설수설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는 몇 차례 뇌전증(간질)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양씨는 '뇌전증 장애 4급'의 장애인이었다.

경찰은 인질로 잡힌 학생 안전을 우려해 양씨의 동의를 얻고서야 오후 12시 20분께 물을 종이컵에 담아 줬다. 양씨는 경찰이 멀리 물러나고서야 문간에 놓인 종이컵을 가져갔다.

이어 경찰은 12시 33분께 "점심시간 지났는데 아이가 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빵과 우유를 주겠다고 했고, 양씨는 동의했다.

정 경위는 빵 4개와 우유 2개를 들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이어 양씨 앞 책상 위에 빵과 우유를 놓았다.

정 경위는 양씨에게 "아이가 빵 포장을 못 뜯으니 내가 까주겠다"고 말하며 포장을 벗겨 A양에게 건넸다. 이 순간에도 양씨는 흉기로 A양의 목을 위협하고 있었다.

정 경위는 이어 우유를 종이컵에 따라 양씨에게 건네주며 A양에게도 우유를 따라 주라고 요청했다.

정 경위가 뒷걸음질 치며 뒤로 물러나자 양씨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흉기를 책상 위에 놓았고, 정 경위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정 경위는 옆에 있던 교직원 업무용 노트로 흉기를 쳐내 양씨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이어 바로 양씨를 덮쳤다. 양씨가 흉기를 재차 집으려고 하면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복도에서 대기 중인 다른 경찰관까지 합세해 범인을 제압했다. 이때가 12시 43분, 1시간가량의 숨 막히는 인질극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양씨가 간질 증상을 계속 보였는데 물과 빵, 우유를 주니 틈이 생겼고, 경찰이 덮쳤다"고 전했다.

신미애 방배초 교장은 "(신분증 확인 안 한 적이) 그동안 없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그렇게 됐다(확인하지 않았다). 양씨가 젊어서 보안관이 놓친 것 같다"면서 "매뉴얼을 어긴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