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희미한 곳에서 오래 생활하면 뇌 구조에 변화가 생겨 기억력과 학습능력 등 뇌 기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다.
빛이 인간의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은 여러 개 있다. 교실과 사무실, 병동 등의 조명을 밝게 했더니 학생과 건강한 성인, 치매 초기 환자들의 인지기능 검사 성적이 나아졌다는 것 등이다. 이는 비교 관찰 연구결과들이다.
그러나 실제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인간의 뇌를 함부로 직접 실험 대상으로 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간대학 안토니오 누녜스 교수팀은 동물을 이용해 빛이 뇌에 비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실험에 사용된 동물은 일명 '아프리카(또는 나일) 풀밭 쥐'라는 설치류다. 야행성인 일반 쥐와 달리 이 설치류는 인간처럼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잔다. 연구팀은 이 쥐들을 가둔 채 매일 12시간씩 조명을 켜고 꺼 낮과 밤에 같은 환경을 만들어 4주 동안 살게 했다. 동시에 이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낮 동안의 조명을 한쪽엔 환하게 해줬고(1천룩스), 다른 쪽은 희미하게(50룩스) 조도를 낮췄다.
연구팀은 환한 쪽은 맑은 날과 유사한 조도, 흐린 쪽은 미국 중서부 지역 겨울철 구름이 많이 낀 날 또는 이럴 때 통상적인 실내 조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실험 시작 때와 4주 후에 각각 인지기능검사를 한 결과 희미한 조명에서 생활한 쥐들의 경우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해마의 능력이 30% 떨어졌다.
또 수중미로실험으로 측정한 공간기억 성적도 현저하게 낮아졌다. 이는 사람들이 쇼핑몰이나 영화관 등에 몇 시간 머물다 붐비는 주차장에 왔을 때 주차장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과 유사하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뇌 속의 변화를 살펴본 결과 흐린 불빛에 노출된 쥐들은 해마 속에서 분비되는 '뇌 유도 신경영양인자'(BDNF)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CA1이라는 지점에서 크게 감소했다. 아울러 수상돌기척추밀도와 첨단수상돌기 등도 줄었다.
연구팀은 이는 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 즉 신경세포 간의 '대화와 소통'이 줄어들었음을 뜻하며 이로 인해 해마의 학습 및 기억능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라면서 "희미한 불빛이 뇌를 멍청하게 만드는 셈"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흐린 불빛에 살던 쥐들을 밝은 조명 아래서 4주 동안 살게 하자 인지기능 성적 등이 원래대로 회복됐다.
흥미로운 건 빛이 직접 해마에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빛이 눈을 통과한 뒤 뇌의 다른 부위들에 먼저 작용한 다음 연쇄 영향이 일어난다는 걸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 부위 가운데 오렉신이라는 펩타이드(아미노신 결합체)를 생산하는 해마 속의 신경세포 다발에 주목하고 후속 연구에 착수했다. 이 펩타이드는 뇌의 여러 기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연구팀은 흐린 조명에 오래 노출된 쥐에게 오렉신을 투여하면 밝은 빛에 노출되지 않고서도 인지기능이 회복될 수 있는지에도 관심이 있다.
이런 일련의 연구는 녹내장이나 망막퇴화 등 안구질환으로 눈을 통해 빛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인과 환자들의 인지기능 개선이나 악화 방지 등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자금 지원을 받은 이 연구결과는 학술지 '해마'(Hippocampus) 최신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