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의 미래...다음 수순은 화폐개혁? -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8-02-26 09:42
작년 초 1000달러를 밑돌던 비트코인 가격이 작년 12월 들어서는 19000달러를 넘어 20000달러에 육박했다. 수익률만 18배가 넘었다. 한 뿌리 가격이 1년 중산층 생활비의 10배를 웃도는 수준까지 올랐던 17세기 네덜란드 튤립가격보다 더 오를 정도로 투기 광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새해 들어서도 가상화폐 열풍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질서까지 형성되고 있다. 가상화폐 시장으로 자금의 대이동(great rotation)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전통적인 자산시장에 변화가 감지된다. 법정화폐 시장의 미국 달러화처럼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비트코인 중심으로 질서가 잡혀가고 있다.

미세스 와다나베도 새롭게 등장했다. 와다나베 부인은 엔화를 차입해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하는 일본 여성을 통칭해서 부르는 용어다. 미세스 와다나베는 엔화를 차입해 크립토커렌시, 즉 가상화폐과 같은 암호 화폐를 한국과 같은 비트코인 거래가 활발한 국가에서 매입해 차익을 겨냥하는 일본 남성을 말한다.

실체가 없고 공식화되지 않는 가상화폐에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것은 금융위기 이후 돈일 너무 많이 풀렸고 이를 회수하는 출구전략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이 거품이 우려될 정도로 너무 올라 대체자산을 찾는 과정에서 인터넷, 모바일 등의 급진전으로 가상화폐의 매력이 부상한 것도 한 몫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이 열광하는 것은 가상화폐 가격 움직임이 냄비 속성이 강한 국민성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상화폐의 경우 공급의 가격탄력성이 완전 비탄력적이어서 수요가 증가해 수요 곡선이 우측으로 이동하면 가격이 급등(sky rocketing)하고, 반대의 경우 수요곡선이 좌측으로 이동해 순간 폭락(flash crash) 현상이 발생한다.

초기 호기심에서 관심을 끌고 이내 곧 사라질 것으로 봤던 각국이 비상이 걸렸다. 이제 방치하기에는 가상화폐의 위상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거래액은 시가총액 세계 19위인 골드만삭스를 넘어섰다. 특히 한국은 세계 비트코인 거래액의 21%를 차지하고 거래인구도 300만 시대를 맞았다.

위기 조짐도 발생하고 있다. 2017년 6월 이더리움 가격과 9월 영국의 비트코인 펀드가 95% 정도 폭락하면서 ‘마진 콜(margin call·증거금 부족)’과 ‘드로우다운 로스(drawdown loss·대손실)’이 잇달아 발생했다. 10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경험한 것처럼 마진 콜을 응하는 ‘디레버리지(deleverage·기존 자산회수) 과정에서 다른 자산시장으로 전염될 가능성도 높다. 가상화폐발 금융위기 우려가 제기되는 이 때문이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각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과 같은 신흥국은 적극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는 가상화폐 대책에서 거래금지(청소년), 시세차익에 대한 과세,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등과 같은 강력한 대책을 발표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은 신흥국과 달리 제도화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2017년 12월 12일에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는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상장했다. 첫 날에는 서킷 브레이크가 발동되는 등 불안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비교적 잘 정착되는 분위기다. 같은 달 18일에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도 상장됐다. 올해 2분기에는 나스닥 시장에도 비트코인이 상장될 예정이다.

선진국은 가상화폐와 같은 종전에 볼 수 없었던 현안에 대한 대책을 세울 때 시장 움직임을 중시한다. 일본과 영국은 법정화할 계획을 선언했다. 미국은 달러화와 충돌하는 문제로 법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크게 규제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놓는 불간섭 원칙을 지키고 있다.

모든 국가를 아우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시틴 라가르도 총재는 “이제 가상화폐를 법정화하는 문제를 검토해야할 때가 됐다”며 “조만간 IMF의 정식 논의과제로 선택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입장을 대변하고 각국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윌리엄 더블리 뉴욕 연준 총재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신흥국과 선진국의 대책에 있어서 서로 다른 방향을 채택하는 것은 가상화폐가 갖고 있는 양면성 때문이다. 투기 광풍, 금융 불안 등과 같은 부정적 측면을 우려하는 신흥국은 규제를 하는 대신 4차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블록체인’이라는 가상화폐 핵심기술 등을 주목하는 선진국은 법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블록체인은 블록(block)을 잇따라 연결(chain)한 모임을 뜻한다. 블록에는 일정시간 동안 가상화폐 거래내역이 담겨있다. 이를 체인으로 묶은 것처럼 연결해 인터넷에 접속된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에 저장한다. 모든 정보를 슈퍼컴퓨터(서버) 한 곳에 저장해 언제든지 해커의 공격을 받거나 오류가 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응용분야가 무공무진하다. 이 때문에 JP모건과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으로부터 월마트와 같은 유통사, 세계 최대 해운회사인 머스크에 이르기까지 블록체인을 상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흥국이 단기적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선진국의 움직임을 따라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상화폐 앞날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논쟁이 있다. ‘과연 화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비트코인이 달러보다 낫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비트코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은 수표를 만드는 종이에 가치가 있다“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말했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단위인 ‘비트(bit)’와 동전(coin)을 합친 용어다. 2009년 비트코인을 처음 개발한 나카모도 사토시라는 가명의 프로그래머는 빠르게 진전되는 온라인 추세에 맞춰 갈수록 기능이 떨어지는 달러화, 엔화, 원화 등과 같은 기존의 법화(法貨·legal tender)를 대신할 새로운 화폐를 만들겠다는 발상에서 비트코인을 개발했다.

가상화폐가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거래 단위, 가치저장 기능, 회계단위 등의 본래적 기능을 다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요건을 갖춰다 하더라도 국민의 보편적인 화폐로 정착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돼야 한다. 공식적으로 기존의 화폐를 가상화폐로 대체하는 화폐개혁도 단행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각국 국민의 화폐생활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변하는 현금 없는 사회가 닥치고 있는 점이다. 오히려 국가의 공식적인 화폐인 법화를 갖고 있으면 부패와 탈세 등의 혐의로 의심받는, 즉 하버드대 케네스 로코프 교수가 주장한 ’현금의 저주(curse of cash)’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통화정책 여건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종전의 이론과 관행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함에 따라 통화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고 있는 점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가상화폐 확산’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가상화폐를 누가 발행하느냐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 △가변성이 더 높아질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 △잘 작동되지 않을 통화정책의 전달경로(통화공급 조절→금리 변화→총수요 증감→성장률·물가 조절) △통화정책 추진 과정에서 흐트러진 정책수단과 중간조작, 최종목표 간 인과 관계 재정립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가상화폐가 화폐의 역할을 찾아간다면 화폐개혁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논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금융위기 이후 화폐개혁을 단행한 국가는 의외로 많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짜리 새롭게 도안해 2013년에 발행했다. 이듬해 일본은 20년 만에 10000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선보인데 이어 2015년에는 중국이 신권을 내놓았다.

화폐거래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국가도 있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 북한 등이 대표적인 국가다. 2016년 11월 인도는 전체 화폐유통물량의 86%를 차지하는 구권 500루피, 1000루피를 신권 500루피, 2000루피로 교체하는 변형된 화폐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고 있는 베네주엘라는 가상화폐의 첫 법정화폐라고 볼 수 있는 ‘페트로’ 코인을 발행할 계획을 발표했다.

고액권 발행을 중단하거나 폐지 논쟁도 갈수록 거세지는 추세다. 2000년 캐나다, 2014년 싱가포르에 이어 2016년 5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고권종인 500 유로 발행을 2018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미국도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중심으로 최고권종인 100달러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세 가지 형태의 화폐개혁에 있어서 공통적인 특징은 고액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각국 국민의 화폐생활에서 가상화폐와 대안화폐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고액권일수록 화폐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대신 부패와 뇌물, 탈루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국가보다 우리도 비트코인 투기가 심하다. 투기 광풍 뒤에 버블이 터지고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부패도 심하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기득권에 대한 혐오증도 최고조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도 기득권을 개혁하고 부패를 청산해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를 구축해 달라는 국민의 촛불 열망 속에 태어났다.

법화 시대에 있어서 화폐개혁을 추진하는 것만큼 국민의 관심이 높은 것은 없다. 특히 우리처럼 경제활동 비중이 놓은 대기업과 부자, 정치권을 비롯한 권력층일수록 저항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어떤 형태든 화폐개혁의 추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글.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a href="mailto:schan@hankyung.com">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