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기가 뿜어대는 섭씨 3000도의 불꽃을 맞으며 손수 자동차를 만드는 청년이 있다. 니퍼와 그라인더 등 각종 공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 청년은 용접기능사도 자동차 정비공도 아닌 22살의 평범한 대학생 조정민 군이다. 정민 군은 편리함에 가려진 기술의 불편한 진실을 찾겠다며 2년 전 공구를 들었다.
◇ 용접하다 찾은 메이킹의 진짜 의미
정민 군이 용접기를 들게 된 사연은 이렇다. 2016년 서울대에 입학한 그는 같은 과 선배에게 함께 자동차를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3D프린터나 아두이노 같은 메이킹 도구를 다루는 그를 눈여겨 본 것. 완전히 다른 도구를 다뤄한다는 걱정보단 크고 무거운 물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정민 군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만드는 것 자체가 저한텐 하나의 재미였어요. 매번 무언가를 만들고 나면 다음번엔 더 크고 멋진 걸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자동차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날로 자동차 동아리에 가입한 정민 씨는 용접기와 그라인더 사용법부터 배웠다. 직접 쇠를 깎고 이어붙이는 고된 노동이 필요했지만 차량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나 운전자를 충돌에서 보호하는 방법 등 기술이 실제 현장에선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게 됐다.
얼마 전 진행했던 대형 나무의자 제작 프로젝트는 수제 자동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정민 군은 레이저 커팅 등 메이커의 도구를 활용해 4.8미터 규모의 대형 나무의자를 만들었다. 나무라는 전통 소재에 첨단 기술을 결합해 만든 이 의자는 메이킹의 한계를 넓혀놓은 상징적인 작품으로 국내 메이커 1번지인 세운상가 앞에 전시되기도 했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용접을 하거나 의자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는 행위는 오래된 기술로 여겨지잖아요.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쌓여야 새로운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사진 = 오래된 기술이 쌓여야 새로운 기술이 발전한다고 믿는 메이커 조정민 군)
◇ ‘방황의 늪’에 빠진 천재 소년, 메이커로 우뚝
지금은 어엿한 메이커로 성장해 활발한 활동을 하는 그가 메이킹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사연이 있다.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부산 영재고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정민 군은 갑자기 끝을 알 수 없는 방황의 늪에 빠졌다.
“사실 고등학생 때 앞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목표를 정하고 달려 가는데 저는 그때까지 갈피를 잡지 못했거든요. 그런 생각들 때문에 한 때 방황했습니다.”
그랬던 그를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운 건 자신이 좋아하던 메이킹 활동이다. 움직이는 레고블록을 만들기 위해 중학생 때부터 부품과 산업용 자재를 가지고 놀았다는 정민 군. 취미 활동에 불과했던 활동을 대입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해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많은 고민 속에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온 어느 날 같은 층을 쓰던 친구와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정민 군은 주인공 란초의 말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세얼간이 속 주인공 란초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마다 지금 네가 원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한다면 모든 게 잘 될 거라며 '알 이즈 웰(all is well)'이라는 주문을 외워요. 이 대사는 제게 큰 힘이 됐고 메이킹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원동력이 됐어요.”
◇ 메이커 정민 군의 성장 비결
다양한 활동으로 경험을 쌓아가면서 정민 군을 찾는 곳도 많아졌다. 최근엔 드론 잡는 드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스내쳐와 미디어 스타트업 긱블에서 하드웨어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정민 군은 다년간의 메이킹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름대로 선택의 기준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 싶은 프로젝트를 선택해요. 갑자기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불가능하지만 일단 움직이는 걸 만들어보라고 하면 해 볼만 하잖아요.”
만드는 활동을 하며 제2의 삶을 살게 된 정민 씨. 그의 꿈은 평범한 사람도 쉽게 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메이커 문화의 아이콘이 되고 싶어요. 특별한 사람만 메이커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처럼 누구나 쉽게 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THE메이커스'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작자, 장인 등 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