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에서 발생한 K-9 자주포 사고의 원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8월 육군 장병 3명의 사망으로 이어진 K-9 자주포 화재사고는 자주포에 탄 병력이 격발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음에도 일부 부품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K-9 자주포 사고 경위를 조사해온 민·관·군 합동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26일 국방부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승무원이 격발 스위치를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격발 해머 및 공이의 비정상적인 움직임, 중력 및 관성 등에 의해 뇌관이 이상 기폭해 포신 내부에 장전돼 있던 장약을 점화시켰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폐쇄기가 내려오는 중 뇌관집과 격발 장치의 일부 부품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뇌관이 삽입 링 화구에 정상적으로 삽입되지 않아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며 "완전히 닫히지 않은 폐쇄기 아래쪽으로 포신 내부에 장전돼 있던 장약의 연소 화염이 유출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출된 연소 화염이 바닥에 놔뒀던 장약을 인화시켜 급속 연소되면서 승무원이 순직하거나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 18일 강원도 철원에 있는 육군 훈련장에서 북한의 화력 도발에 대비한 사격훈련을 하던 K-9 자주포 1대에서 화재가 발생해 내부에 있던 장병 3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사고 직후 육군은 민·관·군 합동조사위를 구성해 약 4개월 동안 사고 경위를 조사했다.
초기 조사결과, 화재는 자주포 내부에 있던 폐쇄기에서 화염이 나와 장약에 불이 붙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장약은 포를 발사할 때 탄을 앞으로 밀어내는 화약이다.
격발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는데도 격발된 것은 뇌관을 치는 공이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스프링의 장력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조사됐다. 2010년과 2016년에도 야전 부대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견됐지만, 당시에는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상부에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폐쇄기가 완전히 닫히지 않은 것은 뇌관 지지대 스프링의 장력이 떨어져 뇌관이 제대로 삽입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조사위는 보고 있다. 조사위 관계자는 "이상 격발, 폐쇄기의 불완전한 닫힘, 장약의 위치 등이 맞아떨어져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사위는 "조사결과를 기초로 안전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후속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며 "승무원용 난연 전투복 120벌을 12월 안에 우선 지급해 내년 2월까지 부대 시험 이후 전군으로 확대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군은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K-9 부품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쳐 전문검사관의 기술검사와 정비를 받도록 했고 장약 보관·운용 방법, 뇌관 사용 지침, 사격 안전통제체계 등을 보완했다.
이번 사고로 육군은 작전 대기 중인 K-9 자주포는 가동하되 교육훈련 목적의 K-9 사격은 전면 중지한 상태다.
조사위는 K-9 자주포 사격 재개에 관해서는 "사격 전 장비별 성능 발휘 정밀검사를 거쳐 포병 안전사격 시범 교육 이후 단계적으로 사격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군은 사격 재개에 앞서 내년 1월부터 K-9을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이번 사고 조사결과는 군 검찰에 송부할 것"이라며 "군 검찰의 판단에 따라서는 수사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화지상방산 등 K-9 제작에 참가한 방산업체 측은 "K-9에 관해 전문적인 식견과 기술을 보유한 제작업체와 개발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조사위에 공식 참여하지 못했다"며 추가 검증을 요구했다.
업체 관계자는 "사고 원인 분석 결과는 군, 전문 개발기관, 제작업체 등 누구에게도 과학적인 억울함이 없도록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객관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사위 관계자는 "4개월 조사 기간 중 3개월을 업체가 함께했다"며 "조사에는 업체가 참여하도록 하고 사고 원인 식별에서는 배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이 2000년 실전 배치한 K-9 자주포는 대표적인 국산 무기로, 사거리가 40㎞에 달하고 1분에 6발을 쏠 수 있다. 최대속력이 시속 67㎞를 넘어 짧은 시간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터키, 핀란드, 인도 등에 수출됐고 최근에는 노르웨이가 24문을 도입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