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지휘자 샤를 뒤투아(81)가 여성 성악가들을 상습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전 세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오페라 가수 3명과 클래식 연주자 1명이 1985~2010년 사이 뒤투아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고 AP통신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뒤투아는 차 안, 호텔 룸, 엘리베이터, 의상실, 무대 뒤편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해 여성들에게 접근했다.
음악 연습에 관해 상의할 부분이 있다며 자신의 개인 공간으로 초대하거나 단둘만 남겨진 때를 틈타 성폭행 기회를 노렸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메조소프라노 가수인 폴라 라스무센은 1991년 가을 LA 오페라 의상실에서 뒤투아가 자신을 벽으로 밀고서 강제로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라스무센은 이후에도 뒤투아가 자신을 수차례 불렀지만 다시는 혼자 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래미상을 2번이나 받은 유명 소프라노 실비아 맥네어(61)도 1985년 3월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한 날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당시 28세였다는 맥네어는 그가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자신을 덮쳤으며 가까스로 벗어난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도망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일로 트라우마가 남지는 않았지만 "그가 한 짓은 잘못됐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른 두 피해자는 2006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 중 한 명은 공연하러 무대에 나가기 직전 순간 성추행을 당했다며 "음악가로서 그는 문제가 없지만, 무대 뒤에선 포식자"라고 비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피해자는 뒤투아가 이 여성의 신체를 만지면서 "키스하면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피해자들은 음악계 거장인 뒤투아를 상대로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려워 지금껏 침묵했다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지휘자인 제임스 레바인의 성추행 사실이 폭로된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입을 모았다.
스위스 태생인 뒤투아는 25년간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끌어올리며 명성을 쌓았다. 런던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겸 수석지휘자이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명예 지휘자도 겸임하고 있다.
성추행 의혹 보도가 나온 후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뒤투아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는 동안 뒤투아가 공연 일을 맡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는 뒤투아와 함께 내린 결정이라고 오케스트라 측은 설명했다.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심포니오케스트라, 시드니심포니오케스트라도 이날 뒤투아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발표했다.
뉴욕필하모닉,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는 뒤투아가 지휘를 맡기로 예정된 다가오는 공연 무대에 뒤투아가 서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40여년 간 이끌어 온 제임스 레바인도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끝에 뉴욕 메트에서 정직 처분을 받는 등 클래식계에도 '미투'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