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로 '필름' 끊긴 채 성폭행, 감형사유 아냐"

입력 2017-12-07 15:11


술을 마신 뒤 속칭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 상태에서 여성을 성폭행해 범행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남성에게 법원이 심신장애 상태가 아니었다며 음주 감형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음주로 인한 블랙아웃 증상이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일 뿐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상태로 보기 힘들어 감형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부산지법 형사6부(김동현 부장판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주거침입 준강간)로 재판에 넘겨진 A(24)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을 명령했다고 7일 밝혔다.

판결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7월 6일 오전 7시께 부산의 한 모텔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던 B(37·여) 씨의 방에 침입, B 씨 옷을 벗기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A 씨는 자신이 투숙 중인 방에서 나와 복도를 약 15m 걸어가 B 씨의 잠기지 않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성폭행을 당한 B 씨가 놀라 모텔방 불을 켜자 A 씨는 뒤늦게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A 씨와 변호인은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범행 당시 만취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술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심신장애로 인정될 경우 형을 감경받을 수 있는 형법 규정을 근거로 주취 감형을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모텔 내부 폐쇄회로(CC) TV에 찍힌 A 씨의 거동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성폭행 과정에서 피해자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 점, 만취 상태로 보이지 않았다는 모텔 업주의 진술 등을 종합해볼 때 A 씨가 심신장애 상태에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범행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A 씨 주장은 일시적 기억상실증인 '블랙아웃(black-out·필름 끊김 현상)' 증상에 불과하다"며 "블랙아웃은 알코올이 임시 기억 장소인 해마세포의 활동을 저하할 뿐, 뇌의 다른 부분은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해 심신장애 상태로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