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디플레 종식"…내년 한국경제 키워드는 '혼돈'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7-11-27 10:05
수정 2018-01-13 18:24


올해도 벌써 11월이 다 끝나간다. 매년 이맘때 즘이면 모든 경제주체는 내년도 경제전망을 토대로 사업계획을 짠다. 금융위기 발생 10년째를 맞는 내년에는 추세적인 변곡점과 새로운 변화가 예상돼 그 어느 해보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그런 만큼 선제적인 대응 여부에 따라 경제주체별로 명암이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변화는 세계 경제가 10년 만에 ‘디플레 갭’에서 ‘인플레 갭’으로 전환될 첫 해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디플레 갭은 실제 성장률에서 잠재 성장률을 뺀 것이 마이너스일 때, 인플레 갭은 플러스일 때를 말한다. 디플레 국면에서 물가가 올라가는, 즉 리플레이션은 증시에 호재가 되지만 인플레 국면에서 물가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은 악재로 작용한다.

절대오차(전망치-실적치)로 평가한 전망기관별 예측력에서 가장 높은 국제통화기금(IMF)가 내놓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3.7%다.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세계경제 잠재 성장률은 3.6% 내외로 GDP 갭을 구하면 +0.1% 포인트로 나온다. 10년 만에 디플레 갭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나온다.



올 한해 가장 격변을 치른 국가가 한국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우리 경제가 수출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앞날과 관련해 비관론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경제개발 시작 이후 주력산업이었던 제조업의 생산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특히 청년층들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노동력에 이어 생산에 필요한 자본도 저축률 하락 등으로 갈수록 성장률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축률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인 사회보장지출 확대, 가계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따른 예비적 동기의 저축필요성 감소와 소비여건 개선 등이 지적되고 있다. 기업의 현금 보유는 사상최대규모다.

정책당국이나 정책에 대한 신뢰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이 그렇다. 당리당략에 국민과 우리 경제 앞날은 뒷전이다. 신뢰 회복의 ‘골든 타임’까지 놓쳐 이제는 우리도 일본처럼 아무리 좋은 정책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은 정작 반응하지 않는 ‘좀비 국면’에 빠져 들고 있다.

통화승수, 통화유통속도, 예금회전율 등 각종 경제활력지표가 눈에 띠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한번 해보자(can do)' 하는 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부양대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경기회복에 별다른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사례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대외적으로는 우리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높아진 국제위상에 맞게 내수시장이 발전되지 않음에 따라 통상마찰도 잦아지고 있다. 특히 기업 간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특정기업의 경우 세계 최고의 반열 위에 올라간 것에 따른 착시현상까지 겹치면서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통상마찰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점도 우리 경제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나라 안팎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한창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중에서 우리 경제에 대해 비교적 밝은 국제통화기금(IMF)와 같은 해외기관일수록 ‘한국 경제가 질적인 면에서는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평가를 과연 문재인 정부가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도 경제우선 정책을 예산조기집행과 같은 단기 처방에 의존할 경우 고질병인 ‘고비용-저효율’ 문제를 개선하는 일은 요원해 진다. 오히려 구조조정 노력을 지연시킴으로써 후손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기업에게도 우리 경제 내에서 안정된 경영활동을 보장하고, 해외 진출한 기업도 국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개혁정치이든 산업정책이든 간에 정책의 일관성과 명확한 기준이 전제돼 시행해야 한다.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기득권 때문에 핵심규제 사항을 풀지 못하거나, 특정기업에게 막대한 이권이 보장되는 신규 사업을 허가해 주면서 뒷거래가 오가는 식의 뒷맛이 가시지 않는 정책이 계속될 경우 위기감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우리 기업의 ‘무국적화’를 촉진하고 산업공동화와 실업증대 등의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업도 경기가 좋을 때에는 한탕하고 경기가 나쁠 때에는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화전인식 경영’은 지양해야 한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이 실망스럽다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는 의무다.

국민에게도 경제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안정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는 것도 시급하다. 법규이든 사회규범이든 간에 정책당국이 마련하는 대로 쫓아가더라도 고위층에서 뇌물이다 떡값이다 해 부정부패가 발생할 경우 국민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탈감에 휩싸여 위기감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정부가 실시하는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발상의 대전환도 필요하다. 갈수록 국민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무조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책당국(정치권의 책임이 크다)이 국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올바르게 국정을 운영하지 못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당국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국민이 부응하지 않을 경우 또다시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정책의 악순환’만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 자신을 다소 희생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정책결정 과정에 있어서는 여론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일단 정책이 추진되면 소기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 줘야 한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그런 만큼 문재인 정부는 많은 정책을 내놓기보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마라도나 효과(마라도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수비수가 미리 행동하면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골 넣기가 쉽다는 의미)’가 절실하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이 ’프로보노 퍼블릭코(pro bono publico)' 정신을 발휘한다면 고질적인 비관론을 해소할 수 있다.

이럴 때 일수록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서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진심으로 정책 수용층의 협조를 구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조금만 뜻대로 안되면 ‘과거 정부와 언론, 국민 탓’ 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싹이 돋고 있는 ‘한국 경제 위기론’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글. 한상춘/<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