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1일 밤, 대학로에서 공연중이던 연극 <숨비소리>를 찾았다. 공연 마감 3일 전임에도 무대에는 긴장감이 여전했다. <숨비소리>는 치매 어머니와 혼기를 훌쩍 넘긴 노총각 아들의 이야기다. 배우 전국향이 어머니역을, 배우 김왕근이 아들역을 맡았다. 객석은 대부분 중년 이후의 연령층으로 채워졌다. 객석과 무대 사이가 워낙 가까워서 숨소리 하나까지 들렸다. 공연이 끝나고 암전 이후, 곳곳에서 흐느낌이 번졌다.
동네공원 강아지역을 맡은 오정민이 낸 개 짖는 소리는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진짜와 똑 같았다.
배우 김왕근이 전통가요를 부르며 굵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숨비소리> 공연 종료 며칠 후에 근황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왔다. "공연 매회마다 울어서 그런지 안질환이 와서 안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그를 기다리는 팬들이 여럿 보였다.
대학로는 역량있는 배우를 찾으려는 감독들의 발길이 잦다. 오른쪽은 <종이학>, <장밋빛 인생>등을 연출한 G&G 김종창 감독
최근 배우 김왕근이 출연중인 연극은 <보이 겟츠 걸>이란 작품이다. 2000년에 미국에서 초연되었다. 원작은 레베카 질먼이 썼다. 주로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쓰는 작가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보이 겟츠 걸>을 '지난 10년 이래 볼 만한 최우수 연극과 뮤지컬' 목록에 올렸다. 배우 김왕근은 이 작품에서 하워드 시걸역을 맡았다. 이 역할은 미국 초연에서는 맷 데카로가 맡았다.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에서는 부패한 악질 간수로 나왔다.
<보이 겟츠 걸> 미국 초연에서 하워드 시걸역을 맡은 맷 데카로.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배우 김왕근이 맡았다.
<보이 겟츠 걸>의 드라마터지를 맡은 마정화 씨는 티비텐플러스 취재팀을 통해 "하워드 시걸은 스토킹에 대해 분명히 인식의 한계를 보인다. 그렇지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경험을 통해 점차 성숙해진다. 이 대목이 비현실적이지만 시걸은 분명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김왕근 배우가 캐릭터를 잘 살려서 작품을 탄탄하게 받쳐 주고 있다"고 전했다. 개선을 기대해보지만, 그렇다고 큰 기대도 하지 않는, 고만고만한 우리네 아저씨들 역이란 얘기다. 덕분에 공감의 진폭은 커지지 않을까?
<보이 겟츠 걸>은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티비텐플러스,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