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보이 겟츠 걸> 돋보기 | 배우 김왕근의 묵직한 연기

입력 2017-11-02 10:39
수정 2017-11-02 18:43
단 한 컷에 잡히더라도 향상심을 품고 부단히 연기하는 사람이다. 그가 연기하는 것은 '우리' 혹은 '나'일 수도 있는 우리 사회의 누군가다.







무대와 스크린을 넘나드는 관록 있는 배우 김왕근이 연극 <보이 겟츠 걸>(연출 남인우)로 또 한 번 무대에 선다. 연극 <숨비소리>(2015), <호스피스>(2015), <토일릿 피플>(2016), <리어의 역>(2016)으로 관객들과 마주해온 그는 <광복절 특사>(2002), <혈의 누>(2005), <관상>(2013), <족구왕>(2014), <굿바이 싱글>(2016),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 등 이름을 들으면 단번에 알만한 수많은 영화에도 틈틈이 얼굴을 비추며 대중들과 만나왔다.

올해도 그는 연극 <숨비소리> 재공연으로 7월부터 9월을 빼곡하게 채웠다. 고령화 사회와 노인 문제를 다뤘던, <숨비소리>에 이어 이번에도 다소 묵직한 주제의 작품을 선택했다. 지난 10월 27일부터 '혐오'를 주제로 한 극단 북새통의 프로젝트성 연극 중 첫 번째 작품인 <보이 겟츠 걸>에 출연해 또 한 번 연기의 혼을 터뜨린다. 문형주, 이영석, 전영, 김현균, 남수현, 황아름, 장애실 등 걸쭉한 연기파 연극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극단 북새통은 여성 문제, 인종 문제 등 최근 한국사회에 떠오른 혐오와 차별에 관한 심도 있는 탐구를 통한 연극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프로젝트의 첫 막을 연 <보이 겟츠 걸>에는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혐오 범죄가 만연한 사회를 표면화시켰다. 워커홀릭인 기자 테레사가 소개팅으로 만난 토니의 구애를 거절하고, 이후 토니에게 스토킹까지 당하는 전개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남성성·여성성'이라는 프레임에 얽힌 관습적인 시각을 예리하고 재치있게 풀어낸 이 스토킹 드라마는 미국 작가 레베카 길먼이 쓴 이야기로 2000년 시카고 굿맨 씨어터에서 초연됐다. '케네디 센터 조지 디바인 상', '이브닝 스탠다드 어워드 스콧 맥퍼슨 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타임즈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가장 주목할 만한 희곡'으로 선정한 쟁쟁한 작품이다. 가장 크게 고민해야 할 부분은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다. 작가 레베카 길먼은 작품을 통해 좁게는 우리 사회에서 애정과 혼동되는 스토킹, 넓게는 성차별적인 범죄로 이어지는 '남성성·여성성'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전시한다.

배우 김왕근이 연기한 하워드 시걸은 작품의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하워드 시걸은 주인공 테레사와 12년을 함께 일한 상사이자 동료다. 테레사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동료이면서도 '사람을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캐릭터로, 프레임에 갇혀 있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이것은 연극을 보는 '우리' 혹은 '나'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보이 겟츠 걸>의 드라마터지를 맡은 마정화 씨는 티비텐플러스 취재팀을 통해 "분명히 인식의 한계를 보인다. 그렇지만, 하워드 시걸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경험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 이 점이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만들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매력적인 캐릭터다"라며 김왕근 배우가 캐릭터에 똑 맞아떨어지는 열연으로 작품을 탄탄하게 이끌어준 점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연극이 의도한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재미 없는 방식의 감상을 할 필요는 없다. <보이 겟츠 걸>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설될 여지를 남기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오는 1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극단 북새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