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냐, 이란이냐'…두 패권국 앞 기로에 선 이라크

입력 2017-10-23 20:59


이슬람국가(IS) 사태라는 '급한 불'이 거의 진화되면서 이라크가 국가의 운명을 가를 무거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라크의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2위 산유국이자 지정학적으로도 중동의 중심인 이라크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서로 반대쪽에서 압박을 높이는 모양새다.

이라크 정부는 두 패권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로 묘수를 찾으려고 하지만 미국과 이란의 적대를 고려하면 쉽지 않아 보인다.

중동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하시드 알사비·PMU)를 철수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는 "이라크에서 ISIS(IS의 옛 이름)와 싸움이 거의 끝나가는 이란 무장조직(시아파 민병대)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이라크의 외국 무장조직원은 철수해 이라크가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은 이란의 경쟁국 사우디를 찾은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를 만난 뒤 이렇게 발표했다. 이라크에 이란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강하게 압박한 셈이다.

시아파 민병대는 이라크 정부군과 함께 IS 격퇴전에서 맹활약했다. 시아파 민병대는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가 직접 지원하는 강력한 준(準)군사조직이다.

틸러슨 장관은 나아가 각국이 이란 혁명수비대와 관계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까지 경고했다. 혁명수비대는 군사조직일 뿐 아니라 공기업과 국영기업을 80% 이상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틸러슨 장관은 "이란 혁명수비대와 사업을 수행하는 그 누구든 정말 위험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본다"며 유럽 회사도 예외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라크에 사우디가 참여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기회가 있을 것"이라면서 사우디의 이라크 진출을 부추겼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사우디가 올해 들어 이라크와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이라크의 인접국인 이란은 지상전에선 이라크 정부군과 맞먹는 전력의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하는 등 군사·안보 분야에서 이라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이라크의 전후 재건 사업에도 이미 손을 뻗어 가스관 재개, 전력 공급, 인프라 건설 등 이라크의 전후 복구 사업을 빠르게 추진 중이다.

사우디에서 '미-사우디-이라크' 3자 회동이 열리는 동안 이란도 이라크에 신호를 보냈다.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의회 외교위원회 부총장은 22일 "이라크와 사우디의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테헤란과 바그다드의 관계는 안정되고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틸러슨 장관의 시아파 민병대 철수 요구에 대해 23일 "이란이 없었다면 ISIS가 시리아와 이라크를 장악했을 것"이라면서 "ISIS에 맞서 조국을 지킨 이라크인(시아파 민병대)이 어느 나라로 돌아가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이란이 최근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의 분리·독립운동을 냉정하게 외면한 것도 미국과 사우디가 접근해 오는 이라크 정부와 관계를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이라크의 현 정부와 군은 종파적으로 이란과 같은 시아파가 주도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빚어진 결과다. 당시 미국이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을 퇴출하고 생긴 권력 공백을 채우려고 반(反)후세인 세력, 즉 시아파 인사들을 기용한 탓이다.

이들 시아파 정치 세력은 친미 성향이기도 했지만, 후세인 정권 시절 탄압을 피해 이란에 신세 진 이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