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임명을 위한 마지막 절차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5명의 후보 간의 면담이 마무리됐다. 제롬 파월과 캐빈 위시 전현직 Fed 이사,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존 테일러 스탠포드대 교수, 그리고 재닛 옐런 의장이다. 빠르면 다음달 3일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길에 앞서 임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Fed 의장의 인선 기준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치적 신조, 정당 관계, 인사권자의 개인적 신임 등이 기준이 되는 ‘엽관제(spoil system)’다. 다른 하나는 개인의 능력과 실적, 전문성 등을 중시하는 ‘실적제(merit system)’다. 전자 기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후자 기준이 잘 지켜진 점이 Fed 설립 이후 전통이다.
후자 기준에 따라 16대 의장을 임명한다면 옐런 후보만한 인물이 없다. 1994년 이후 30년 이상 이사, 샌프란시스코 지역 연준 총재, 부의장, 의장을 거치면서 Fed의 모든 것을 누구보다 정통하다. 초기 우려와 달리 2014년 이후 Fed 역사상 첫 여성 의장으로 통화정책을 잘 수행하고 경제성과도 비교적 좋다.
월가와 미국 학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16대 Fed 의장 인선에서 이 전통이 깨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노믹스(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 기대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Fed와의 정책협조가 절실하다. 오바마 지우기 일환으로 ‘도드-프랭크법’ 폐지 의지도 강하다. ‘친기업-친월가-친증시’의 공화당 전통기조도 고려해야 한다.
5명의 후보를 트럼프 인선기준으로 평가해 보면 옐런 후보의 연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트럼트 대통령의 강온전략에도 통화정책을 소신대로 운영해온 점을 감안하면 정책협조에 문제가 있다. 도드-프랭크법을 만든 장본인으로 규제개혁에도 가장 부정적이다. 하지만 ‘현직 의장’이라는 최대 강점이 있어 연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콘 후보가 임명될 가능성도 낮다. 비둘기파 성향으로 규제개혁에 적극적이어서 트럼프 인선 기준에 적합하지만 Fed 의장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시 후보는 출구전략(금리인상 등 통화정책 정상화)과 규제개혁에 가장 강성인 점과 Fed 의장으로 나이가 40대라는 점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부담스럽다.
테일러 후보는 ‘테일러 준칙’을 만든 장본인으로 명성이 높지만 규제개혁에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파월 후보는 현재 Fed 이사로 옐런 의장과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금리인상 등에 중립적 입장(옐런 의장보다 적극적이라는 의미)인데다 규제개혁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어 뒤늦게 트럼프 대통령이 매력을 느끼는 인물이다.
16대 의장으로 옐런 의장이 연임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Fed의 통화정책에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가장 큰 변화는 금융위기 이후 밴 버냉키 전 의장과 옐런 의장이 경제지표에 따라 그때그때 변경해온 ‘재량적 방식’보다 ‘준칙에 의한 방식(통화론자의 ’통화 준칙‘과 ’테일러 준칙‘ 등)’이 선호될 가능성이 높다.
도드-프랭크법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자기자본(prompt trading)과 파생상품 규제가 완화되고 금융위기 이후 금융소비자 보호에 치우쳐진 금융감독도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월가에서는 금융위기 주범으로 대폭 강화됐던 레버리지 비율(증거금대비 총투자 가능액) 규제인 이른바 ‘볼커 룰’이 폐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Fed의 위상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의장에 앞서 감독담당 부의장으로 랜달 퀠스(통화정책 상 ‘트럼프 대변인’)가 임명된 이래 사사건건 불협화음으로 스탠리 피서 행정담당 부의장(옐런 의장의 스승)이 조기에 사임했다. 의장마저 친트럼프 인사로 채워진다면 ‘Fed의 포퓰리즘’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올 정도로 독립성이 훼손당할 우려가 있다.
가장 관심이 되는 정책금리 인상속도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둘기파 성향이 강한 옐런과 콘을 제외한 나머지 세 후보는 출구전략 추진에 전향적이기 때문이다. 5명의 후보와 면담이 시작한 지난달 이후 미국의 10년만기 국채수익률 등 시장금리가 추세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유자산 매각’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2015년 12월 이후 네 차례에 걸친 정책금리 인상에도 미국 증시는 ‘랠리’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거침없이 오르면서 한동안 잊혀졌던 ‘거품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미국 증시 거품 논쟁은 201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명했던 빌 그로스와 워런 버핏 간 ‘주식숭배(cult of equities) 종료’ 논쟁이다.
2014년 8월에는 세계적인 석학 간에 벌어졌다. 미국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CAPE(경기조정 주가수익비율)가 26배로, 20세기 이후 평균수준인 15배를 상회해 거품이 끼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제라미 시겔 와튼 스쿨 교수는 주가 결정에 미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그 후 잊혀져가던 거품 논쟁이 최근에는 투자 구루와 석학 간에 벌어지고 있어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3년 전부터 거품이 끼었다고 주장해온 실러 교수는 지금은 CAPE가 30배에 도달해 적정수준 20배를 훨씬 웃돈다고 경고했다. 반면 트럼프 랠리의 최대 승자인 버핏은 장기적 관점에서 주식을 더 살 것을 권하고 있다.
Fed의 가치모형(FVM=12개월 선행이익률÷10년물 국채금리)으로 현재 주가수준(S&P500지수 기준)을 평가해 보면 2.2배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부동산 가격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보다 높게 올라간 지 오래됐다. 이때 보유자산 매각조치를 지연시킬 경우 ‘후속 위기(after crisis)’ 우려가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Fed의 금리인상경로인 '3·3·3 계획(3년 동안 매년 세 차례씩 3%로 올리는 것)'에 따라 중립금리 3%에 도달하는 때가 2019년 말이다. Fed가 추정한 통화정책 시차 1년을 감안해 선제적으로 보유자산 매각을 추진한다면 그 시기는 ‘내년 말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월가의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3월 FOMC 의사록대로 올해 말에 추진한다면 1년 정도가 앞당겨지는 셈이다.
보유자산 매각 시기가 결정되면 그 규모를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를 확정해야 한다. 이 문제는 Fed의 보유자산 적정규모에 달려있다. 출구전략 개념에 충실해 보유자산 규모를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1조 달러로 돌려놓는다면 4조 5천억 달러까지 늘어난 보유자산을 무려 3조 5천억 달러를 인위적으로 매각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될 수 있는 규모로 이 방식대로 추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Fed의 보유자산 적정규모는 기관에 따라 크게 차이가 크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2조 5천억 달러에서 3조 5천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1조 달러에서 2조 달러를 매각해야 된다. 만기도래 자연감소분만으로 안 되고 1조 달러 이상 인위적은 매각이 수반될 것으로 보여 시장 충격은 불가피하다.
버냉키 전 의장은 유동자산에 대한 민간수요가 크고 통화정책 수행방식 변화 등을 감안해 주장하는 4조 달러를 가져는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옐런 의장은 버냉키 전 의장 시절 때 부의장으로 통화정책 실무를 총괄해 왔다. 매각분 5천억 달러는 만기도래 자연감소분만으로 맞출 수 있어 1차적으로 실행 가능성이 가장 높다.
16대 Fed 의장 선출 이후 국내 주식시장 참여자의 관심도 ‘금리인상’에서 ‘자산매각’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전자보다 후자는 긴축 효과가 큰 만큼 선제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변경해 놓을 필요가 있다. 특히 국내 증시에서 부는 ‘뒤늦은 대세 상승론’과 ‘원·달러 환율의 추가 하락설’은 경계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한미 국채금리 간 상관계수가 ‘0.7’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정책(기준)금리와 시장금리도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나라 안팎으로 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는 여건에서는 대출과 연계된 무수익 자산을 우선적으로 처분하는 등 개인 차원에서도 구조조정(자산 슬림화)이 필요한 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