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3번 실패한 대학생이 6백만원 들고 실리콘밸리 찾아가 깨달은 것

입력 2017-10-19 17:51
수정 2017-10-19 18:45
20대 대학생이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 'ㅌㅇ'이 한국의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름의 초성을 본 따 만든 이 페이지는 문을 연지 한 달 만에 팔로워 수 1만을 넘었고, 총 영상 조회수는 200만 뷰를 돌파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실리콘밸리의 사정을 객관적으로 담아냈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다양한 직군으로 일하는 16명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프로젝트 <리얼밸리>를 마치고 온 김태용(28)씨를 만났다.



(▲사진 = 리얼밸리 제작자 김태용 씨)

◇ 28세 김태용, 그는 왜 실리콘밸리로 날아갔을까?

올해 28살인 김태용 씨는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대학생이다. 남들보다 늦은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그는 이미 스타트업 회사를 3번이나 거친 창업자이자 마케터다. 디자인 상품, 가구, 콘텐츠 회사를 차례로 거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후 동영상을 제작해주거나 마케팅 기획을 하는 콘텐츠 제작자 겸 마케터로 변신했지만 창업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동경할 만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실리콘밸리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스스로에 대한 자극도 필요했다. '패스트캠퍼스'에서 4차 산업혁명을 다룬 콘텐츠 작업 활동을 끝으로 지난 7월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 '미국 초보' 김태용이 실리콘밸리서 40명 만난 사연

그가 인터뷰 해온 사람들은 전에 알거나 이미 친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에 머문 42일간 40명의 사람을 만났다. 연고도 없는 그가 어떻게 짧은 시간 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섭외할 수 있었을까.

“샌프란시스코 한인 커뮤니티를 찾아 들어가 자기소개를 올렸어요. 요즘 말로 관종짓(관심을 끄는 행동)을 한 거죠. 운이 좋게도 몇몇 분들이 관심을 보였고 그분들을 설득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한국에 전달하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거라고 말이죠.”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은 먼 미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 들이 가진 철학, 그리고 기술을 말한다. 거대담론이 아닌 내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리얼밸리>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 사진 = 리얼밸리 연재 중인 페이스북 페이지 'ㅌㅇ' 캡쳐)

◇ 2030세대를 끌어들인 리얼밸리의 매력

<리얼밸리>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총 7편의 영상이 올라와있다. 인터뷰 대상자는 다양하다. 픽사나 우버 같은 실리콘밸리 대표기업의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도 있고, 테슬라를 그만두고 숙취음료회사를 차린 창업자도 있다.

이슈가 되는 아이템은 쉽게 풀어 설명해주기도 한다. 인공지능이나 데이터과학처럼 한국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주제들이 그 대상이다. 실리콘밸리에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어떤 분야에 활용할 지를 이야기한다.

가장 인기를 끄는 아이템은 실리콘밸리 취업기다.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를 일로 삼아 꿈의 기업으로 들어갔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실제 리얼밸리의 주 시청층은 20~30대다. 힘든 취업문턱을 넘어도 고된 직장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힘 ① 실패에 대한 투자

실리콘밸리는 혁신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버블이 가장 심한 곳이기도 하다. 임대료부터 생활비까지 치솟는 이 도시에 젊은 창업자들이 계속해서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씨는 독특한 투자 환경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 한 분의 투자 철학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 말씀이 이 곳은 투자한 회사가 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회사가 실패 한다 해도 그 사람들이 가진 기술이 도망가진 않잖아요. 당장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주변기술과 문화의 성숙도가 임계치에 다다르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야기죠. 실리콘밸리는 그런 점까지 감안해 투자하는 문화라고 하더군요."

◇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힘 ② 높은 임금

투자가 활발한 곳이다 보니 임금 수준도 함께 높아졌다. 실리콘밸리는 대기업과 스타트업 종사자간 연봉차이가 크지 않다. 미국의 구인구직 사이트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세계 최대 소셜커머스 그루폰 엔지니어의 연봉은 18만5천 달러인데 창업 2년이 지난 스타트업의 엔지니어 연봉은 16만5천 달러다. 경우에 따라 더 낮은 연봉을 주는 곳도 있지만 스톡옵션 등 사람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다.

반면 한국의 스타트업 종사자는 여전히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김 씨는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한국에선 한 달에 50~100만원 심하게는 월급을 주지 못하는 곳도 있다"며 "적은 임금격차가 실리콘밸리로 우수 인재를 불러모으는 힘 중 하나"라고 말했다.



(▲ 사진 = 미국 구인구직 사이트 글래스도어)

◇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힘 ③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실리콘밸리다. 하지만 놀랍게도 김 씨는 실리콘밸리에 와서 세상을 바꾸는 건 기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실리콘밸리는 기술에 대한 해답을 내부로는 팀원, 외부로는 고객에게서 찾습니다. 회사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을 뽑기 위해 수시로 채용을 진행하고 고객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죠."

물론 이런 점이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점심을 먹는 도중 팀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는 서늘한 이야기도 들린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 인간관계로 삐걱대는 걸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는 리얼밸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 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실리콘밸리는 사람에게서 미래에 대한 답을 찾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창업은 사람이 살아가는 여러가지 생활 방식 가운데 하나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불확실성 속에 살지만 사회나 시장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는 게 저랑은 더 잘 맞는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