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집권여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의원들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매년 지급하는 '왕실 교부금'(sovereign grant)을 폐기하자는 내용의 발의안을 가결했다.
영국 보수 일간 더타임스는 전날 폐막한 SNP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줄리 헵번이 대표로 제기한 이 발의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됐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햅번은 "왕가 일원이라는 것은 매년 복권 1등에 당첨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런던에 있는 중앙정부가 왕실에 이처럼 많은 돈을 주면서 "우리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단 한 가족에 (매년) 7천만파운드(약 1천50억원)를 줄 도덕적 정당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왕실 교부금에는 더 광범위한 차원의 계급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부유한 엘리트에 의해 부당대우 받는 것을 훑어봐야 한다"며 왕실 교부금은 이런 체계의 "전형"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이에 SNP 소속 영국 하원의원인 앨리슨 서울리스는 "그 돈은 지역사회로 돌려 시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돈이다. 왕가를 지원하는 데 쓰여선 안 된다"고 동조했다.
다른 대의원 그래미 매코믹은 왕가에 대한 당의 입장이 필요하다면서 당 차원의 적절한 논의를 요구했다.
SNP 대의원들은 이 발의안을 수정 없이 가결했으며 반대한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2012년 개정된 왕실교부금법은 영국 재무부가 왕실 재산 운영재단인 '크라운 에스테이트'의 수입을 관장하고 대신 입장료 등 이들 재산에서 거둔 1년 총매출의 일정 부분을 2년 뒤 '왕실 교부금'으로 왕실에 돌려주도록 한다.
첫 5년간은 이 비율이 15%였는데 올해 4월 지급된 교부금부터 25%로 인상됐다.
3억7천만파운드(약 5천500억원)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되는 버킹엄 궁 개보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내년 4월에 엘리자베스 2세가 받을 교부금은 올해보다 8% 증가한 8천220만파운드(약 1천200억원)에 달한다.
SNP는 지난 2014년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부결됐음에도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계기로 테리사 메이 총리가 이끄는 중앙정부에 제2의 독립 주민투표 실시에 동의하라는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메이 총리가 EU를 떠나면서 EU 단일시장도 이탈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결정한만큼 브렉시트 반대(62%)가 높았던 스코틀랜드 주민들에게 '하드 브렉시트'와 EU 단일시장에 남기 위한 '독립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