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4일, 한중국제영화제 개막 이틀전, 점심 무렵 찾은 (사)한중국제영화제 사무실에는 이십 여명 남짓한 여성들이 막바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홍보문구를 가다듬고, 현장 도면을 체크하고, 초대된 VIP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좌석 배치 등 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마지막 까지 변수가 많은 작업들였다. 전화가 계속 걸려왔고, 여기저기서 팽팽한 긴장감이 오갔다. 그들 중 취재 대상을 누구로 삼을지도 아득했다. 다른 사무실 방문을 여니 중국 배달 음식 냄새가 확 코를 찔렀다. 멀찌감치 놓인 회의 탁자에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늦은 점심식사중 였다. 눈이 부딪히면 머쓱할 듯하여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영화제 전문 인력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누구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 바로 영사모(한중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였다. “전국 각지에 115개 지회가 있어요.” 김유정 기획실장이 말했다. 김실장에 의하면 영사모는 자발적 봉사모임이다. 각계각층 여성들이 모였다. 화가, 예술가, 여성단체장, 기업인, 언론인, 뷰티·패션 전문가, 건설회사 회장님도 있다.
지난 9월 16일 오전 인터뷰에서 이들에 대해 소개하자 롱위시앙 주석은 예상하지 못한 단어를 꺼냈다. 바로 ‘역사’였다.
Q. 한국에는 이번 영화제를 준비하는 ‘한중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여성 동아리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이들입니다. 여성 기업인도 있고, 화가도 있습니다. 이분들이 지금 1만 5천명 있습니다. 이분들은 영화제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실질적인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모두 자원봉사자들이죠. 그래서 티비텐플러스(TV10 plus) 플랫폼에서는 이분들에게 10개의 채널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이로써 재한 중국 유학생이 운영하는 채널 10개와 한국의 여성 리더들이 방송하는 채널 10개, 해서 총 20개 채널이 오늘 영화제에서 운영됩니다.
A. 우선 한중국제영화제를 지지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중년이 되어서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이분들은 아마 역사를 기억, 계승, 전달하기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통하는 이치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을 대할 때 예(禮)로 대한다면, 마음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중국에서 영화제를 개최할 때는 이분들도 오셔서 참석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배우면서 열심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Q. 저는 이번 영화제 준비 과정을 보면서 ‘풀뿌리 영화제(grassroots film festival)’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양국의 국민이 아무런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이번 영화제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보태는 모습을 보고 이런 양국 국민의 마음이 서로에게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적인 노력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줍니다.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이와 유사한 감동을 준 영화가 있다면 어떤 작품을 꼽아주실 수 있을까요?
A. 저도 많은 영화를 봤습니다. 예전에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중국에 들어갈 때 제가 직접 처음 시도해서 중국에서 방송하게 됐습니다. 저는 민간교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민간교류를 더 많이 확대하고 강화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영화제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참석한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다들 봉사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건 정말 존경스러운 일입니다.
중국 영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고전 사극과 현대극입니다. 저는 고전물로 <옹정황제의 여인(중국 북경BTV, 2011)>이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아마 많은 나라에서 방송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옹정황제의 여인>에 대한 한국 네티즌 댓글은 이 작품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장희빈이 10명 나온다’. 원제는 <후궁 견환전(後宮 甄?傳)>이다. 무려 76부작이다. 17세 소녀 견환이 황후가 되기까지 궁중내부 권력암투를 그리고 있다. 미국의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즈(House of Cards)>에 비견되기도 한다. <대장금>이건 <견환전>이건 평범한 소녀가 바른 의지와 지혜로 성장해 나가는 점은 같다.
영사모도 3년간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의지로 한중국제영화제를 위해 애써왔다. 이들은 영화제 당일 날 쌀을 기부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레드카펫 안내를 맡기도 했고, 모바일 생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이들도 있다. 중국 역시 이들의 사랑과 봉사 정신에 화답하는 의미에서 <중국 사랑마음 프로젝트 위원회(中國愛心工作委員會)> 부위원장이자 중국국제문화전파중심 특파원 애마이·이민티(艾買·依民提)를 중국 대표단안에 포함시켰다.
롱 위원장이 언급한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아마도 지난 25년동안 쌓아온 한중친선의 시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동북아 문화교류의 오랜 시간들을 포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열정 기반 봉사대였던 영사모가 앞으로 열정을 넘어 이런 의미들을 어떻게 확장시키고, 보다 튼실한 허스토리(herstory)로 만들어 갈 것인지는 향후 풀어가야 할 과제로 보인다. (사진=티비텐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