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계의 보수적인 학자와 성직자 등 수십명이 개혁적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반기를 들고 나섰다.
포용을 역설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에 반발하는 보수파 학자와 신도 등 40여명은 지난달 11일 교황이 이단을 퍼뜨리고 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교황에게 전달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22쪽이 넘는 분량의 이 진정서에 서명한 이들은 지난 주말 그 내용을 공개하면서 교황에게 진정서를 전달한 뒤 22명이 추가로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황을 이단적이라고 비난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결혼, 도덕적 삶 그리고 성체성사"에 관한 "이단적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진정서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교황청도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진정서에 서명한 이들은 교황이 7가지 이단적인 교리를 퍼뜨리고 있다며 자신들을 교황의 "영적 아들과 딸들"로 지칭하면서 부모의 실수를 바로잡고자 진정서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정서의 발단은 교황이 지난해 발표한 가정의 사랑에 대한 권고 '아모리스 래티티아'(Amoris Laetitia·사랑의 기쁨)다.
이 권고는 이혼하거나 재혼한 신자의 영성체 참여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됐고 이후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 권고를 둘러싸고 엇갈린 해석들이 쏟아졌다.
진정서에 서명한 이들 중에서 현재 가톨릭 교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고 CNN은 전했다.
서명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성비오 10세회의 총장 베르나르 필레 주교다.
성비오 10세회는 미사에서 라틴어 대신 자국어를 사용하고 각 지역의 전통과 관습에 맞게 전례를 진행하는 것을 허용한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반발하며 정통 가톨릭 교회에서 떨어져 나왔다.
돈세탁과 부정거래 의혹으로 해임됐던 에토르 고티 테데시 전 바티칸은행장도 서명했다.
가톨릭 보수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서의 내용이나 수 세기 동안 굳어진 결혼에 대한 가톨릭 교리를 뒤흔들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가톨릭계에서는 이번 진정서가 1333년 교황 요한 22세가 반발에 직면한 이래 교황의 권위에 대한 첫 도전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세턴홀 대학에서 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몬사이너 로버트 위스터 교수는 가까운 역사에서 '이단 진정서' 같은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교황 요한 22세는 1330년대에 망자의 영혼이 최후의 심판 전까지는 하느님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고 가르치다가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위스터 교수는 "두 사안을 비교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1330년대 가톨릭 신자들은 모두 문맹이었지만 지금은 다들 트위터를 한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향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미국 뉴저지주 시튼홀 대학에서 교회 역사를 가르치는 몬시뇰 로버트 위스터 교수는 진정서가 "교황의 목회 방향을 달가워하지 않은 사제들과 주교들을 부추길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위스터 교수는 "사람들이 (가톨릭)교회에서 찾아보지 못했던 연민, 이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매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이해심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느끼고 있다"며 "대다수가 그(교황)를 좋아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