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햇수로 어느 덧 10년이 됐다. 다시 기억하기조차 싫은 암울한 시기였다. 현재 금융위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외화 유동성과 주가 등 금융변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리먼 사태 이전으로 돌아간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 논란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금융위기 극복경로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한 나라의 금융위기는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순으로 거치는 것이 전형적인 경로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이 순서대로 부족한 유동성을 극복하고 위기를 낳게 한 체질을 개선하면 자연스럽게 실물부문에 자금이 들어가 경기가 회복하게 된다.
‘위기극복 3단계론’으로 볼 때 현 시점에서 국가가 관장하는 유동성 위기는 극복됐으나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고 실물경기를 회복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첫 단계인 유동성 위기 극복 과제는 이제는 출구전략을 시행하거나 논쟁이 거세지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정책당국이 관장해야 할 단계는 지난 상황이다.
위기 극복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위기를 낳게 한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게 시스템을 마련하는 두 번째 금융시스템 정비단계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당초 예상보다는 순조롭게 추진돼 왔다. 위기 이후 모든 금융활동에 준거의 틀이 될 미국의 금융개혁법(도드-프랭크법)이 추진된 데다 다른 국가도 금융시스템을 개혁해 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부실자산 처리를 통해 금융 중개기능을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대적인 부양책을 병행해 나감에 따라 글로벌 경기가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 특히 글로벌 증시는 위기 직후 극단적인 비관적 전망이 잇달아 나왔고, 위기극복 과정에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부터는 사상 초유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10년 동안 혼란과 고통을 치른 만큼 현 시점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다시는 금융위기를 겪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탐욕과 공포의 줄 달리기 속에 탐욕이 승리할 때 또 다른 버블이 형성되고, 공포가 탐욕을 누를 때 시장은 위기를 맞는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에 다음 금융위기는 반드시 온다는 것이 그 답이다.
하이면-민스키 모델에서도 인간의 욕망이 도를 넘어 탐욕수준으로 변질되면 투자자들의 심리가 급변하면서 ‘돈을 잃을 수 있다’는 심리가 확산돼 결국은 버블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금융위기를 맞게 된다.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1997년 10월 아시아 외환위기, 2007년 10월 서브 프라임 모기지발 신용위기 등과 같은 10년 주기설을 들 수 있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Fed)의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면서 신흥국에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급격한 자금이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금융시장에서는 외국자금이 추가로 유입되는 것보다 유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급격한 자금이탈은 외환·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며, 외환·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제의 침체는 또 다른 자금이탈을 유발하는 이른바 나선형 악순환 위기를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주요국의 경험적 사례를 보면 급격한 자금이탈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외환위기, 금융위기 또는 국가채무위기 등 다양한 형태의 위기로 발전된다.
국별로 차이는 있으나 급격한 자금이탈은 특정국가의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에는 내부요인보다 외부요인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기실현적 기대(self-fulfilling expectation)로 설명하는 시각이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가 형성될 경우 자본흐름이 역전되면서 급격한 자금이탈과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인접국가로 전염된다고 봤다. 태생적 한계(original sin)를 갖고 있는 신흥국과 개도국의 금융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이 이론의 시각에 따라 파악하려는 경향들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개별국가별로 커다란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점이다. 가장 빠르게 진전되는 터키, 남아프리카 공화국 베네주엘라 등은 실물경기 침체 직전단계인 외환보유고가 감소되고 있어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금융위기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반면 인도, 베트남 등은 같은 신흥국에 속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영향 받는 심리적인 충격 이외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오히려 출구전략 추진과정에서 이탈한 자금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과정에서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자금은 이들 국가로 유입될 가능성도 높아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차기 금융위기 후보군의 실제 발생 가능성이 낮게 나오는 데도 한국 경제 내부에서는 유독 위기설에 민감하다. 최근에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른바 ‘미네르바 신드롬’이다. ‘위기극복 3단계론’을 작용해 외환위기 이후 어려울 때마다 고개 드는 각종 위기설을 평가해 보면 그 실체와 발생 가능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내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우리 경제에 위기설이 곧바로 판치는 것은 「통계 수치상의 위기」가 아니라 정부의 경제운용 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시스템상의 위기」에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경제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최근처럼 대내외 여건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특정기관과 특정인에 의존하기보다 국민 모두의 집단 지성을 구해 대처해 나가는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이 더 효과적이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주연이 되는 'M-트로이카(Management-troica)' 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것도 각종 위기설을 잠재울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