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달을 끌었던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이 마무리될 조짐이다. 도시바 이사회는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과 도시바 메모리의 주식 양도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의했다.
관련 공시를 낸 이후에도 SK하이닉스 내부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관측된다. 본계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도시바는 지난 6월에도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한미일 연합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지만, 8월에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 진영으로 협상자를 변경한 바 있다. 그만큼 도시바 인수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왔다. 자고 일어나면 판이 바뀌는 상황에서, 한미일 연합으로 인수전의 승기가 기운 데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위시한 SK하이닉스 경영진의 유연한 대처와 적기에 던진 '묘수'가 빛을 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도시바 인수전을 직접 챙겼다. 지난 4월에는 일본을 직접 찾아 도시바 경영진을 만났다. 전략은 '상생'이었다. 도시바 메모리의 고용 승계를 보장했고,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일본 여론은 '간접 투자'라는 방식으로 불식시켰다. 주효한 전략이었다. 지난 6월 첫 번째 우선협상대상자로 SK하이닉스의 한미일 연합이 결정되었을 때, 경쟁자인 브로드컴은 2조원 가량을 더 써내고도 고용 승계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우선협상자가 웨스턴디지털 진영으로 교체된 뒤에도 한미일 연합은 유연하게 대처했다. 도시바 메모리의 고객사를 연합에 끌어들였다. 애플과 델, 킹스턴테크놀로지와 같은 미국의 '큰 손 고객'들이 합류했다. 이들이 주주가 되면 도시바 메모리로서는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이같은 아이디어를 컨소시엄에 제안한 것은 연합 내 전략적 투자자 가운데 유일한 반도체 사업자인 SK하이닉스로 알려졌다.
SK그룹은 시기적절한 M&A로 성장해온 기업집단이다. 그 가운데 최 회장의 리더십으로 인수가 성사된 대표적인 기업이 하이닉스다. 2011년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인수된 하이닉스는 2분기 영업이익 3조원, 영업이익률은 45%가 넘는 그룹의 알짜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최 회장의 안목을 증명했다. 성사를 눈앞에 둔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을 통해 SK그룹이 또다른 M&A 성공사례를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