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땅인데, 신세계 입장에서는 진짜 눈물의 매각이죠. 이게 지금 유통산업의 현실이에요"
코스트코에 땅을 판 신세계를 두고 한 대형 유통업체의 고위 임원이 한 말이다. 신세계 이마트는 오늘(14일) 코스트코가 임대해 쓰고 있던 양평점과 대구점, 대전점 땅을 모두 코스트코에 넘겼다. 외환위기 직후 합작사였던 코스트코에 빌려줬던 건물과 땅을 20년 만에 판거다.
사실 노른자 위 땅인 코스트코 양평점은 신세계 이마트가 내년 코스트코와의 계약이 끝나면 이마트 트레이더스로 만들려고 점찍어둔 곳이다. 서울 서남부 유통상권의 중심에 위치했고, 리모델링만 하면 되는 곳이라 승산도 있었다. 무엇보다 당장 서슬퍼런 유통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 법은 매장 면적을 그대로만 사용하면 새로운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신세계는 결국 고심 끝에 땅을 팔기로 했다. 업계는 치열해지고 있는 경쟁과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규제 속에 내실을 다지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평가했다. 실탄을 챙겨두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신세계는 올해 들어 이마트 하남점 잔여 부지와 평택 소사벌 부지를 팔았고 또 시흥 은계지구 부지와 이마트 부평점도 매각했다.
오너인 정용진 부회장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신세계의 주포인 이마트는 올해 새로운 점포를 열지 않았다. 93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점포수가 줄었다. 위기를 직감한 정용진 부회장의 첫번째 돌파구는 복합쇼핑몰 '스타필드'였다. 하지만 하남과 고양 겨우 두 곳의 점포를 열어 놓고, 거센 규제 후폭풍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전국 곳곳에서 스타필드 출점을 놓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두번째는 야심작 '노브랜드'다. 획기적인 PB로 주목받고 있는 '노브랜드'는 전문점 형태로 10개월 새 40여개 점포를 열었다. 위협적일 만큼 성장세가 놀랍다. 이제는 가전제품까지 내놨다. 좋은 상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소비자들은 환호하고 있지만, 골목상권은 이미 아우성이다. 슈퍼마켓상인연합회는 '노브랜드'를 이른바 '변종SSM'으로 규정했다. 상생 점포들을 속속 선보이고 있지만 공격적으로 출점을 이어가긴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정용진의 마지막 카드는 '이마트24'로 이름을 바꾼 편의점 사업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직접 신개념 편의점 '이마트24'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마저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상황은 '노브랜드'와 비슷하다. 기존 편의점과 다른 구성을 본 고객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지역 소상공인들 '이마트24'가 사실상 슈퍼마켓이라며 규제해달라고 나섰다. 난감한 상황이다.
고객들과 시장이 환호하고 있는 정용진의 작품들이 '시대적' 흐름 앞에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 조심스럽게 '상생'을 외치면서 사업을 끌어가고는 있지만 보기엔 역부족이다. 그런 정용진의 신세계가 이제 두둑한 실탄을 마련해 겨울을 준비하려 한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작심하고 유통산업에 대한 규제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도 한 몫 거들고 있다. 국회에는 28개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계류중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법 이름과 달리 대부분 유통산업을 '규제'하겠다는 내용이다. 물론 골목상권과 소상공인 보호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시대적 소명'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동시에 고객들의 '효용'과 '발전'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발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