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과 미국과의 통상 마찰, 최저임금 인상과 파업.
요즘 우리 경제계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라고 하겠는데요.
여기 또 하나의 악재가 바로 '통상임금 확대'입니다.
자동차업계 통상임금 소송 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위기'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통상임금'과 관련해 산업부 임원식 기자와 얘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임 기자, 먼저 국내 통상임금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갈까요?
<기자>
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야근이나 휴일 근로 수당을 결정하는 기준 임금이라고 하겠는데요.
근로 기준법상 시간 외 연장 근로를 할 경우 통상임금의 절반을 추가로 주기로 돼 있습니다.
통상임금 즉 기준 임금이 얼마인가에 따라 흔히 말하는 잔업이나 특근 수당도 달라지는 거지요.
그런데 어디까지를 통상임금으로 봐야 하나, 이게 애매하다 보니 소송이 줄을 잇는 건데요.
기본급 외에 상여금이나 명절 떡값, 식대 이런 게 통상임금에 들어가야 한다, 아니다를 두고 다투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 내막은 회사는 덜 주기 위해서, 노조는 더 받기 위해서 법정 싸움을 벌이는 셈이죠.
<앵커>
그래서 기아차와 한국GM 통상임금 소송에 관심이 꽤 컸던 걸로 아는데요.
법원이 노조 측에 손을 들어주면서 소송도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현재 100명 이상 근무하는 사업장 기준으로 보면요, 통상임금 소송을 겪은 기업이 200곳 가까이 됩니다.
이 가운데 소송이 진행 중인 곳이 115곳 정도인데 제조업이 73곳으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버스 회사들 같은 운수업 쪽 기업들도 많은데 공기업들도 생각보다 많은 편입니다.
통상임금 문제가 자동차나 조선 등 민간 기업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인데요.
심지어 적자에 허덕이는 공기업들 역시 '통상임금' 덫에 빠졌습니다.
반기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만성적자' 허덕이는 공기업도 소송 중 (반기웅 기자)
<앵커>
적자도 버거운데 통상임금 소송까지 재정적 부담이 만만치 않겠군요.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신의성실의 원칙' 아닌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기아차 1심 재판을 예로 들어 보면요, 재판부는 정기 상여금과 식대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 동안은 상여금과 식대를 통상임금에서 빼고 아까 말한 시간외 수당들을 산정했는데 이제는 포함해서 야근 수당, 특근 수당 지급하라는 얘기지요.
문제는 그러면 그 동안 지급하지 않은 수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신의성실의 원칙, 신의칙을 적용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린 이유인데요.
기아차는 중국 '사드 문제' 등 불황으로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이제와서 과거 미지급 분을 산정해 달라고 하면 '우발 채무'가 최대 3조 원 가량 생기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법원이 이러한 점을 감안한 신의칙을 적용해 노조의 미지급분 청구를 막아달라는 거였는데요.
그러나 재판부 생각은 달랐습니다.
문제가 됐던 지난 2008년부터 2015년 사이 영업실적이 좋았기 때문에 사내 유보금이 많이 쌓여 있다, 또 불황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건 최근 일이고 오히려 다른 회사보다 부채비율은 좋다
해서 기아차 존립을 걱정할 만큼 중대한 위기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회사는 현재와 미래를 봐 달라고 애원했는데 법원은 과거 실적을 보고 판단을 내렸다고 하겠습니다.
<앵커>
그 동안 안 준 걸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 너무 어려워서 돌려주기 어렵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실제 기업들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기자>
최근 들어 자동차 산업이 최대 위기라는 얘기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현대·기아차의 경우 올해 판매 목표치가 825만 대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700만 대도 어려울 거란 전망입니다.
재고만 해도 200만 대가 넘는다고 하는데요.
차가 잘 안팔리다 보니 최근엔 현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현지 판매상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2조 원 가량의 적자를 낸 한국GM도 상황이 심각한데요.
불황이 계속 되면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게 '한국 철수설' 입니다.
최근 카허 카젬 신임 사장이 왔는데 이 분이 직전에 GM의 인도 공장을 매각한 분이거든요.
'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앞서 법원이 과거 실적을 근거로 신의칙 적용 불가 판결을 내렸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중요한 건 자동차 산업이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불투명할 거란 사실입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인터뷰] 박지순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과거의 경영 상태가 많이 좋았다고 해서 그 때의 수익이나 이익을 계속 보유하고 있겠느냐 그건 아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신의칙 적용 기준은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기업 상태를 염두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앵커>
통상임금 소송 남용이 자칫 우리 경제의 '제 살 깎기'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당장은 소송에서 이기는 게 중요해 보이지만 멀리 보면 또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송에서 이겨 노조가 회사로부터 미지급분을 되돌려 받는다고 해도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은 소송으로 발생한 비용을 메우거나
추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신규 채용을 줄이고 구조조정에 보다 주력할 가능성이 크거든요.
자동차, 조선업계는 이미 잔업, 특근 등 일감 줄이기에 나섰고요,
심지어 교육이나 휴직을 권하는 기업들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소송보다 대화와 타협으로 노사가 절충안을 찾아가는 게 보다 현명한 방법 아닐까 하는데요.
다행히도 노사 협상으로 새로운 임금 체계에 뜻을 모은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은 임동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법으로 기준 정해도 갈등은 지속" (임동진)
<앵커>
모든 기업들이 이렇게 대화와 양보로 통상임금 문제 해결에 나서면 오죽 좋겠지만요,
그걸 모두에 기대하기도 쉽지 만은 않을 텐데요.
<기자>
이번 통상임금 소송은 장시간 근로가 당연시 돼왔던 우리 사회에서
기본급 인상 대신 상여금과 수당 명목을 만들어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과 당장 이익 챙기기에 눈 먼 노조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생긴 관행이
이제와서 문제로 인식되고 갈등으로 확산됐다는 분석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제정 이래 시간외 근로 수당은 통상임금의 50%를 지급한다 정도만 있지 통상임금에 관한 정의 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오락가락 판결'로 법원이 원성을 듣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거든요.
이런 점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기본금은 적고 상여금과 수당은 많은 지금의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개선하고
통상임금 전반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박지순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호봉제는) 숙련 근로자 다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만든 과거의 임금체계 이를 직무급, 성과급제로 전환시키려는 노력들이 함께 이뤄져야
기업으로선 좀더 합리적인 인력 운용이나 경영전략을 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앵커>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해 산업부 임원식 기자와 얘기 나눴습니다.
임 기자,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