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감세' 경쟁 한국만 '증세'…증시 영향은?

입력 2017-08-21 09:14


올해 8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가 발생한지 10년을 맞았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금융완화’를 주 수단으로 추진해온 경기부양책이 최근 들어서는 재정정책으로 우선순위가 옮겨지고 있다. 실물경기가 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 주식, 채권, 부동산 모두 거품이 우려돼 더 이상 금융완화를 추진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 수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전통적인 케인즈언 수단이다. 다른 하나는 감세를 통해 경제주체(특히 기업)들의 의욕 고취시켜 성장률과 재정수입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1890년대 초반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 추진했던 ‘레이건노믹스(일명 공급중시 경제학)’이다.

재정지출, 감세 정책을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올해 1월 20일 출범한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도로, 철도, 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케인즈 이론이 태동됐던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루즈벨트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과 유사해 ‘트럼프-케인즈언 정책’이라고도 부른다. 대규모 감세정책도 발표했다.



유럽도 지난 4월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면서(월 800억 유로->600억 유로) 재정정책과 분담시켜 나가고 있다. 일본은 ‘금융완화(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가 이론적 근거 제시)’ 중심의 1단계 아베노믹스를 마무리하고 2단계 ’재정정책(혼다 에쓰로 영국 대사가 이론적 근거 제시)‘을 추진할 움직임이다.

중국은 올해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재정정책을 적극 활용해 13차 5개년 기간 중 목표 성장률(6.5∼7%)을 달성해 나가돼 고부채, 그림자 금융, 부동산 거품 등 3대 고질병은 ‘금융긴축’으로 잡아나간다는 계획이다. 정책목표와 수단을 달리 가져가는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에 근거한 경제정책 운용방식이다.

공통점은 종전에 많이 사용했던 ‘재정지출’보다는 ‘세금감면’에 더 주력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충분히 있다. 역사적으로 재정지출승수는 ‘1’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온다. 미국 의회예산국(CBO)는 2.2배로 비교적 높게 추정했다. 이 때문에 금융완화와 재정적자 축소논쟁 속에 갈수록 각국이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경기부양론자도 재정정책이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1980년대 중반 이전 회복기에는 성장률이 각국 2∼4% 포인트 높아지면 그만큼 곧바로 고용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지표경기가 살아나면 체감경기까지 개선돼 재정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고 경기가 회복되자 재정적자가 축소됐다.

최근에는 재정정책으로 성장률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고용이 늘지 않아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간의 괴리가 심해지고 있다. 이때 높아진 성장률만 감안해 금리인상과 같은 출구전략을 조기에 추진하면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2015년 12월 이후 금리를 네 차례 올릴 때마다 달러 강세와 함께 이 점을 우려해 왔다.

학자 간의 견해도 다르다. 미국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코프 교수와 같은 재정적자 축소론자는 국채발행을 통해 공공지출을 늘리면 국채소화과정에서 상승된 금리로 민간소비와 투자가 감소되는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가 발생한다고 우려한다. 오히려 바로-리카르도의 동등이론에 따르면 재정지출을 줄이면 그만큼 민간소비가 늘어나는 ‘구인 효과(crowding in effect)’가 발생해 경기가 살아난다고 주장한다(로코프 독트린).

하지만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같은 경기부양론자는 지금처럼 불확실성 시대에 있어서는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등을 통해 돈을 무제한 푼다 하더라도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에 들어가 경기회복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때는 국채공급을 늘려 투자자의 안전자산 선호경향을 완화시켜주면 돈이 실물경제에 유입돼 경기회복에 도움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크루그먼 독트린).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큰 정부론(big government)’이 불가피하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체제’, 경제적으로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국가에게는 이 부담이 의외로 크다. 하지만 감세정책은 경기부양 주체가 민간이기 때문에 ‘작은 정부론(small government)’에 부합돼 경제발전단계가 높은 국가일수록 선호한다.

문재인 정부는 경기부양수단으로 재정정책을 선택했다. 맞는 방향이다. 선진국의 출구전략 추진 등으로 금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고 다른 국가에 비해 우리는 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전하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우리의 재정 건전도를 평가해보면 신흥국 위험수위인 70%의 절반을 조금 넘는 37% 내외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재정지출에 필요한 재원을 주로 증세로 마련하겠다는 점이다. 증세를 통해 경기회복과 재정수입에 도움이 될까 여부는 레이건노믹스의 이론적 근거였던 ‘래퍼 곡선(Laffer’s curve?미국 경제학자 아셔 래퍼 교수가 주장한 세율과 세수 간 관계를 나타낸 곡선)’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래퍼 곡선은 두 구간으로 구분된다. 세율과 재정수입 간 정(正)의 구간을 ‘표준 지대(normal zone)’, 부(負)의 구간을 ‘비표준 지대(abnormal zone)’다. 표준 지대에서는 증세를 하면 성장에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세수가 증가하지만 비표준 지대에서는 경제효율을 떨어뜨리는 세율을 낮춰줘야 경기가 살아나고 재정수입이 늘어난다. 최근 감세를 추진하는 대부분 국가는 세율이 비표준 지대에 놓여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 소득세 가릴 것 없이 세율을 일제히 올렸다. ‘감세’라는 세계적인 추세와는 대조적이다. 법인세, 소득세 모두 적정세율이 얼마일까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현재 세율이 적정세율 밑이라면 증세를 통한 현 정부의 재정정책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적정세율보다 높으면 단기적으로 경기둔화, 중장기적으로 세수감소 등과 같은 후폭풍이 의외로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증시도 이 점이 우려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