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잉글리시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우승한 아스널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사진=아스널FC)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끌고 있는 아스널 FC가 한국 시각으로 6일 오후 10시 런던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7 잉글리시 FA(축구협회) 커뮤니티 실드 첼시 FC와의 대결에서 후반전까지 1-1로 따라붙은 다음 연장전 없이 이어진 ABBA 방식 승부차기에서 4-1로 트로피를 들어올려 새 시즌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시즌 잉글리시 FA컵 우승 팀 자격으로 대망의 웸블리 무대에 다시 올라온 아스널은 파리 생 제르맹 혹은 맨체스터 시티로의 이적 이야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던 간판 골잡이 알렉시스 산체스를 빼고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팀 첼시 FC를 상대했다.
관중석에서 구경하는 알렉시스 산체스 대신 올림피크 리옹(프랑스)에서 데려온 알렉산드레 라카제트를 내세운 아스널은 경기 시작 후 22분만에 영입 효과를 올리는 듯 보였다. 라카제트의 반 박자 빠른 오른발 감아차기가 첼시 골문 구석으로 빨려들어갈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카제트의 오른발 끝을 떠난 공은 야속하게도 오른쪽 기둥을 때리고 말았다.
아스널의 이 불운은 후반전 초반에 그대로 입증됐다. 후반전 시작 후 1분도 안 되어 첼시 FC의 선취골이 터졌다.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높게 뜬 세컨 볼 기회가 찾아왔을 때 집중력과 역할 분담이 훌륭했던 것이다. 수비수 게리 케이힐의 헤더 패스가 골문 앞에 떨어지는 순간을 빅터 모지스가 놓치지 않고 받아서 절묘하게 오른발 돌려차기로 선취골을 터뜨린 것이다. 아스널 수비 라인이 만든 오프 사이드 함정까지 완벽하게 무너뜨린 모지스의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였다.
이렇게 0-1로 끌려가기 시작한 아스널 FC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중원 싸움에 집중했다. 그 중심에 샤카와 모하메드 엘네니가 있었다. 샤카는 75분에 위력적인 왼발 중거리슛으로 첼시 골키퍼 쿠르투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쿠르투아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오른손 끝으로 쳐내지 못했다면 더 흥미로운 추격전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79분에 문제의 장면이 나왔다. 아스널 미드필더 모하메드 엘네니의 역습 드리블을 끊기 위해 첼시 날개 공격수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무리한 반칙이 보였다. 그런데 페드로의 발바닥이 엘네니의 아킬레스건 쪽을 위험하게 밟은 것이었다. 이에 로버트 매들리 주심은 곧바로 퇴장 명령을 내렸다. 10분 가량만 남은 시간이었지만 아스널 FC에게는 경기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 셈이었다.
바로 그 프리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아스널 FC의 귀중한 동점골이 나왔다. 샤카가 올려준 공을 향해 수비수 콜라시나츠가 빠져들어가며 이마로 정확히 꽂아넣은 것이다. 플레이어의 숫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순간은 아니었지만 축구장의 분위기는 이미 아스널 편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추가 시간 끝날 때까지 1-1 점수판은 변함이 없었고 대회 규정상 연장전 없이 승부차기가 이어졌다. 최근에 바뀐 ABBA 방식 승부차기였다. 그 시작은 첼시의 든든한 수비수 게리 케이힐이었다.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가는 시원한 슛이 그물을 제대로 흔들었다.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이라는 자존심이 담긴 듯 보였다.
이어진 아스널의 1, 2번 연속 기회에서 시오 월콧과 나초 몬레알이 역시 정확한 킥 능력을 자랑하며 승부차기 점수판을 2-1로 뒤집었다. 첼시 FC의 2, 3번 키커가 이어서 나올 순서가 됐다. 그런데 관중석이 술렁일 정도로 뜻밖의 2번 키커가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았다. 그 주인공은 첼시 FC의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였다. 5명의 키커로 마지막 승부를 가리는 승부차기 순서에서 좀처럼 골키퍼가 키커로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낯선 광경이었다.
왼발잡이 쿠르투아는 시원하게 다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갔는지 그의 왼발 끝을 떠난 공이 너무 높게 떠서 크로스바를 넘어가고 말았다. 이어진 첼시의 3번 키커는 유벤투스(이탈리아)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서 경험이 많은 알바로 모라타였다. 그러나 모라타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도 너무 방향을 틀어 때린 나머지 왼쪽 기둥을 벗어나고 말았다. 중간에 두 명의 선수가 몰아서 차는 ABBA 방식 승부차기에서 이런 변수가 승부의 갈림길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들어낸다는 것을 말해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