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MBC 월화드라마 '파수꾼'은 범죄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모여서 아픔을 이겨내고 정의를 실현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김영광은 극 중 겉은 속물이지만 실상은 억울한 사연을 품고 복수를 계획하는 검사 장도한으로 분했다. 마지막 회에서 조수지(이시영 분)를 구하고 대신 목숨을 잃어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화제성에 비해 시청률은 아쉬웠지만, 배우 김영광은 이번 작품에서 빛났다.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평도 적지 않다. 그가 맡은 장도한은 실없고, 실속만 챙기는 검사, 파수꾼을 이끌며 정의를 지키려는 대장을 오가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김영광은 장도한의 야누스적인 매력을 극에 녹여내며 그의 필모그래피에 한 획을 그었다.
열아홉에 모델로 데뷔해 스무 살에 연기를 시작한 그. 출연한 작품은 드라마와 영화를 포함해 스무 편에 달한다. 그러나 늘 호평만 있었던 아니었다. 게다가 모델 출신이라는 선입견도 그의 노력을 희석시켰다. 꾸준히 연기 내공을 쌓아온 지 어언 10년인 김영광, 그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장도한은 주변 인물을 속이기 위해 연기를 하는 캐릭터입니다. 사람들을 현혹하거나 암시를 줘서 본인 뜻대로 움직이게 하죠. 장도한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갔나요?
장도한이라는 인물을 만화스럽게 표현하면 재밌겠다 싶었어요. 성격의 간극이 큰 인물이잖아요. 캐릭터를 잘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얘가 가진 비밀을 다 보여줬을 때 큰 충격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도한이라는 인물이 조수지(이시영 분)를 만나 달라지는 과정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준비한 건 많았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극 중에서도 다른 인물들을 속여야 하는 역할이잖아요. 장도한이 상대해야 사람들을 그룹으로 만들어서 그들에게 다른 태도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가령 장도한이 입는 슈트의 색깔도 그룹마다 다르게 가져갔어요. 복수 상대를 만날 때는 무채색의 슈트를 입었고 코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는 밝은색 의상을 입는 식으로요.
장도한이 죽으며 끝을 맺었습니다. 결말이 다소 충격적입니다.
작가님과 감독님 배우끼리 열린 결말을 위해 마지막의 노력한 부분이 있는데 시청자분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엔딩에서 도한이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자살이 아닌 희생이라고 생각해요. 희생을 선택하는 데 있어 짧게나마 고민을 보여주지 못했죠. 사고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마지막 회는 정말 시간이 없었는데 매끄럽게 못 보여드려 아쉬워요.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열린 결말로 끝낼 수 있었죠. 그런데 사실 저는 초반부터 장도한이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장도한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요?
장도한에게 죽음은 속죄의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장도한은 오로지 복수를 향해 가던 사람이잖아요. 윤아의 죽음을 방관한 것도 결국 복수 때문이었고요. 반면 조수지는 굉장히 행동파고 감정적이에요. 그게 도한이의 어떤 부분을 깨워줬다고 생각해요. 조수지로 인해 도한이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의 죄의식을 되묻게 되고, 결국 속죄를 위해 희생했다고 봐요.
하지만 결말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은데요. 비판을 감수라고서라도 보여주고자 했던 건 뭔가요?
복수를 위해 괴물이 된 인물이 복수를 마치고 난 뒤에 어떻게 될까, 그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장도한이 사고로 인해 죽은 것으로 보일까 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허락돼서 장도한이 죄의식을 자각하고 속죄의 의미로 희생을 선택했다는 설명이 들어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워요. 그렇지만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감독님께서 편집을 굉장히 잘해주셨어요.
결말 때문에 말이 많았지만, 그만큼 이 드라마가 화제가 됐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파수꾼'과 장도한은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그러니까요. 그동안은 그런 게 없었거든요. 사실 저는 반응을 잘 안 보는 편이에요. 대본의 의도를 따르지 않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먼저 우려하고 경계할까 봐서요. 이번에는 주위에서 반응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장도한을 두고 김영광의 인생 캐릭터라는 말이 나오는데, 어때요?
너무 좋고, 기쁜데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현재 저의 인생캐릭터는 맞는 것 같아요. 감사드리죠. 그런데 매번 연기에 대해서는 만족스럽지 못해요. 연기자들이 스스로한테 박하게 구는 편인데, 저도 마찬가지로 전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요.
'파수꾼'을 보며 연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기가 재미있어요. 너무 어렵기도 하고요. 어떤 장면에서는 고도의 예민함이 필요한데 어떤 장면에서는 바보같이 연기해도 시청자분들이 속으시더라고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실 연기를 대하는 자세는 처음부터 진지했는데, 그게 사람들에게 보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아요. 제가 심하게 동요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혼자서 생각하는 것은 많으나 티를 잘 안 내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꿈의 크기가 커지고 농도가 진해지는 것 같습니다.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 가까이 되는데 아직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어요. 주목받고 싶다는 갈증은 없나요.
격하지는 않아요. 다만 작품을 계속하면서 김영광을 대표할 수 있는 연기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커요. 가령 류승범 선배님이 양아치 연기의 일인자로 평가받듯 저도 한 영역에 있어서 독보적인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배우 김영광에게 맞는 장르를 찾은 것 같아요?
아직 작품을 많이 안 해봐서요. 다섯 개만 더 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저는 진한 장르물이 재밌더라고요. 전쟁을 다룬 작품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싸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충격이나 공포감, 도를 넘어선 감정들이 있잖아요. 그게 저를 통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주연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이번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내가 주인공이야'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극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가 중요하죠. 물론 주연으로서 보여드려야 하는 부분이 있죠. 그래서 항상 개연성과 타당성을 생각하면서 연기하려고 해요. 연기로 칭찬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주변 반응에 심하게 동요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무던히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영광에게 '파수꾼'은 어떤 의미를 가진 작품인가요?
이번 드라마를 촬영하면서는 유독 외로웠어요. 장도한이 파수꾼의 다른 동료들에게도 자신이 설계자인 사실을 숨기고 활동했던 이유도 있고, 그래서인지 촬영장에서도 다른 배우와 함께 어울리는 장면도 많지 않았어요. 게다가 복수심을 보여주고 나니까 캐릭터가 외로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드라마로 확실히 얻은 게 있어요. 현장에서 좀 더 신나게 일하는 법을 알려준 것 같아요. 그래서 빨리 새로운 걸 하고 싶어요.
그래서인가요? 벌써 차기작 소식이 들립니다. 박보영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영화 '너의 결혼식'을 검토 중이라고 들었어요.
아마 하게 될 것 같아요. 처음으로 누나가 아닌 상대 배우라 재미있을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인기와 명예보다는 좋은 연기자로서의 스펙트럼을 탄탄히 쌓고 싶은 마음이 커요. 조금은 느릴지라도 천천히 하나씩 배워나가며 롱런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사진 와이드에스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