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설농탕으로 유명한 외식업체 쿠드가 지난해 서울 이태원에 미술관을 열었다. 그런데 이 미술관 좀 이상하다. 일단 입장료가 없다. 대신 기부하라고 한다. 1,000원 이면 족하다.
갤러리엔 외국의 유명 명화 한 점 없이 국산 도자기만 가득하다. 돈 좀 번 기업들이 상속이나 세금 문제로 갤러리를 내곤 하는데 혹시?. 쿠드를 27년째 이끌고 있는 오청 대표가 이 미술관에 얽힌 사연을 전해 왔다.
◇ "아버지는 15년 동안 21번 망하셨어요"
신선설농탕은 오청 대표의 아버지인 오억근 창업주가 1981년 서울 잠원동에 문을 연 기사식당 '대림장(1987년 신선설농탕으로 상호 변경)'에서 시작됐다. 작은 식당이 다 그렇듯 오억근 창업주가 주방을, 아내가 카운터를 맡았다.
오청 대표가 이 기사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오 대표의 나이 스물 일곱 살 때였다. 지금 보면 기업을 물려받은 것이지만, 당시 상황에선 멀쩡한 20대 대졸 청년이 기사식당 직원이 된 것이다.
아버지의 2세 수업도 없었다. 기사식당이 자리를 잡아가자 서당 밖에 다닌 적 없는 아버지는 공부를 해야겠다며 오 대표에게 식당을 맡기고 떠났다.
"아버지는 15년 동안 21번 망하셨어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다 숫자를 잘 모르셔서 그렇지 사실 더 망했어요. 거의 마지막에 식당 하나가 잘 되자 40대 후반 나이에 공부 하셔야 한다고 떠나신 거죠."
오 대표는 아버지를 대신해 탕 끓이고 재료 사고 직원 구하는 것 까지 도맡아야 했다. 한양대 금속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자 사회 경험 없는 20대 청년은 좌충우돌 하면서 일을 배웠다.
직원들은 오 대표 보다 나이가 열살 이상 많아 관리하기 힘 들었고, 손님의 대다수를 차지한 택시 기사들은 대졸 출신 젊은 관리인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아들이 식당 일 하는 것을 결사 반대한 어머니의 도움은 꿈도 꾸지 못했다.
"저를 보고 금수저라고 하는데 (아버지는) 제게 고생을 물려주신 것 같아요. 재산을 물려 준 게 아니라 당신이 하고 계시던 일을 제게 물려주셨어요. 그 때 고생을 하도 해서 더 많이 배우게 됐으니 이제는 감사하게 생각해요."
오 대표는 식당 주인이라면 웬만해선 놓지 않는다는 '카운터'를 직원에게 맡기고, 밖으로 나가 외식산업을 공부하고 체험하고 적용했다.
직원 유니폼 제작을 시작으로 음식 매뉴얼 제작, 정산시스템 개선, 일관된 맛을 위한 중앙공급식 주방 구축 등 젊은 감각을 가미한 기업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IMF 외환위기와 광우병 파동 등 핵 폭탄급 외부 충격도 견뎌 냈다.
국물 맛 좋기로 소문난 기사식당이었던 잠원동 신선설농탕은 풋내기 20대 오너 아들이 맡은 지 27년만에 지점 42개, 연 매출 800억원, 직원 수 700여명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 했다.
◇ "기부는 직원들이 원해서 시작됐어요"
신선설농탕 하면 떠오르는 기부 활동은 오 대표의 의지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2007년말 사업계획이 계기가 됐다.
오 대표는 새해 사업 아이템에 대해 직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 했다. 결과는 이상했다. 직원들의 70%가 사회 사업을 적어냈다.
"제가 원한 것은 냉면이 됐든, 칼국수가 됐든, 어떤 브랜드에 대한 제안을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결과를 보고 이해가 안 됐지요. 직원들이 사회사업과 영리사업을 구분하지 못하나 싶었어요"
직원들이 사회사업을 원했던 것은 자신들이 일하는 회사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회사, 자랑스러운 회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식당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큰 부분을 차지 했다.
"식당업에 종사한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당당하고 자신 있게 얘기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어요. 직원들이 좋은 일 하는 기업을 원했던 이유가 사회적 인식 때문이라는 것은 조금 충격적이었어요"
직원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오 대표는 마땅한 사회사업을 물색했고, 음식점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밥차'를 첫번째 나눔 활동으로 선택했다.
일단 밥차를 몰고 나가자 현장의 어려움이 절실하게 다가왔고, 필요한 사업들이 하나 둘 곁가지를 치면서 늘어났다.
나눔 활동이 이어지자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근속기간이 늘어났다. 또한 신선설농탕이 따뜻한 기업의 대명사 처럼 인식되면서 고객과 사회로부터 사랑 받는 기업이 됐다. 의도하지 않았던 홍보 마케팅 효과까지 거둔 것이다.
"과분합니다. 사실은 제가 혜택을 봤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한 것 보다 더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죠. 더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면 좋겠어요. 다른 기업인들에도 권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밥차'에서 시작된 나눔활동은 지금은 오픈점포 매출 기부, 나누미, 자연애 사업 등 10여개로 늘어났고, 기부금은 매년 3억~5억원 상당이다.
오 대표는 이와 별도로 고액 개인기부가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의 17번째 회원이 됐다.
◇ "음식을 담는 그릇, 도자기 박물관이 꿈 이에요"
쿠드는 2015년11월 본사를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 이태원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꼭 6개월 후인 지난해 5월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신선'을 개관했다. 본사 건물과 스페이스 신선은 쌍둥이 건물 처럼 나란히 서 있다.
스페이스 신선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10개의 나눔활동 가운데 하나를 골라 1,000원 이상 기부하면 입장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해외 유명 명화 하나 없이 한국 작가들이 만든 도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대중 음식인 설렁탕 파는데 사치스럽거나 호화롭게 할 수 없어요. 특히 도자기는 음식을 담는 그릇입니다. 한국의 작품 도자기와 우리의 음식을 같이 제공하면 멋이 있지요"
도자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국내 도예가들도 많이 만나게 됐다. 수입이 마땅치 않은 도예가들이 많다고 한다.
"(도자기를) 만들긴 하는데 팔리지 않는 것이죠. 그 심정을 제가 잘 알아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식당이 수입이 없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그런 어려웠던 상황을 이 분들에게서 본 거예요."
도예가들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하나 둘 작품을 사게 됐고, 더러는 매장에 걸다가 결국은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만들게 됐다. 먼 훗날에는 일회성 전시가 아닌 도자기들을 모아 두고 볼 수 있는 도자기 박물관을 열고 싶단다.
오 대표는 오로지 한식이다. 다른 음식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미술관도 한식과 맥을 같이 한다. 개관 첫 전시는 한복이었고 두 번째는 도자기, 다음 주제는 한식이다.
"한식을 발전 시키고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할 겁니다. 외국에 있는 한식당에 가면 부채 하나, 색동저고리 하나 걸려 있는 게 전부예요. 언젠가 우리가 해외에 진출하면 한식과 함께 한국의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스물 일곱 살의 청년 오청이 아버지의 기사식당을 물려 받은 지 27년째가 됐다. 그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지 물었다.
"아버지는 제게 사업의 기반과 함께 고생을 물려 주셨어요. 저는 제 자식에게 고생을 물려줄 것 같지는 않아요. 제 아이들에겐 옳고 그름을 생각할 줄 아는 정의로움을 물려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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