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투기 광풍이 불고 있다. 공식 화폐도 아닌 비트코인 가격이 이달 들어서만100% 이상 치솟았다. 한 뿌리 가격이 1년 중산층 생활비의 10배를 웃도는 수준까지 올랐던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를 연상케 한다. 공급 제한과 온라인 거래 활성화에 따라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기대로 쉽게 누그러지기도 힘든 상황이다.
각국 국민의 화폐생활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하는 현금 없는 사회가 닥치고 있는 점이다. 오히려 국가의 공식적인 화폐인 법화(法貨, legal tender)를 갖고 있으면 부패와 탈세 등의 혐의로 의심받는, 즉 하버드대 케네스 로코프 교수가 주장한 ’현금의 저주(curse of cash)’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화폐개혁 필요성이 증대되고 논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실제 추진한 국가도 의외로 많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짜리 새롭게 도안해 2013년에 발행했다. 이듬해 일본은 20년 만에 10000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선보인데 이어 2015년에는 중국, 작년 말에는 인도네시아가 신권을 내놓았다.
화폐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국가도 있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 북한 등이 대표적인 국가다. 작년 11월 인도는 전체 화폐유통물량의 86%를 차지하는 구권 500루피, 1000루피를 신권 500루피, 2000루피로 교체하는 변형된 화폐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같은 시점에 베네주엘라도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고액권 발행을 중단하거나 폐지 논쟁도 갈수록 거세지는 추세다. 2000년 캐나다, 2014년 싱가포르에 이어 작년 5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고권종인 500 유로 발행을 2018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미국도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중심으로 최고권종인 100달러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세 가지 형태의 화폐개혁에 있어서 공통적인 특징은 고액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각국 국민의 화폐생활에서 비트코인과 같은 대안화폐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고액권일수록 화폐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대신 부패와 뇌물, 탈루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액권 회수율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에서 100달러 회수율은 2013년 82%대에서 작년에는 75%대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 500 유로는 102%대에서 85%대로 급락했다. 올해 1분기 중 5만원권 회수율은 60%대까지 높아졌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다. 고액권 회수율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퇴장(hoarding)’됐다는 의미다.
화폐개혁을 추진한 국가별로 목적달성 여부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화폐개혁 목적을 달성한 국가는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해 기존의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되, 다른 하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병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해당한다.
신흥국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결부시켜 신권을 발행했다. 그 후 이들 국가는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대외위상 증가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물가가 앙등하고 부동산 투기가 불면서 경제가 더 불안해 졌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가 대표적인 국가다. 신흥국 중 유일하게 인도의 화폐개혁 조치만 부분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그 어느 국가보다 우리도 비트코인 투기가 심하다. 투기 광풍 뒤에 버블이 터지고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부패도 심하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기득권에 대한 혐오증도 최고조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도 기득권을 개혁하고 부패를 청산해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를 구축해 달라는 국민의 촛불 열망 속에 태어났다.
법화 시대에 있어서 화폐개혁을 추진하는 것 만큼 국민의 관심이 높은 것은 없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더 그렇다. 특히 경제활동 비중이 놓은 대기업과 부자, 권력층일수록 저항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어떤 형태든 화폐개혁의 추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선진국은 이런 전제조건 성숙 여부를 중시했지만 신흥국은 부패 청산과 기득권을 손 볼 목적으로 전제조건 충족 여부보다 상황논리에 밀려 급진적인 방안까지 동원해 추진했다. 이 점이 결과의 차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명박 정부 때 도입했던 5만원권을 폐지하자는 등 화폐개혁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 국민의 화폐 생활이 변하는 만큼 화폐개혁도 논의하고 필요하면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다른 신흥국의 전철처럼 상황논리에 밀려 추진하면 실패로 끝나고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국민(주로 부자와 기득권층)도 화폐개혁은 무조건 반대하면서 비트코인 투기와 같은 돈 버는 데는 앞장서는 이중적인 태도는 버려야 한다.
화폐개혁 추진 여부와 관계없이 비트코인 등 대안화폐가 확산됨에 따라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시급하다. 크게 네 가지다.
무엇보다 본원통화의 대체문제다. 갈수록 본원통화의 상당부분을 대안화폐가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보면 본원통화 축소에 따른 화폐발행차익(seigniorage)의 감소를 의미한다. 특히 화폐발행차익 감소는 통화정책 수행비용의 재정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켜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둘째,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대안화폐를 누가 발행하느냐와 대안화폐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중앙은행 이외의 다른 주체들이 대안화폐를 발행할 경우 현금보유 성향의 저하로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크게 약화된다. 또 대안화폐가 현금통화와 결제성 예금까지 대체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할 경우 발행주체와 관계없이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심할 경우 무력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셋째, 대안화폐의 발달로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데에는 예상과 달리 하락하고 있다. 통화승수이론에 따르면 통화량은 본원통화와 통화승수에 의해 결정되고 통화승수는 현금보유비율과 지급준비율에 따라 좌우된다. 그만큼 고액권을 중심으로 현금이 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대안화폐의 발달은 여러 각도에서 통화정책의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 통화공급 조절→금리 변화→총수요 증감→성장률 혹은 물가 조절)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 대안화폐의 발달로 모든 금융거래에 있어서 위험 헤지가 수월해짐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금리변화에 덜 민감해져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
대안화폐에 따른 본질적인 문제와 함께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중앙은행의 예측력을 강화하는 과제도 시급하다. 지금처럼 다른 전망기관보다 늦게 그것도 예측력이 월등히 높지 않고서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거나 선제적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예측모델 재설정, 시계열 일관성 유지, 정성적 평가 등에 고민도 있어야 한다.
특히 신뢰를 확보하는 과제는 통화정책 경로에서 금리와 총수요 간 민감도를 끌어 올리는 데도 중요하다. 대안화폐 확산으로 갈수록 불확실하고 길어지는 통화정책 경로에서 중앙은행 총재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말을 자주 바꾸거나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예측치를 언급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통화정책 추진 과정에서 흐트러진 정책수단과 중간조작, 최종목표 간 인과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테면 중앙은행 입장에서 성장과 물가 간 우선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금리조작이냐 통화량 변경이냐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추세적으로 물가가 안정된 시대에서는 중앙은행 목표, 통화정책 관할범위, 적정금리 산출방식, 감독범위 등도 재설정해야 한다.
대안화폐 확산에 따른 새로운 환경에 맞게 새로운 통화지표를 개발해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등을 정확히 추정해야 한다. 갈수록 가속력이 붙을 가상화폐 발행에 대한 규제와 위조지폐 방지 등을 통해 ‘폐지 혹은 무용론’까지 불고 있는 현찰(법화)의 위상도 강화해야 할 때다. 각종 가중치와 산출방식 현실화를 골자로 한 통계개편 작업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