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부 이야기②] 무일푼 청년 창업가, 독과점 깨는 혁명 꿈꾼다… 김주윤 닷(DOT) 대표

입력 2017-05-25 10:57
수정 2017-08-10 09:10
전 세계 시각 장애인은 2억8,500만명, 이들이 글을 읽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점자 정보단말기다.

점자 단말기 가격은 200만원에서 500만원대, 무게는 무려 2~3kg. 가볍게 만들려는 시도도, 싸게 공급하려는 노력도 없이 수십 년째 이 상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숨 막히는 기술 진보와는 완전히 분리돼 있는 세상이다.

혁신 없는 세계 점자 정보단말기 시장을 완전히 바꿔놓겠다고 겁 없이 뛰어 든 스타트업이 있다. 2014년 여름, 사무실 구할 돈이 없어 모 대학 연구실에 몰래 들어가 작업 하던 세 명의 20대 청년들이 만든 회사, 닷(DOT)이 그 주인공 이다.

3년 간의 연구 끝에 타자기 같던 점보 단말기는 27g 짜리 스마트시계로 쿨 하게 변신했고 수백만원을 호가하던 가격은 30만원으로 떨어졌다.

단돈 200만원 들고 세상을 바꾸겠다며 창업한 스물여덟살 청년 CEO 김주윤 닷(DOT) 대표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김 대표의 결혼식 이틀 후이자 신혼여행 떠나기 하루 전 날 이뤄졌다.



◇ 가격 올리라는 투자자 요구를 거절하다

닷(DOT)에게 올 상반기는 긴장감 초절정의 시기이다. 2014년 창업 이후 지난 3년간 아이디어로만 떠다녔던 제품이 처음으로 공장에서 생산돼 글로벌 시장에 출시되기 때문이다.

닷의 점자 스마트시계 '닷워치'는 한달 전인 4월 영국으로 2,000개가 처음으로 선적됐다. 미국의 시각장애인 가수인 스티비원더에게도 배송됐다. 이미 전 세계 13개국 14만대(약 300억원)가 선주문된 상태다. 첫 선적 날 가슴이 벅찰 법도 한데 김 대표의 반응은 냉정할 정도로 차분했다.

"그냥 담담 했어요. 희로애락이 별로 없는…그렇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저희가 제일 기뻤던 순간은 이 시계를 만들어서 처음으로 우리 회사 시각장애인 직원이 문자를 읽을 때 였어요."

김 대표가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는 첫 선적의 기쁨 보다는 돈을 받고 물건을 파는 사람의 책임감 때문이다. 그는 상용화에 앞서 테스트용으로 나간 시제품(샘플)에 대한 고객 반응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처음 샘플이 나갔을 때 반응은 정말 좋지 않았어요. 밴드가 너무 불편하다, 갑자기 멈춘다 등등 많았어요. 문제점 들을 열심히 고쳐나가서 최근에는 그래도 사소한 것들만 지적하게 된 거예요."

"(미국 시각장애인 가수인) 스티비원더 측과도 미팅을 조율하고 있어요. 제품을 보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을 받아야 하니까요. 본인하고 연결되면 굉장히 쉬워지는데 유명한 분들 곁에는 매니저들이 많아서 조율이 필요하더라고요."

점자 단말기의 무게를 기적 처럼 줄인 것은 점자를 구현하는 전자석 모듈 '닷셀'을 독자 개발한 덕분이다. 기존 '피에죠셀'의 10분의 1 크기로 줄여 시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기술에만 특허가 30개 있다.

문제는 가격. 닷의 청년들은 스마트시계의 가격을 처음에 15만원으로 잡았다가 원가와 유통 등을 감안해 우여곡절 끝에 30만원으로 결정했다. 투자자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가격을 올리라고 아우성이었지만 고집스럽게 가격 상한을 지켜 냈다.

물건이 잘 팔리면 가격을 올리는 시장원리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게다가 스마트시계는 선주문이 300억원 이나 들어올 정도로 당분간 판로 걱정도 없는 상태 아닌가.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제품 가격이거든요. 우리는 가격부터 설정하고 그 가격에 맞춰 기술개발을 했습니다. 비싼 가격에 파는 게 아니라 기업이 성장 가능한 이익을 남기는 수준에서 가격을 설정해 시작한 거예요."

닷은 스마트시계 보다 한 단계 진보한 일종의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 '닷패드'를 구글과 함께 개발 중이다. 내년 구현 목표로 진행 중인데 닷패드의 판매 가격은 100만원으로 이미 정해 놓았다.



◇ 네 번째 창업…나에게 묻다 "왜 이 일을 하는가?"

닷은 김 대표가 만든 네 번째 회사다. 김 대표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의 우상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미국으로 조기 유학 간 뒤 창업해 성공한 것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시애틀의 워싱턴대학에 입학 한지 6개월도 안돼 첫 번째 창업에 나섰다. 대학생들의 구인구직을 도와주는 사업이었는데, 기술공동 창업자인 인도인이 갑자기 모국으로 떠나면서 시쳇말로 말아 먹었다. 이어 유학생들을 도와주는 멘토링 서비스와 트럭판 우버(차량공유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정말 밑바닥 부터 사업을 배웠어요. 말아먹기도 했고, 노숙도 해보고 재미 있었어요. 그때는 열정만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나마 돈을 좀 벌었던 세 번째 창업 '트럭판 우버'에서 문제가 생겼다. 김 대표 자신이 만든 회사인데 이상하게 흥이 나지 않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결국 회사를 접고 대학으로 돌아갔다.

"세 차례 창업하면서 뭘 하면 잘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굉장히 많이 했는데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어요. 그 동안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제 자신을 바칠 수 있는 창업을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열정이 사라져 버렸어요."

김 대표는 오랜 방황 끝에 유학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무일푼에 패잔병 신세 였지만 미국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시각장애인용 대형 점자 단말기를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김 대표는 그러나 곧바로 사업에 착수하지 않고 시각 장애인들을 만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문제점과 필요성을 명확하게 확인했다.

"한국에 와서 여러 학교를 돌아다녔는데, 8살 짜리도 이 무거운 단말기를 들고 다녀요. 그걸 보고 작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가격이 수백만원 이나 되니까 아이들이 다 사지 못 하고 거의 다 빌려 쓰고 있었어요. 크기와 함께 가격을 낮추자. 바로 여기가 시작점 이었어요"

당시 그는 정말 돈이 없었다. 창업한 게 모두 실패한 데다, 아버지 사업체까지 기울면서 집안 형편도 굉장히 어려워 졌다.

미국에서 만난 유타(Utah) 대학생 성기광(현재 닷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씨가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 200만원으로 명지대학교 근처에 원룸을 얻었다. 또 다른 친구 주재성(현재 닷의 최고디자인책임자(CDO))을 끌어들여 디자인을 맡겼다.

이렇게 20대 청년 세 명은 여름방학 동안 인적이 뜸한 대학교 연구실에 몰래 들어가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돈이 없었어요. 짜장면 사 먹을 돈도 없었어요. 명지대 연구실을 몰래 쓰고 학교 밥 먹고 들어와서 자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다 용인시에서 주최하는 IoT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2,000만 원 지원 받았어요. 그것으로 사무실 마련하고 시제품 개발하고…저는 흙 수저 중의 흙 수저 였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각종 경진대회 수상으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상금을 받아 그때 그때 개발비를 충당하던 중 슬슬 그들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SK그룹을 시작으로 다음청년창업 펀드 등이 지원에 나섰고 지난해 산업은행과 벤처캐피탈이 약 55억 원을 투자하면서 제품 양산을 위한 자금을 확보했다.

◇ "대학은 중퇴할 것 같아요…신혼여행은 출장 겸 싱가포르로"

김 대표와 닷은 지금 가장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창업 4년차, '아이디어'라는 소프트웨어가 '제품'이라는 하드웨어로 구현돼 시장에 나오는 순간이다. 시장은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고 경쟁자들은 냉혹하게 응대할 것이다.

"장애인들이 쓰는 물건은 다 비싸요. 많은 것들이 독점 구조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우리가 이 시장에 뛰어들어서 시장을 오픈 시키고 가격을 완전히 낮춰 버리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은 세상이 될 것 같아요."

4월 제품 출시가 시작되면서 상반기 매출 20억원이 처음으로 발생했다. 올해 매출을 100억원~150억원까지 보고 있다는데 이미 선주문 된 물량이 300억원이니까 올해 절반 정도만 납품하는 셈이다.

김 대표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2가지를 당부했다. 첫째는 '무엇'이 아니라 '왜' 창업하는지 창업자 자신이 분명한 답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창업자 자신을 절대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당부가 좀 이상했다. 창업자와 회사는 한 몸 아닌가.

"많은 창업자들이 너무 큰 리스크를 지는 경향이 있어요. 제가 지금 네 번째 창업이잖아요, 회사와 창업자를 분리하고, 개인적인 리스크를 최대한 배제 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요. 자신과 회사를 공동 운명체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창업자가 회사를 동일시 하는 순간, 냉철한 의사결정이 어렵고 장기전에 취약하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런데 인터뷰 막바지, 김 대표는 휴학 상태인 미국의 대학을 결국 중퇴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틀 전 결혼한 신부와 내일 신혼여행을 떠나는데 출장을 겸해 싱가포르로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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