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라인' 진구 "인기? 딱 보름 만에 식더라" [인터뷰]

입력 2017-04-17 14:41


배우 진구는 쉽게 들뜨지 않는다. 대중의 높은 관심과 인기도 어느 순간 저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올인’을 시작으로 영화 '달콤한 인생', '비열한거리', '마더'를 거쳐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뜨고 지는 것을 반복하며 터득한 것이라면 뭉근하게 제 몫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과도하게 약 쓸 필요 없다. 이 두 가지는 진구가 삶과 연기를 대하는 방식이다. 2003년 데뷔작 '올인'을 찍었을 때 얄짤없이 딱 보름간, 그리고 지난해 ‘태양의 후예’로 두 번째 반짝인기를 누렸다. 1년이 지나고 거품이 빠진 것도 그 나름대로 좋다는 그다.

벌써 15년째다. 데뷔 후 자신만의 색깔을 확고하게 가진 배우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데뷔작인 올인이 너무 강렬했던 것일까? 꽃미남 톱스타 자리보다 연기파 조연배우로 그를 떠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주연의 자리를 위협하는 ‘신 스틸러’였다. '비열한 거리'의 종수, '마더'에서의 진태 모두 조연이라 하기엔 존재감이 상당했던 인물이다. 특히 '태양의 후예'에서 진구만이 소화할 수 있는 상남자 캐릭터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여심을 뒤흔들어 놓은 바 있다.

그 기세를 몰아 이번에는 영화 '원라인'으로 다시 한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미지의 변신도 꾀했다. 상남자 캐릭터가 아니라 넉살 좋은 작업 대출계의 전설이 되어 돌아왔다. 젠틀하고 여유만만한 태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구렁이 같은 인물이다.

처음엔 '원라인' 출연를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대본을 보면서 어떤 메시지를 느끼지 못했어요. 장 과장 캐릭터 역시 파격적이거나 다채로운 매력도 느껴지지 않아서 못하겠다고 했었던 거죠. 그런데 감독님을 만나 생각이 바뀌었어요. 장 과장이 어떤 인물이고, '원라인'이 어떤 영화인지 듣고 나니 결심이 섰습니다.

감독님의 어떤 말이 마음을 움직였나요?

감독님의 자신감을 느꼈어요. 사람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강한 마음이요. 장 과장 캐릭터 역시 준비할 것 없이 편안하게 평소 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제안하시더라고요.

오히려 그 말이 부담일 수 있을 텐데요.

맞아요. 하하. 약간 부담감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원한 건 제가 가진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편안하게 연기했어요.

장 과장은 선, 악이 모호한 인물입니다.

저에게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를' 모습이 있어요. 의도한 건 아닌데 몸에 묻어있다고 할까요? 장 과장을 연기하면서 그런 모습을 꺼냈죠. 이 인물이 착할까? 나쁠까? 관객들이 헷갈려 하면서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희열을 느껴요.

감독님 역시 그런 장 과장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 했나요?

네. 감독님께 슬픈 장면에서 왜 울어야 하고, 웃기면 왜 다 웃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평소 연기할 때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는데 감독님께서 딱 그 이야길 하시는 거예요.

감독님과 합이 잘 맞았나 보네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편집 점이 딱 맞아 떨어졌어요. 봉준호 감독님과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말하지 않고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지점이 있어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죠. '원라인'도 일단 한 번 해보자는 식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촬영을 시작하면 잘 풀렸어요. 입봉 감독님인데도 베테랑의 냄새가 났어요.

감독님의 디렉션 방식이 독특하다고 들었습니다.

배우마다 디렉션이 다 달라요.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배우에 따라 감정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다르더라고요. 저한테는 '알아서 하라'고 하셨어요.

결과적으로 그 디렉션이 본인에게 맞았다고 생각하세요?

감독님이 저를 너무 믿어서 오히려 위험한 건 아닐까 걱정했죠. 너무 방목하는 것 같고. 그런데 영화를 보니 그 방향성을 알겠더라고요.

'태양의 후예'로 인기가 뜨거웠죠. 그 열기가 여전한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많이 죽었죠. 하하. 저는 이런 인기에 있어서 크게 들뜨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인기에 너무 연연하면 날아가겠더라고요. 너무 신나고 행복해서 자신을 놓칠 것 같았어요. 연기도, 주변 사람들까지도요.

그런 컨트롤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다 경험이죠. '올인' 때 잠깐이었지만 엄청난 이슈를 몰았었거든요. 광고도 많이 찍고 러브콜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딱 보름 만에 식더라고요. 적잖은 상처였어요. 그땐 처음이었으니까요. 뜨겁게 끓어올랐다가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처박히는데 아주 힘들었어요. 한때는 대중을 미워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이제 그것을 기반으로 덜 상처 받으려고 하고 그저 감사해하려고 해요. 아직 완전히 거품이 빠지진 않은 터라 그저 행복해하고 있어요.

높아진 인기 때문에 오는 공허함이나 초조함은 없나요?

없어요. 내 주변엔 참 바보 같은 사람이 많아요. 내가 방심하거나 자만하거나 조바심을 내려고 할 때마다 나보다 더 열악한 고민으로 날 찾아오는 바보들이죠. 그들과 얘기하다보면 나 스스로 더 붙잡고 각성하게 돼요.

배우로서 목표하는 지점은 뭔가요?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는 게 목표에요. 나이가 들수록 내가 연기할 수 있는 역할도 작아질 거고, 체력도 떨어지겠지만 그 시점에 다다랐을 때 주어지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상실감 없이 연기하고 싶어요.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고요.

'원라인'의 장과장도 스스로 돋보이기 보다는, 주변을 살피는 인물입니다. 그런 면에서도 진구씨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고요.

장과장이 사라지는 시간이 꽤 있습니다.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인물은 배우로서 욕심이 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제가 없는 동안 박종환 배우나 이동휘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10년 뒤 이 친구들은 저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을 것 같아요. 10년 전이었다면 아마 '비열한 거리'의 '종수'가 됐겠죠.

'비열한 거리'의 종수는 진구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오디션을 숱하게 떨어졌을 때에요. 연기가 정말 하고 싶은데 너무 많이 떨어지니까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종수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이라 내려가서 합숙하면서 말투를 배웠어요. 그래도 잘 안돼서 오디션은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갔죠.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까 오디션이 되더라고요. '비열한 거리'는 저한테 그런 작품이에요. 절박함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려준 작품.

이후에 '마더'로 남우조연상을 받았죠?

사실 '비열한 거리'로 받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오디션이나 상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마더'는 워낙 좋은 선배들과 함께 해서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책도 한 번에 쑥 읽혔고요. 이후에 연기하는 게 더 재밌고 편해졌죠. 비우는 법을 알았으니까요.

그 모습이 '원라인'의 양경모 감독의 눈에 보였나 봅니다.

제가 평소에도 거짓말을 잘 못해요. 연기로는 더 못하죠. 제가 믿지 못하는 건 잘 못하겠어요. 그래서 생활연기가 어렵기도 해요. 차라리 장르가 확실하면 믿고 갈 수 있는데, 생활은 정말 생활처럼 나와야 되거든요.

'태양의 후예'를 보면 로맨스나 멜로도 좋던데요?

아직 어렵습니다. 군인이 편해요. 하하. 그래도 격정 멜로는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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