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디락스’와 ‘애프터 크라이시스’…세계 증시는 어느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

입력 2017-04-17 09:23


최근 들어 예측기관들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속속 상향 조정하고 있다. 예측력이 가장 높다는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1%(작년 10월)에서 3.4%(올해 3월)로 조정했다. 우리 경제도 그렇다. 연초 2.5%까지 하향 조정했던 한국은행은 4월 수정 전망에서 2.6%로 0.1% 포인트 높여 발표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초 예상보다 미국 등 선진국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고 신흥국 경기도 회복국면에 진입하기 있기 때문이다. 더 주목되는 것은 내년 세계경제성장률을 3.6%로 올해보다 높게 내다봐 2016년 2분기를 저점으로 진입한 세계 경기의 회복국면이 2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회복기간이 평균 1년 내외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세계경제 성장률이 상향 조정되는 것과는 별도로 월가를 중심으로 '애프터 쇼크 혹은 애프터 위기(after shock or crisis)'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점이다. ‘애프터 쇼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위더머 형제와 신시 스피처가 공동 출간한 ‘미국의 버블경제’라는 책에서 미국경제는 부동산, 주식, 민간부채, 소비지출, 달러, 정부부채라는 6개의 버블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가운데 부동산, 주식, 민간부채, 소비지출에 낀 버블기둥은 리먼 사태를 계기로 붕괴됐고 나머지 두 개 기둥인 달러와 정부부채에 낀 버블도 터진다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국경기와 주가는 정부가 푼 돈에 의해 떠받치고 있지만 조만간 위기 이후 또 다른 충격인 ‘애프터 쇼크’가 찾아오면서 이마저도 무너진다는 것이다.

‘애프터 쇼크’는 ‘10년 주기설’과 맥을 같이한다. 위기극복 3단계 이론에 따라 첫 번째 단계인 유동성 부족과제는 ‘빅 스텝’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위기를 낳게 한 시스템이 해결되지 않으면 위기 발생 10년차에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한 마디로 위기 10년차에 세계경제에 복병이 될 수 있는 문제를 통칭해 ‘애프터 크라이시스’라 부른다. 올해가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햇수로 꼭 10년째다.

하지만 올해 남은 기간 증시 전망과 관련해서는 ‘골디락스’ 국면에 대한 기대도 만만치 않다. ‘골디락스’라는 용어는 어느 배고픈 소녀가 숲속을 가다가 곰이 차려놓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먹기에 가장 좋은 음식을 먹었다는 영국의 전래동화에서 유래된 용어다. 경제나 증시가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는 이상적인 국면을 말한다.

‘애프터 쇼크’와 ‘골디락스’. 이 두 상반된 운명 가운데 월가가 어느 방향을 갈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세계 증시를 이끌고 있는 미국 증시의 지속가능 과제인 ‘3대 구조변화(triple paradigm shift)가 어디까지 와있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20,000‘ 시대가 열린 이후 미국 증시가 주춤거리자 월가의 시장참여자들은 이 부문의 진전 여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구조변화인 경기가 지금까지는 국가에 의해 주도돼 왔으나 민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특정국 경기가 민간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용과 설비투자가 늘어야 한다. 그 중에서 고용이 중요하다. 총수요항목별 소득기여도에서 선진국은 70%, 개도국은 60% 정도가 소비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의 부가가치는 증강현실 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정도로 고용이 늘어나기에는 한계가 있다. 4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이 산업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돼 ‘고용 없는 성장’이 심화된다. 이 때문에 고용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기업이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하고 정부의 인위적인 고용창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행인 것은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에 이어 트럼프 정부도 최대 역점을 둬 추진해온 고용창출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질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각종 고용지표들이 풀릴 기미가 뚜렷하다. 미국 기업들도 올해는 설비투자를 대폭 늘려 잡는 신사업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유동성 문제에 있어서는 올해는 정책요인에 의한 유동성 공급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잉유동성 공급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주가가 계속 상승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퇴장됐던 통화가 시중으로 방출돼 증시로 유입될 수 있는 구조변화가 있어야 한다.

지난달 중순 이후 시중자금이 빠르게 증시로 이동되고 있는 움직임이 주춤거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10년 만기 채권금리가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2.6%대에서 최근에는 2.2%대로 오히려 떨어졌다. 트럼프노믹스(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의 불확실성, 고조되는 지정학적 위험 등으로 채권시장에서 이탈됐던 자금이 다시 되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위험자산 투자에 선두에 섰던 스마트 머니에 이어 일반 투자자도 주식투자에 나설 수 있느냐 하는 구조변화가 퇴보되고 있다. 월가의 주식수요기반 대중화 정도를 보면 일반 투자자가 직간접 투자를 통한 주식투자 비중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사태 이전 수준인 70% 정도를 회복해야 구조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 수준을 회복하지 못해 비관론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각종 위기가 어느 정도 거치면 증시를 어렵게 했던 ‘3대 예측실수’들이 투자자들 사이에 거론된다. 이번에도 2009년 ‘누니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대공황 예측’, 2016년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구조적 장기 침체론’에 이어 올해도 ‘애프터 쇼크 혹은 애프터 위기론’이 이 범주에 들어갈 지 관심사다.

위기 10년차에 ‘애프터 크라이시스’로 예상되는 많은 현안 가운데 선진국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문제와 함께 올들어 부쩍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신흥국의 인플레 문제다. 벌써부터 ‘2008년식 나선형 복합위기(물가급등?금리인상?자산가격 급락?마진 콜?디레버리지?투자국 전염?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되는 것인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2008년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보자. 길게 보면 9.11테러 사태 이후 자산시장을 감안하지 않는 통화정책방식인 이른바 ‘그린스펀 독트린’으로 2004년 상반기까지 미국의 기준금리가 1% 수준까지 대폭 인하됐다. 이 때문에 자산가격이 오르고 이에 따른 ‘부(富)의 효과’와 초저금리 효과가 겹치면서 실물경기가 빠르게 회복됐다.

그 후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으나 이미 형성된 저금리와 자산가격간 악순환 나선형 고리(spiral vicious cycle)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면서 자산시장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실물경기도 실제성장률이 잠재수준을 훨씬 웃돌면서 물가압력이 누적됐다.

이런 상황 속에 2007년 여름 휴가철 이후 PIR(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 PER(기업수익대비 주가비율) 등이 일제히 거품신호를 보내자 자산 가격 상승세가 주춤거리면서 저금리와의 악순환 고리가 차단되기 시작됐다. 이때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자부담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때 인플레 우려에 따라 자산 가격 하락을 촉진시켰던 것은 국제유가였다. 2008년 초 불과 70달러대였던 유가가 불과 6개월 사이에 140달러대로 치솟자 인플레 우려가 확산됐고, 자산 가격 급락으로 마진 콜(증거금 부족현상)에 걸린 리먼 브러더스 등 투자은행들이 디레버리지(자산 회수)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됐다.

10년 후인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이번에는 자산시장을 감안한 통화정책 방식인 이른바 ‘버냉키 독트린’으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임에도 부동산 시장이 부진한 점을 들어 ‘제로(0) 금리와 양적완화정책을 추진해 왔다. 최근까지 미국 등 선진국들은 디플레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인플레 부담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을 계기로 금융위기 이후 풀린 자금이 몰리면서 이들 국가의 자산시장이 의외로 빨리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거품 논쟁이 재현되고 있는 미국 증시만 하더라도 미국 중앙은행(Fed)의 가치 모형(FVM=12개월 선행이익률÷10년물 국채금리)으로 현재 주가(S&P500지수) 수준을 평가해 보면 2.2배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은 2.1배에 근접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도 위기 이전 수준보다 높게 올라간 지 오래됐다.



이때 보유자산 매각조치를 지연시킬 경우 ‘후속 위기(after crisis)’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물가가 속속 목표선 위로 올라가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등 선진국은 출구전략을 추진하고 부동산 등 자산 거품이 심한 중국 등 일부 신흥국이 경기회복 여부와 관계없이 긴축을 추진하면서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하락국면에 진입하는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도차는 있지만 최근까지 전개되는 상황만 놓고 본다면 2008년과 흡사해 이러다간 당시의 ‘나선형 복합위기’가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론적으로 최근과 같은 우려가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될 것인가 아니면 ‘위기 축소형’으로 수렴될 것인가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결정된다. 하나는 레버리지 비율(증거금대비 총투자금액)이 얼마나 높으냐와, 다른 하나는 투자분포도가 얼마나 넓으냐 하는 글로벌 정도에 좌우된다. 이 두 지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되고 디레버리지 대상국에서는 위기 발생국보다 더 큰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발생한다.

2008년 당시 인플레 부담으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된 것은 위기 주범이었던 미국 금융사들의 이 두 가지 지표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신흥국들은 두 지표 모두 낮은 편이다. 최악의 경우 통화긴축을 계기로 자산가격이 폭락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신흥국에서 앞으로 자산가격이 급락해 위기가 발생할 경우 그 충격은 자국 국민들에게 대부분 전가된다는 것이 2008년 당시와 다른 점이다. 이 때문에 한국 등 신흥국에서는 벌써부터 외국자금의 엑소더스(exodus,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외국자금의 엑소더스에 대응방안으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사전적 대응방안으로 외국자금 유출입 규제와, 다른 하나는 내부역량 강화방안으로 외환보유액 확충 등이다. 각각의 대응방안에 대한 실효성을 검토해 보면 외국자금 유출입 규제는 기대했던 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반면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방안은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이유는 신흥국들이 자본자유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유입된 외국자금이 이른바 레버리지 투자기법을 즐기는 헤지펀드 등이 주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자금이 예기치 못한 사유로 증거금 부족현상이 발생하면 자본 회수국으로 선택된 신흥국에서 한꺼번에 자금이 이탈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위기발생 억제효과는 크게 나타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