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독살에 신경성 독가스인 'VX'가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23일 밝혔다.
AFP, AP 통신 등에 따르면 말레이 과학기술혁신부 화학국은 부검 샘플을 분석한 결과 'VX'로 불리는 신경작용제 '에틸 S-2-디이소프로필아미노에틸 메틸포스포노티올레이트'가 사망자의 얼굴에서 검출됐다는 잠정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말레이 경찰이 밝혔다.
말레이 화학국은 지난 15일 진행된 김정남에 대한 부검에서 얻은 샘플을 분석해 왔으며 이날 사망자의 눈 점막과 얼굴 부검 샘플에서 VX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VX는 현재까지 알려진 독가스 가운데 가장 유독한 신경작용제로 수 분 만에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무색무취로 호흡기, 직접 섭취, 눈, 피부 등을 통해 인체에 흡수되며 사린가스보다 100배 이상의 독성을 발휘한다.
말레이 경찰은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 명의의 성명에서 VX가 국제협약인 화학무기협약(CWC)에 따라 화학무기로 분류된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물질을 분석한 주체는 말레이 화학국에 있는 화학무기센터로 적혀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역시 VX를 화학전에서만 사용되는 가장 강력한 신경제로 분류하고 있다.
VX는 유엔 결의 687호에 따라 대량살상무기로 분류돼 생산·보유·사용이 금지된다.
칼리드 경찰청장도 이날 기자들에게 김정남 암살에 쓰인 것으로 파악된 신경성 독가스 'VX'와 관련해 "이 가스는 화학무기로, 현재 출처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VX 가스가 북한과 연루돼 있느냐는 질문에는 "거기까지는 나가지 않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말레이 경찰은 사망자의 다른 샘플을 계속 분석 중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일본 NHK 방송은 지난 16일 한국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김정남 암살에 VX 등 독가스가 사용됐을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보도에서 인용한 한국 정부 관계자는 북한 공작원이 VX를 암살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VX를 포함한 신경작용제, 질식작용제 등 모두 25종에 달하는 화학작용제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2천500∼5천t의 화학무기를 저장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한편 다양한 종류의 생물무기를 자체 배양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정남은 지난 13일 두 명의 여성이 얼굴을 감싸는 방식의 공격을 받고 나서 숨졌다.
말레이 경찰은 여성 용의자 두 명이 차례로 김정남의 얼굴을 맨손으로 공격해 얼굴에 독성 물질을 묻힌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칼리드 경찰청장은 김정남의 얼굴에 독극물을 도포한 여성 용의자인 인도네시아 출신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 국적의 도안 티 흐엉(29) 가운데 한 명이 구토를 했다고 밝혀, 이 여성 용의자도 VX에 노출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말레이 경찰은 암살을 실행에 옮긴 여성 2명 외에 북한 용의자가 최소 8명 연루된 것으로 보고 검거된 1명 외 나머지를 추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