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반기업정서 보고서⑤] 정치권이 키운 반기업정서...'부정축재자'에서 '경제민주화'까지

입력 2017-02-23 18:07
수정 2017-02-24 18:28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반기업정서를 고취시키는 사건은 항상 정치 격변기에 맞춰 마치 한 쌍처럼 일어납니다. 모든 정권은 출범기에 재벌기업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단행하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재벌에 대한 전폭적 후원자로 변하는 일이 반복돼 왔습니다. 이같은 일의 반복은 우리나라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으로 남았습니다.

60년대 ‘부정축재자’에서 2000년대 ‘퇴출기업 리스트’까지

6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는 기업인들이 부정축재자라는 논리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뒤로는 차관을 통해 정치자금을 의무적으로 내도록 할당합니다. 기업인들에 대한 긴급구속 조치를 활용하며 정치적 정당성이 부족했던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의 신선을 기업에 대한 분노로 돌리려 했던 것입니다.



<<1973.4.10 반사회적 기업인 처벌조치 당시 신문사설>>

70년대 유신정권은 60년대 부정축재자 단죄 논리를 이름만 바꿔 기업에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1973년 발표된 ‘반사회적 기업인 명단’에 포함된 기업인은 5년 동안 신용대출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금융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어떠한 기준으로 특정인이 반사회적기업인 명단에 포함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80년대 신군부는 강압적인 정권의 요구에 불응하는 기업을 해체하면서 기업을 길들였습니다. 당시 재계 7위까지 성장했던 국제그룹의 해체는 이를 증명하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국제그룹은 정치자금을 정권이 원하는 만큼 내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어 정부의 ‘국제그룹 정상화 대책’ 이후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8년 뒤인 1993년 “공권력에 의한 국제그룹의 전격적인 전면 해체 조치는 헌법에 규정된 개인 기업 자유와 경영권 불간섭의 원칙을 직접적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위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90년대 들어 군부정권과의 차별화가 필요했던 문민정부에서는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의 주 대상에 재벌들을 포함했고,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에는 재벌기업을 IMF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했습니다. 물론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순환출자 구조로 계열사들간 중복 매출을 일으키고 서로 대출을 해주며 부실을 숨겼던 기업들의 잘못도 크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순환출자를 제도적으로 허용해주고 기업들의 건전성을 제대로 평가하고 견제하지 못한 당시 정부의 무능력이 있습니다. 최근들어서도 바뀐 것은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 역시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며 대기업을 민주화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지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업을 압박하고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들의 필요한 부분에 이용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반기업담론은 국가의 상징폭력”

60년대는 부정축재자, 70~80년대는 반사회적 기업인, 90년대에는 부실기업/퇴출기업,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반대편에 재벌을 위치시킨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기업 낙인찍기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개발독재 시대에는 정부는 기업에 특혜를 주면서 한편으로는 채찍으로 길들였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신군부와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기업들이 특혜를 얻는다기 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일종의 보험으로 정부의 요구를 따르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김수한 고려대학교 조교수는 국가가 기업에 ‘상징폭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한국에서 반기업 담론은 특정한 사건이나 특정 기업인 혹은 기업의 일탈적 행동에 의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시기마다 반복적으로 축적된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이 진행한 조사자료를 보면 2008년과 2012년 총선과 2007년과 2012년의 대선을 전후해 기업에 대한 비호감을 표명한 응답자가 70%이상으로 반기업 정서가 평소보다 높게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구조사를 실시한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소득’을 위해 선거 과정에서 반기업 정서를 자극 또는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임병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의 이런 행위가 결국 우리나라 국민들의 기업 반감을 강화시키는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꼬집습니다. 임 교수는 “늘 집에 있을 때마다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본 아이는 집이 싫게 되는데 이는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는 감정과 집이 연합(association)된 것”이라며 “정치인들의 지속적인 반기업정서 자극으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경제기업에도 연합돼 정치와 똑같이 감정적인 혐오감을 갖게 된다”는 풀이를 내놨습니다.

최근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대선 정국 가능성까지 나오는 현재, 정치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쏟아내는 것은 앞서 살펴본 역사적인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 있어서는 총수 구속보다 더 큰 피해가 반기업적 입법과 정책”이라며 “방향이 잘못된 입법이 실행되면 바로잡기도 어려운데다 그 피해는 결국 경제 전체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이 포퓰리즘과 이와 엮인 정치권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경제TV 기획취재팀 신인규·김치형·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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