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TV 스페셜리포트 ②] 반기업정서, '원죄'는 어디에

입력 2017-02-23 17:11
수정 2017-02-24 17:55
<스탠딩>

지금 제 위에 떠 있는 것은 단어 구름, 워드 클라우드입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터넷 등 온라인에서 재벌에 대해 사람들이 찾아본 주제어 가운데 많이 언급된 단어가 이처럼 크게 나타나는데요.

한국 사람들이 재벌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부정적인 먹구름을 만들었고, 왜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까요?

저희가 수집한 최근 5년 간의 빅데이터 자료를 보면 그 실마리가 보입니다.

월평균 2만 건 정도로 검색되던 ‘재벌’이라는 키워드가 갑자기 튀어 오른 3번의 시기가 포착됩니다. 재벌에 대한 검색이 급증해 3만 건을 넘었던 2014년 말.

서비스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되돌리고 승무원을 내리게 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대한항공 오너 3세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월 5만건이 넘는 재벌 관련 빅데이터는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에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불려나올 때 생성됐습니다.

기업과 관련된 부정적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이는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를 더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아시아 기업지배구조협회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 평가 순위는 8위.

일본과 대만에 뒤지는 것은 물론 태국과 말레이시아보다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인터뷰> 이명진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장

“예를 들면 힐튼 그룹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경영은 경영을 잘 하는 사람이 맡는거죠. 그런데 최근에 여러가지 재벌 2세나 3세 일탈행동을 보면, 또 그들이 다 경영에 참여를 하고 있거든요.”

<인터뷰>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많이 투명해지고 상장기업으로서의 여러 가지 거버넌스 구조가 개선됐지만, 문제는 소위 황제세습선단은 하나도 변한게 없다는 거죠. 사람으로서의 재벌 오너나 조직으로나 재벌 대기업이 모두 갑질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인식이 되고 있다, 이 것이죠.

이 같은 기업의 문제가 반기업정서를 유발한 주요 원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한국의 반기업정서를 모두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높은 반기업정서가 정치세력들이 의도적으로 이용하고 키워 온 역사적 구성물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인터뷰> 이명진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장

“기업의 문제와 동시에 정치권의 문제인데, 우리나라 정당이라는 것이 일반 시민들과 완전히 괴리되어 있다. 당원이 없는 정당이다. 정치엘리트들이 하는 거니까 기본적으로 기초가 없고 자생력이 없으니 국가에서 돈을 받아야 하고, 기업을 통해 비밀스런 선거자금을 받아야 하는 그런 구조가 형성되어있지 않나...”

실제 대한민국 역사에서 반기업정서는 정치적 격변기에 맞춰 한 쌍처럼 움직여 왔습니다.

군부 정권은 정치적 기반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부정축재자라는 낙인을 찍고 이를 활용해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반복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70년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게 만든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과 ,

80년대 신군부가 정치자금 요구에 불응한 기업을 해체시킨 국제그룹 사건입니다.

사카린 밀수 사건은 고 이맹희 cj명예 회장의 회고록을 통해 당시 정부가 밀수를 방조 지원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국제그룹은 무리한 기업확장과 부실한 해외기업을 빌미로 회사를 공중분해 시킨 당시 정부의 조치가 헌재의 판결로 밝혀졌습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그리고 최근 최순실 국정 농단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번 정권에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기업 호감도 조사에서도 대선 등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기업에 대한 호감이 줄고 반감이 강해지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 반기업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심해진 소득의 양극화도 반기업 정서 형성에 한몫을 했습니다.

1991년 7.2%였던 우리나라 2인 이상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IMF 직후인 1998년 두자릿 수로 올라선 이후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4.2%까지 높아졌습니다.

상대적 빈곤율은 우리나라 인구를 소득 순으로 줄을 세워 딱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 버는 만큼의 반도 못 버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으냐, 즉 사회 내에 불평등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심리학자들은 국내의 높은 반기업 정서의 한 요인을 사람들의 좌절과 상실감에서 찾습니다.

<인터뷰>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내가 절망적이고 우울하면 어떤 식으로든 설명이 필요한 거에요. 그 설명이 이제, 기업이 부패했다. 정치가 부패했다...요즘 세상은 희망 조차도 없다.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잖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내가 노력하는 것과 상관 없이 사회는 결정이 되어 있다라고 보는 감정이죠."

물론 이런 기업반감이 기업들의 전횡을 막는 견제의 힘으로 작용키도 합니다.

공정거래법의 탄생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발전한 우리나라의 소액주주 운동의 배경에는 반기업정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기업에 대한 반감은 경제활력을 떨어뜨리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 등 제 발등을 찍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일감 몰아주기 이슈로 공공기관 전산통합 사업에 대기업 계열사들의 입찰을 막자 이 시장을 외국계시스템 통합업체들이 싹쓸이 해버린 사례나,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이슈로 대기업의 두부시장 영업을 제한하자 두부시장 규모 자체가 3년 연속 줄어든 것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논란의 중심인 상법개정안 역시 반기업정서에 강력한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인터뷰>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국회를 방문하면서 상법 개정안의 문제를 설명하고 그랬습니다만은 아직도 국회에서는 이해도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근본적으로 상법개정안의 주요 취지가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자고 하는 것인데 개정안을 보면 일단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는 법이고….”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도입 등이 들어있는 이번 상법개정안은 소액주주 권리 강화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외국계 헤지펀드에게 경영권을 위협받고 도리어 주주이익 침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미 상법개정안에 ‘최순실 프레임’을 씌우고 개정안의 긍정적/부정적 효과에 대한 논의는 뒤로 한채 국민들의 높은 기업 반감의 눈치만 살피는 상황입니다.

다니엘 아이젠버그 하버드대 교수는 대기업은 한국의 중요한 자산이라며, 대기업에 향하는 비난에 화살에 정부의 정책이 흔들려선 안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다니엘 아이젠버그 하버드대학교 교수

"사람들이 불평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지라도 정책 결정자들이 이를 과장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에서 그것이 정책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생 기업과 오래된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재벌 기업과 아닌 기업을 정책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한국경제 tv 신인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