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전통과 퓨전의 경계를 뛰어넘어 디테일과 새로움으로 무장

입력 2017-01-31 07:59


MBC 새 월화특별기획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이 30일 대서사의 서막을 열고, 시청자의 마음을 훔쳤다. 사료에 충실한 그림에 현대적 연출을 더해 퓨전 사극과 전통 사극의 경계를 뛰어넘으면서 사극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켰다.

이날 방송은 씨종(대대로 내려가며 종노릇을 하는 사람)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다 ‘아기 장수’로 태어난 아들 홍길동(아역 이로운 분, 윤균상 분)을 온전히 키우기 위해 운명을 거스르기로 마음먹는 아모개의 발버둥이 주축을 이뤘다.

아들 길동이 주인댁 도련님을 향해 절구를 차고, 그 사건으로 아내 금옥(신은정 분)이 마님(서이숙 분)에게 매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아모개는 “이놈의 버릇을 확실히 고치겠다”며 아들을 질질 끌고 뒷산으로 향하지만 핏덩이 같은 것을 어쩌지 못하고 내려와 주인댁에 “재산을 불려 줄 테니 외거(주인집에 거주하지 않고 독립된 가정을 가지면서 자기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던 노비) 시켜달라”고 애걸한다.

단 몇 줄에 불과한 홍길동의 기록에 ‘아기장수’라는 설정을 덧붙인 퓨전사극 ‘역적’은 첫방송부터 빽빽한 밀도로 전통 사극 못지않은 무게감을 자랑했다. 제작발표회 당시 “조선 시대에는 주로 흰 옷을 입었다. 오죽하면 ‘백의민족’이라고 하겠느냐. 그런데 막상 흰색 의상이 그 어디에도 없더라. 일부러 큰돈을 들여 흰색 의상을 제작했다”라고 했던 김진만 감독의 말처럼 이 드라마는 상상을 펼치기 위해 역사에 단단하게 발을 붙인다. 입봉작(MBC 광복절 특집극 ‘절정’)으로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특집극 부문 대상을 거머쥔 황진영 작가는 장면 하나, 대사 한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이 아모개와 홍길동의 서사를 차분히 쌓아나간다.

그럼에도 유쾌한 기조를 잃지 않았다. 혜성처럼 등장해 시청자의 시선을 단번에 훔친 아역 배우 이로운의 맹랑한 매력은 방송 내내 엄마 미소를 짓게 했고, 후에 홍길동 사단으로 합류할 김소부리와 용개를 연기하는 박준규와 이준혁은 등장부터 존재감을 과시했다.

김상중의 연기는 단연 압권. 절굿공이를 한껏 치켜들었지만 차마 아들을 내려치지 못하고 주저앉을 때, 씨종이라는 운명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하는 절망에 빠져 고개를 떨구는 모습은 절규로 다가와 마음을 울린다. 주인댁의 재산을 불려주려다 갈비뼈가 나가고 어금니가 빠져도 외거할 수 있다는 희망에 벅차하는 아모개의 모습은 그의 끝없는 부성애를 보여줬다.

방영 전부터 숱한 화제를 뿌리며 기대감을 키웠던 ‘역적’은 디테일한 연출력과 빼어난 극본, 다층적인 연기력으로 무장해 기대에 꼭 걸맞은 완성도로 첫방송부터 시청자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주인댁과 약속한 재산을 모두 벌어온 아모개, 그는 외거에 성공할 수 있을까. 31일 밤 10시 방송되는 MBC 새 월화특별기획 ‘역적’ 2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