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드레스덴 = 양송이 통신원] "nur Bar moglich!" "현금만 결제 가능!"
독일의 레스토랑이나 상점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문구다.
오늘날 현금 없이 외출해 신용카드 한 장만으로도 커피 한잔부터 식사, 후식까지 문제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편하다고 생각하고 발전한 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혜택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의 경제와 과학 기술을 이끌고 있는 이 고집스러운 나라는 아직도 현금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현금이 없어서 맛집을 찾아왔다가도 발길을 돌리거나 정성스레 고른 기념품을 내려놓는 관광객이 종종 눈에 보인다.
번거로울 수 있지만 오늘날에도 독일인들은 여전히 지폐와 동전을 내고 거슬러 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이들은 언제까지 이 방법을 고수할까?
(▲사진=독일에서 사용되는 화폐 유로. 사진 속 200, 500유로는 실제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출처: http://www.faz.net )
독일에선 어떤 지불 방식을 사용할까
독일에도 현금 이외에 여러 가지 형태의 지불 방식이 존재한다.
신용카드와 지로카드(계좌에서 바로 지급되는 체크카드와 비슷한 형태. 은행과 직접 연계되며 신용카드회사와는 관련이 없다)를 통칭한 플라스틱카드가 존재한다.
그리고 각종 형태의 굿샤인(Gutschein, 일정한 상점 혹은 브랜드에서만 사용 가능한 상품권 형태의 플라스틱카드)이 매우 다양하게 판매, 이용된다.
큰 의류 브랜드 뿐 아니라 슈퍼마켓, 서점, 드럭스토어 등에서 매우 많은 형태와 금액의 굿샤인을 판매하는 것을 독일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모빌페이먼트가 등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거의 사용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사진=플라스틱형태로 다양한 상점에서 판매, 이용되는 굿샤인, 출처: http://monte-mare.de )
온라인에서도 역시 현금이체와 지로카드 그리고 신용카드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젊은 층에서는 페이팔 계좌와 페이디렉트가 사용되기도 한다.
굿샤인 역시 온라인 상점에서도 많이 이용된다. 비트코인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온라인 통화는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이커리, 잡화점, 레스토랑과 같은 일상에서 접하는 곳에서 이러한 여러 가지 선택권은 사실 무의미하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현금결제 혹은 지로카드만 허용할 뿐이다.
독일인들 역시 이 방식을 선호한다.
한 지역은행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53%의 소비가 현금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매우 높은 수치다.
그리고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설문 대상자는 개인적인 소비를 위해 오직 현금만 사용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특히 이미 은퇴를 한 연금 수령자의 경우 이렇게 답한 경우가 많았다.
myMarktforschung.de가 실시한 또 다른 연구조사에선 지로카드가 현금을 앞섰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들은 소매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지불을 하는가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015년 조사에선 현금이 50% 이상을 차지했고 지로카드가 두 번째였다.(당시 지로카드는 EC-cash와 Lastschrift라는 두 분류로 나누어 설문이 실시됐고 2016년에는 두 가지 방식을 합쳐 지로카드로 설문을 진행했다)
하지만 2016년에는 현금의 비중이 약간 줄어들었고 그 대신 지로카드와 신용카드의 비중이 늘었다. 비록 전년보다 줄기는 했지만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계좌에서 바로 지급되는 지로카드는 다른 형태의 현금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진=2016년 독일인의 소매상에서의 지출방식, 출처: https://www.bezahlen.de/wie-deutsche-bezahlen.php )
왜 독일인들은 전통적인 결제방식을 고집할까
제품의 생산에서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독일인들의 가치관은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안전성과 정보 보호 이 두 가지 개념은 독일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다.
이들은 범죄에 오용될 가능성과 정보 유출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독일에서 신용카드가 도매업자 혹은 유통업자가 아닌 일반 소비자에게 자리잡은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일례로 독일의 대표적인 대형슈퍼마켓 브랜드인 리들, 알디 등에서 지로카드가 아닌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해진 것은 2015년 7월부터로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독일의 대형마트에서도 비자나 마스터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결정 또한 편리함을 추구하는 구매자들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 진게 아니라 유럽연합의 신용카드 결제 정책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진= 카드를 이용한 결제는 일상에서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출처: http://www.bezahlen.de )
당연히 신용카드나 핸드폰의 간단한 터치로 이뤄지는 결제는 매우 편리하다. 독일인들도 그것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는다.
지로카드를 사용하며 핀번호를 매번 입력하는 단계와 현금을 받고 동전을 찾아 거슬러 주는 직원의 수고가 사라질 것이다. 이럴 경우 늘 당연하게만 생각해온 계산대의 긴 줄은 훨씬 짧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금 아닌 방식으로 이뤄지는 크고 작은 소비는 타인에 의해 관찰된다. 일상이 디지털화돼 기록되는 것이다. 무엇을 어디에서 언제 어떤 가격에 구매했는지에 대한 모든 정보가 말이다.
이것에 대해 독일인들이 가지는 거부감은 매우 크다.
이와 관련해 연방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한 판사 한스 유르겐파피어는 "기본권의 제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개인정보 보호에 매우 민감한 독일인들은 현금을 사용하고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을 편리함 이상의 큰 가치로 여긴다.
개인금고 판매량과 신용카드 가맹점의 동반성장, 앞으로의 전망은
간단하고 편리해지는 지불 방식 이것은 이미 한국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매우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같은 유럽의 노르웨이나 스웨덴에서도 이미 베이커리나 편의점과 비슷한 형태의 상점에서 대부분 현금없이 결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소비에 75% 이상이 현금을 사용한다.
여전히 현금의 사용이 일반적이어서일까.
2016년에 독일인들은 집에 두는 개인금고를 지난 몇 년보다 더 많이 구매했다. 현금을 다시 은행에서 집으로 이동시키는 추세인 것이다.
그 이유는 낮은 이자 때문이다.
예전에는 계좌에 자산을 유지하면 이자가 붙었지만 지금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거나 거의 없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앞으로 마이너스 이자를 예상하고 있을 정도다.
계좌에 넣어두고 유지하는 돈은 지속적으로 감소세다.
독일에서는 계좌를 사용하는 데에도 유지 비용을 지불하는데 이자마저 마이너스라면 이는 매우 불리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사진=독일인들은 지갑에 평균 103유로의 현금을 소지하며 그 중 6유로를 동전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출처: http://ntv.de, 2015.03.19 )
현금이 아닌 방식의 결제를 사용하려면 계좌 사용과 그 안에 자산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카드나 모바일 형태의 결제 방식은 은행에게 매우 유리한 시스템이다.
실제로 은행들은 새로운 형태의 결제 방식이 더 많이 자리잡고 확장되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여러 결제 방식을 지원하는 소매 가맹점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과연 현금을 대체하는 결제 방식이 금방 자리잡을 수 있을까?
"가까운 미래에 현금 결제 방식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에 4분의 3에 해당하는 독일인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현금 결제가 자유의 한 부분이라고 변호했다.
하지만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15년 전에 이미 독일에서는 수표를 사용하는 방식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새로운 방식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미 20%의 14-29세 독일인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지불을 해봤고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함께 결제 방식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과학과 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선진국이지만 한편으론 우리보다 느리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공존하는 나라 독일.
변화가 느린 생활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상에 다가올지 기대해보며 독일 여행을 앞둔 사람이라면 꼭 현금을 준비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syyang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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