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인영은 주로 도도하거나 악녀의 모습으로 시청자와 관객 앞에 섰다. 영화 '여교사'에서 맡은 역할도 굳이 말하자면 악역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기존에 했던 역할과는 결이 다르다. 유인영이 분하는 혜영은 금수저다. 금수저의 조건을 갖춘 그가 악의 없이 한 말과 행동은 흙수저 효주에게 비수로 날아든다. 악역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단순히 악역으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김태용 감독은 혜영에게 '맑은 악역'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는 계약직 여교사 효주(김하늘)와 정교사 혜영(유인영), 그리고 남학생 재하(이원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인영은 극 중 외모와 집안, 재력을 모두 갖춘 금수저 여교사 혜영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유인영은 '주는 것 없이 미운' 혜영의 천진난만함과 밝음, 얄미움을 잘 표현해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유인영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도 악역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악역'이란 말이 나올 것이라 생각도 못 했어요. 촬영할 때도 왜 악역이란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혜영이라는 캐릭터의 속 마음을 모르겠다. 악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혜영이는 다른 꿍꿍이는 없어요. '이 사람에게 이런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는 캐릭터죠. '이렇게 순수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할 정도 아닌가요?
극 후반부에도 효주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뱉는다. 해맑게 웃으며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데, 정말 악의가 없었을까.
혜영이는 금수저로 자라와서 남에게 일을 시키는 게 일상인 아이죠.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궁금한 부분을 물어본 거예요. 맑고, 순수하고 단순한 아이라서 그래요.
'맑은 악역'이라는 수식어가 생겼더라.
감독님도 '맑은 악역'이라 그래서 '제가 왜 악역이에요?'라고 물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저도 관객의 입장에서 효주의 감정으로 보다 보니 사회생활을 하는 서른 초중반의 여자로 느껴지는 감정이 있더라고요. 혜영이의 행동은 악의 없는 행동이었지만, 효주가 혜영이를 봤을 때 충분히 나빠 보이고 미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 영화 끝나고 나서 보니 얄밉더라고요.
악의 없는 악역이라. 실제로 만나면 별로일 것 같지만, 영화 속 캐릭터로는 매력적이다.
영악하게 머리를 쓰는 아이는 아니에요. 결말 부분에 조금은 속 뒤집어지는 소리를 하긴 하지만, 일부러 작정하고 한 것은 아닐 거예요.
그런 사람 만나본 적 있나.
딱히 비슷한 경험과 사건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게도 알게 모르게 그런 상황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작품을 하고 싶은데 안 됐을 땐데 지인이 '너 다음 작품 언제 해? 뭐해?'라고 의도 없이 말했을 텐데 속상하더라고요. 나도 하고 싶은데 나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그걸 설명할 수 없더라고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상처가 됐어요. 이런 것들이 은근히 있었죠.
오히려 극단적인 악역이면 연기하기 더 쉬웠을 것 같은데 '맑은 악역'은 연기하기 까다롭지 않았나.
드라마 속 악역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던 터라 영화에서도 이 부분이 고민이었죠. 효주를 대할 때 세게 표현해야 하는지 감독님께 여쭤봤지요. 감독님은 자연스럽게 표현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왜 그간 '극과 극으로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회적인 이미지 때문에 악역이 주로 들어오나? 악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유인영이라는 배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워낙 확고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 내 실제 성격의 차이는 커요. 내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여교사'의 혜영도 초반에 맑고 순수한 이미지가 좋았어요. 내가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 나올 수 있는 느낌을 내가 연기할 때 가져다 쓰고 싶었죠.
악녀 이미지로 굳혀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악녀'라는 이미지에 지금은 많이 여유로워졌어요.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생각에서요. 일단 그 이미지로 했던 작품들의 시청률이 잘 나와 기억을 많이 해주고 있기에 고맙죠. 특히 드라마라는 매체의 속성상 이미지 변화를 주는 것은 힘들기에 '여교사'를 터닝포인트 삼아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며 폭을 넓혀가려고요.
하고 싶은 역할은 뭔가.
과거에 모델 활동을 하면서 내가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건 '변화를 잘 받아들인다'였어요.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뚱뚱함과 날씬함 등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거든요. 그런 장점이 연기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해요. '화차'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준 김민희 선배님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최근 본 '미씽'에서 공효진 선배가 여러 가지로 변화하는 캐릭터도 욕심이 나고요.
유인영에게 영화 '여교사'는 어떤 의미인가.
여자들의 이야기라 좋았어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이 시나리오가 제 손안에 들어온 거잖아요. '여교사'로 기존 제 캐릭터에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어서 만족해요. 또 개인적으로도 처음 느낀 것들이 정말 많았던 작품이었어요.
(사진=필라멘트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