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즐기는 게 제가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이에요"[인터뷰]

입력 2016-12-26 16:11


올 한해 쉼 없이 작품을 해온 뮤지컬 배우 허규. '살리에르', '마리아 마리아', '마마돈크라이', '무한동력', '고래고래', 그리고 '오! 캐롤'까지. 이렇게 꾸준히 작품을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오! 캐롤'에서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작곡가를 꿈꾸는 게이브 역을 맡은 허규 배우를 최근 서울 모처에서 만나봤다.

Q. '오! 캐롤'에서 분량이 없어서 힘들지는 않은가?

A. 아니다. 편하고 좋다. 이거 하다가 다른 작품을 할 수 있나 싶기도 하다. 내가 멋있는 캐릭터만 찾아서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재밌는 게 중요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것 위주로 선택을 하는 편이다.

Q. 이미지 변신을 위해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나?

A. 배우들 중에서 본인과 안 맞을 것 같지만 캐릭터 탈피를 위해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용기가 없는 건지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근데 내 스타일 대로 해석을 하는데 의외로 다른 모습처럼 보여졌던 것 같다. 이미지 탈피를 위해서 모험을 하지는 않았는데 본의 아니게 다양한 캐릭터를 하게 됐다.

Q. 팬들에게 잘하기로 유명하다.

A. 내가 그런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친근하게 반응을 해준다. 내가 서태지, 조승우도 아니고 굳이 스타처럼 굴 필요가 없다. 무명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더욱 안 그러려고 의식하는 것도 있다. '뮤지컬 판에서 조금 알려졌다고 건방 떨지 말자'는 생각이다.

Q. 이름이 알려진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나?

A. 지금도 나는 유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뮤지컬 팬들은 좀 알아주지만, 방송 쪽으로 가면 아직 무명이다. 아직도 나는 내가 무명이라고 생각한다.



Q. 참 겸손하다. 배우, 가수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A. 맞다. 실제로 그런 고민을 했다. 정체성에 혼란이 간혹 온다. 배우일 때 모드와 가수의 모드가 있다. 밴드에 집중해서 곡도 쓰곤 하는데 제대로 몰입하기까지 최소한 두 달 이상은 걸린다. 동시에 같이하니까 둘 다 똑바로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좀 되더라. 그래서 부인에게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너무 하찮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지금 그런 걸 고민이라고 하냐'고 하더라.

Q. 뭐라고 조언해준건가?

A. '고민하지 말고 그냥 둘 다 열심히 해' 라고 하더라. 너에게 지금 주어지는 걸 열심히 하라고. 하긴 요즘에 누가 하나만 하나 싶었다. 내 롤모델이 김창완 선배다. 조연도 감칠맛 나게 하고, 밴드 공연도 하고 라디오 DJ도 하는데 그게 내가 다 꿈꾸던 거다. 슈퍼스타가 되기 보다는 잔잔하게 오래가는 조연이고 싶다.

Q. 1년간 쉼없이 공연을 했다. 무대에 서는 원동력이 뭔가?

A. 성격상 나는 재미없으면 잘 못한다. 뮤지컬에 빠지기 시작한 이유가 너무 재밌어서다. 무대에서 재밌어서 노니까 그게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Q. 재미없었던 적은 없나?

A. 에디슨이 '나는 평생 일한 적이 없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게 이해가 간다. 이 일도 스트레스받을 수 있는데, 그래도 재밌으니까 할 수 있는 거다. 재미없을 때는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재미가 없어지는 순간 가짜를 하고 있는 거니까. 그게 내 원동력이다. 아직은 재밌다. '취미가 뭐에요?'라고 물어보는데 나는 취미가 없다. 일이 곧 취미니까.

Q. 내년에 데뷔한 지 20년이 된다. 뮤지컬 배우 허규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A. 내 인생을 보니까 맨땅에 헤딩 스타일이었다. 나는 인생이 계획대로된 건 없었다. 원래 엄청 소심한 아이었고, 전공이 호텔 경영이다. 노래를 취미로 하다가 취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동아리에서 음악을 하기 시작하면서 수업이고 뭐고 안 나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뮤지컬을 하게 됐고 지금의 내가 된 거다. 난 내가 올해도 공연을 6개씩 할 줄 몰랐다. 배우들은 항상 불안해한다. 난 정말 축복받은 거다. 내년에 20주년이라 콘서트 하려고 한다. 일단 '오! 캐롤'을 잘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