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부터 25년간 '위작 스캔들'로 남아있는 고(故) 천경자 화백 작품 '미인도'에 대해 검찰이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문기관의 과학감정, 전문가 안목감정, 미술계 자문 등을 종합한 결과 미인도의 제작기법이 천 화백의 양식과 일치한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또 미인도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최종 이관되기 전 소장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배용원 부장검사)는 올 5월 천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62)씨가 "미인도가 가짜임에도 진품이라고 주장한다"며 전·현직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한 사건을 수사해 이같이 결론지었다고 19일 밝혔다.
김씨가 고소·고발한 6명 가운데 바르토메우 마리(50) 국립미술관장 등 5명은 무혐의 처분했다.
국립미술관 전 학예실장 정모(59)씨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언론 인터뷰에서 "천 화백이 진품을 보지 않고 위작이라고 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적으로 밝혀 논란을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검찰은 논란이 된 미인도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안목감정은 물론 X선·원적외선·컴퓨터 영상분석·DNA 분석 등 과학감정 기법을 총동원했다. 그 결과 천 화백 특유의 작품 제작 방법이 미인도에 그대로 구현됐다고 판단했다.
여러 차례 두텁게 덧칠 작업을 하고 희귀하고 값비싼 '석채' 안료를 사용한 점 등도 위작자의 통상적인 제작 방법과는 다른 점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육안으로는 잘 관찰되지 압인선(날카로운 필기구 등으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자국)이 '여인'(1982년작), '후원'(1977년작) 등 천 화백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미인도에서 나타나는 점도 주요 근거로 꼽았다.
수없이 수정과 덧칠을 반복해 작품 밀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천 화백의 독특한 채색기법도 판단 잣대였다.
덧칠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그림 밑층에 다른 밑그림이 나타나는데 이는 천 화백의 '청춘의 문'(1968년작)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된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 측은 "위작의 경우 원작을 보고 그대로 베끼거나 약간의 변형을 가한 스케치 위에 단시간 내에 채색작업을 진행하므로 다른 밑그림이 발견되기 어렵다"고 판단 배경을 설명했다.
전문가의 안목감정에서도 진품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씨와 피고소인측, 미술계 전문가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선정된 9명의 감정위원 대부분은 석채 사용과 두터운 덧칠, 붓터치, 선의 묘사, 밑그림 위에 수정한 흔적 등을 토대로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애초 위작자로 자처한 권모씨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미인도 원본을 확인한 뒤 "명품에 가까운 수작이다. 위작 수준으로는 절대 흉내낼 수 없다"며 입장을 번복했다고 한다.
다만 고소인측의 비용 부담으로 수행된 프랑스 감정팀의 감정 결과에 대해선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