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전남에서 처음 신고된 조류인플루엔자(AI)가 역대 최고의 속도로 번지면서 전국의 오리와 닭 사육 농가들을 초토화하고 있다.
AI가 처음 발생한 지 불과 28일 만에 1천만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가금류 산업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의 '국가적 재앙'이 됐다.
방역 당국은 AI가 확인되면 반경 500m(관리지역), 3㎞(보호지역), 10㎞(예찰지역)를 방역대로 정하고, 감염 여부에 관계 없이 해당 지역 가금류를 '싹쓸이 살처분'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AI가 발생한 이래 전국 237개 농장 가금류 981만7천 마리가 이렇게 살처분됐다. 253만6천마리가 추가 매몰될 예정이어서 살처분 가금류는 곧 1천만마리를 훌쩍 뛰어넘게 된다.
문제는 무차별적인 '도륙'에도 불구하고 들불처럼 번지는 AI 확산세를 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염 가금류는 물론이고 멀쩡한 닭과 오리까지 묻어버리는 살처분 대책이 과연 능사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AI가 발생한 뒤에야 법석을 떠는 '사후약방문'식 대응이라는 점에서 축산농가들의 불만은 더욱 크다.
AI가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를 보는 점을 고려해 사전 예방에 당국이 더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국이 면밀한 관찰을 통해 AI 바이러스 유입을 제때 파악, 가금류 사육 농장의 조기 출하나 입식 자제를 유도했다면 지금처럼 사육 기반이 붕괴될 지경에 이를 정도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중앙은 비대한 반면 일선에는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재의 AI 방역 체계를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대적인 살처분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든다는 점에서 겨울철 가금류에 대한 '휴업 보상제'를 도입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휴업 보상제는 가을철에 미리 도축해 닭이나 오리 고기를 비축한 뒤 AI가 창궐하는 겨울철에 일시적으로 사육을 전면 중단하고, 그 대신 농가에 보상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예산인데 해마다 AI 때문에 드는 방역비나 살처분 보상금을 고려하면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