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김남길 인생작'이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김남길은 아버지와 형을 불의의 원전 사고로 떠나보내고, 어머니(김영애)와 형수(문정희), 하나뿐인 어린 조카와 살아가는 재혁 역을 맡았다.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인간적이고 털털한 매력으로 돌아온 김남길.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판도라'에는 웃음과 감동이 적절히 섞인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A. 감독님이 '주유소 습격사건'을 쓰셔서 기본적으로 유머 코드가 풍부하시다. 사실 '판도라'에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을 더 넣을 수도 있었다. 내용이 심각하거나 무거울까 봐. 그런데 감독님이 사실적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심각한 상황에 유머코드가 많이 깔린 게 우리나라 정서와 안 맞을 것 같아서.
Q. 시사회에서 훌쩍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A. 스태프들과 함께 봤는데, 사실 전체 시나리오를 훑어보면 끝나고 나서 출구도 못 찾을 정도로 울 줄 알았다. 근데 휴지로 쓱 닦고 끝이더라. 그래서 불안했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말 모르겠다. 현실이랑 비슷해서 '잘 될거다' 라는 시선도 있는데.. 많은 분들이 보시면 참 좋겠지만 우리나라가 잘 되는 영화를 천만으로 기준을 잡아서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관객들이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Q. 너무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 않나?
A. 좀 예민한 부분이 있다. 지진과도 관련이 있는 영화라 실제로 지진이 났던 지역 관객들은 더 불안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도 중요하지만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인재는 우리가 미리 막을 수 있지만 이런 류의 재난은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예방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강구해보자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건데 지진이 피부로 와 닿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게 싫을 수도 있으니까. 또 시국이 안 좋아서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우리 영화의 장점은 울면서 답답하고 화난 마음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갤포스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희망을 주고 싶다.
Q. 영화 보고 울었나?
A. 시나리오 보면서 울었던 장면에서 또 울었다. 내 연기를 보고 운다는 게 좀 그래서 엉엉 울 수는 없었다. 특히 재혁이 의연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을 때 짠했다. 눈물은 났는데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재혁이의 상황이 현실적이고 내 얘기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Q. 영화에서 좋았던 장면은 뭔가?
A. 재혁이가 마지막에 의연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게 오히려 좋았다. 재난 상황에서 너무 아무렇지 않았다면 액션 히어로물처럼 보였을 텐데 애국심이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지 않고 공포스러운 본능이 잘 나온 것 같아서 좋았다.
Q. 촬영할 때 힘들진 않았나?
A.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다른 영화보다 압박감이 좀 셌다.
Q. 재혁 연기할 때 참고한 캐릭터가 있나?
A. 처음에는 아마겟돈을 참고했다. 전문적인 느낌은 브루스윌리스와 차이가 있으니까 정서적인 부분을 많이 봤다. 근데 참고할만한 게 별로 없더라. 그래서 뭘 참고한다기보다는 나한테 맞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김남길다운 게 뭘까 생각했던 것 같다. 평상시 모습을 찍어두고 보면서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했다. 내가 출연했던 작품이나 연기를 보기도 했다.
Q. CG가 생각보다 좋았다.
A. 세트를 만들어 주셔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만 볼 때는 원자력 발전소 구조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CG로 구현되니까 쉽게 와 닿더라.
Q. '해적'에서도 그렇고 실제 공간이 아닌 곳에서 촬영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A. '모던보이' 경성역도 일제시대 배경이었기 때문에 CG였다. 시나리오에서 볼 때랑 실제 연기할 때 장소가 주는 느낌이 다른데 내가 좀 무뎌서 그런가 실제 공간이 아니라고 해도 부담이 있지는 않았다.
(사진 제공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