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국내주식과 채권 시장에 투자할 자금을 위탁운용할 운용사들을 추가로 선정했습니다. 주식은 가치형을 비롯해 액티브퀀트형과 중소형주형 등 10곳을 선정했고 채권은 7곳의 운용사를 신규로 지정했습니다.
국내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의 파워는 실로 엄청납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가 운용하는 자산만 500조원이 넘고 투자자산으로 보면 국내 채권에 287조원을 국내주식시장 시장에는 거의 100조원을 투자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국민연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척이나 큽니다. 뭘 사느냐 무엇을 팔았느냐가 투자자들에게는 초미에 관심이고 자산운용사들은 국민연금이 맡기는 돈을 받고 싶어 혈안이 됩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국민연금의 위탁자금을 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운용사와 자문사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물론 대놓고 얘기는 못합니다. 국민연금에 미운털이 박히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연금 등쌀을 이겨내기 힘드니까요.
"운용 간섭 너무심해...추구하는 운용스타일과 가치를 잃는 게 더 손해"
국민연금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겁니다. 다들 받으려고 안달인데 안받는 게 아니라 못 받으니 하는 얘기라구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얼마 전 만난 모 인사는 "앞으로 국민연금 위탁자금을 받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워낙 단기성과를 가지고 위탁사들을 괴롭히는데다 지난 6월 운용 가이드라인까지 변경하며 간섭이 더 심해졌다"는 겁니다. 실제 국민연금은 지난 6월 국내 주식에 투자되는 위탁자금의 시장 복제율을 60%이상으로 올리라는 일종의 지침을 내렸습니다. 이 때문에 시장 흐름을 쫓기 위해 코스피 200 중심의 대형주 위주의 투자가 이뤄졌고 중소형주 중심의 코스닥 시장이 크게 하락하는 등 시장이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인사는 "물론 식당이 단체손님 안받는다고 하면 큰 돈 벌기는 힘들어지겠지만 단체 손님 받다가 제대로된 음식 못 내놔 지금까지 쌓아둔 자신들의 명성이 망가지는 게 더 손해"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수익률 점검은 그래도 이해하지만 위탁자금에 대해 이렇게 운용해라 저렇게 운용해라 하는 식의 지침을 내리는 것은 정말 잘 못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외연기금은 성과보다는 운용사의 색깔 유지를 더 중요한 가치로 평가"
또 다른 인사와 만나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회사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해외 연기금의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대표는 저에게 "올해 000 해외기금에서 위탁자금을 추가로 받았어요. 그런데 재밌게도 우리 펀드의 성과가 좀 안좋거든요." 라며 자랑아닌 자랑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너무 궁금해서 "성과가 이렇게 안좋은데 왜 자금을 더 주느냐?"라고 질문을 해 이런 답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000해외연기금 위탁자금 담당자는 "우리는 당신 회사를 위탁사로 선정할 때 수익률 보다 당신들이 내걸고 있는 운용 스타일과 운용하며 추구하는 가치를 그동안 얼마나 성실히 유지해 왔느냐를 중요하게 봤습니다. 지난해 우리가 맡긴 자금의 수익률은 저조하지만 당신들은 우리가 자산 배분상 맡겨야할 투자 스타일에 적합한 운용사로 선정됏고 지난 1년 그 스타일을 잘 유지하며 운용했기 때문에 좋은 평가가 나왔습니다. 그 평가에 상응해 추가 투자가 집행 된 것입니다."
이 회사의 대표는 이 대답을 듣고 해외 연기금들이 그렇다는 얘기는 들어왔지만 사실 놀랐다며 "이제는 국민연금 위탁자금에 목메지 않고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를 인정해 주는 이런 자금을 최대한 많이 받으려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사과나무 심으라 준 땅에 절반은 벼농사 지으라 요구하는 꼴"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많은 땅을 소유한 지방의 한 대 지주가 있습니다. 이 지주는 자신이 소유한 땅을 논과 밭으로 그리고 채소나 화훼 심지어 과수원으로 까지 다양하게 이용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내로라는 농사꾼들에게 좋은 조건을 내걸고 땅을 빌려주겠다고 합니다. 농사 각 분야에서 2등이라면 서러워할 농사꾼들이 경쟁을 통해 이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합니다. 계약조건은 일당도 주고 작물을 수확할 때 풍작이면 작물의 일부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땅주인이 농사꾼들을 간섭하기 시작합니다. 여기 저기서 돌아다니며 들어보니 올해는 벼농사가 큰 돈을 번다는 얘기를 들은 겁니다. 자신이 생각해 봐도 채소, 꽃 같은 작물보다 쌀이 사려는 사람도 많고 값도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섭니다. 그래서 밭농사와 채소, 화훼 여기에 과수 농가의 농사꾼을 불러 놓고 "내가 준 땅의 절반은 모두 논농사를 지으라"고 말합니다.
농부은 화들짝 놀랍니다. 밭작물을 심고 과수 재배하는 땅에 논농사를 지으라니요? 더구나 이들은 논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 말이죠. 결국 이들은 이럴거면 그냥 논농사 잘 짓는 사람을 뽑지 우릴 왜 뽑았냐며 한숨만 짓습니다. 척박한 땅에 벼농사를 갑자기 시작하니 잘 될리 만무합니다. 또 갑작스레 그해 벼에 큰 병충해가 들어 그 대지주의 한해 농사는 큰 피해를 입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올해 시행한 시장복제율 상향이 이런 상황이 아닐까요?
주식투자라는 형식은 같지만 가치주 펀드나 중소형주 펀드 또는 사회책임 투자 등 투자 스타일이 다른 펀드들은 투자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시장에 어떤 변수가 발생하면 이들 펀드가 받는 영향도 서로 조금씩은 다릅니다. 과연 대형주로 쏠림을 유발하는 국민연금의 운용지침은 맞는 걸까요?
"20~30년 내다보지 못하고 연기금이 3~5년에 얽매여"
연기금의 가장 큰 장점은 장기투자입니다. 가입자들이 적어도 10년 길게는 30년 이상 지속적으로 돈을 쌓아주니 자신이 투자한 자산이 제대로 평가 받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식 시장이 일시적 충격에 크게 하락하거나 불경기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연기금들은 과감히 자산을 매입하곤 합니다.
또 워낙 장기간 운용하기 때문에 투자 자산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이클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투자자산은 물론 지역별로 자산배분 전략을 수립합니다. 예를들어 주식투자도 국내주식에 얼마 해외에 얼마 또 해외는 선진국에 얼마 신흥국에 얼마 이런 식이죠. 다시 자산을 기준으로 보면 주식에 얼마 채권에 얼마 여기에 부동산 등 대체투자는 얼마 이렇게 말입니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시 주식에서도 스타일 별로 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에 얼마 성장주에 얼마 가치주는 얼마 중소형주는 얼마 이렇게 말입니다.
복잡하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특정 자산에 자금을 몰아줬을 경우 예상치 못한 여러 이벤트에 전체 자산이 충격을 덜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식이 흔들리면 채권으로 이들이 모두 흔들리더라도 부동산 등으로 벌충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올해 이상하게도 유독 시장에 중소형주 쏠림이 강했다며 위탁자금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미 다양하게 자산배분이 돼 있는 상태임에도 유독 국내 주식형에 한해서만 시장 복제율을 일괄적으로 상향한 것이죠. 기금 운용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지만 이 때문에 주식시장에서는 대형주 쏠림 현상이 나타났고 최근 이런 것들이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치적인 해우이가 아니였냐는 의혹까지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정말 중소형주 쏠림이 심했던 걸까?"
쏠림이란 상당히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중소형주로 많이 자금이 들어가면 이걸 쏠림이라고 할까요? 사실 주식시장에서는 항상 유망업종이나 성장산업으로 투자금이 몰리게 돼 있습니다. 예를들어 최근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IPO 과정에 일반 투자자들의 자금이 10조원이나 몰렸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이것을 쏠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미래성장산업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하지요. 코스닥 시장에 최근 2~3년간 투자금이 많이 몰린 것은 대기업 위주의 성장구도가 깨지며 우리나라를 이끌 미래산업에 대한 가능성을 품은 제약과 바이오 여기에 화장품과 게임 등 다양한 산업으로 투자금이 흘러들면서 일겁니다.
또 돈이 많이 들어왔다고 무조건 쏠림일까요? 갑자기 한 사람의 몸무게가 10Kg이나 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몸무게 만으로 이 사람을 비만으로 분류하진 않습니다. 몸무게가 10kg이나 늘었지만 그러면서 이 사람의 키가 15cm가 자랐다면 말이죠. 증권 시장도 그렇습니다. 투자가 많이되고 주가가 덩달아 많은 상승을 했다하더라도 기업들의 이익이 그만큼 늘고 기업이 커졌다면 그 기업의 주가를 높다고 보지 않는거죠.
일단 주가의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 중 하나인 주가수익비율(PER)을 살펴보겠습니다.
2013년 코스닥 시장의 평균 PER은 무려 96배나 됐습니다. 하지만 2014년에 42배로 그리고 지난해엔 39배로 떨어졌죠. 이 시기는 국민연금이 중소형주를 적극적으로 투자하던 시기입니다. 그 만큼 많은 자금이 코스닥 시장으로 유입되며 주가도 올랐지만 그에 상승해 기업들의 이익도 크게 늘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국민연금이 주로 투자하는 코스닥 시장의 시총 상위 기업들의 이익 성장률은 코스피 시총 상위기업들의 이익성장률을 크게 뛰어넘습니다. 최근 3년간 양 시장의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의 영업이익 증감율 평균을 보면 코스피는 2014년 -9.45%에서 2015년 13.25%로 그리고 올해는 12.2%로 나온 반면 코스닥은 2014년 24.9%에서 2015년 12.4% 그리고 올해는 24.9%로 나왔습니다. (에프앤가이드 자료)
"국민연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흔드는 꼴"
혹자는 국민연금이 자신의 노후도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도 한번에 흔들고 있는 것이라고 평합니다. 이른바 패시브 전략 강화로 나타난 대형주 위주의 투자가 투자 자산의 안전성을 위협해 국민들의 노후자금의 재원인 국민연금기금의 고갈 시기를 더 앞당기는 것이며 미래성장산업의 씨앗 역할을 할 유망 중소기업으로 들어가던 자금의 흐름을 끊어 주력산업을 대체할 미래산업의 육성마저 힘들게 한다는 얘깁니다.
금융시장에서는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을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부릅니다.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는 요즘 국민들은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에 촛불을 밝히며 자신들의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데요.
투자자들도 촛불이라도 키고 국민연금으로 가야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