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를 통해 제주항공 항공권을 구입한 최모씨는 출발을 하루 앞두고 수하물을 추가하기 위해 항공사와 수십차례 전화연결을 시도했다. 출발 하루 전까지 수하물 추가를 신청하면 비용을 50%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 뿐인 대표번호로 담당자와 통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모델인 송중기의 목소리만 계속 들려와 속이 터졌다.
전날 홈페이지 문의란에도 글을 남겼지만 "출발 하루 전에 신청하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던 터라 더욱 애가 탔다. 최씨는 답답한 마음에 제주항공 공식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남겼다. 그러자 한 시간만에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와 추가 수하물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었다.
최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새로운 고객불만 접수 창구로 부상하고 있다.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절차가 간단하고, SNS라는 채널 특성상 담당자가 실시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농심 페이스북 캡쳐)
고객은 편리해졌지만 기업들은 불편하다. 마케팅과 홍보의 장으로 열어둔 채널에 올라오는 고객불만 사항이 그 자체만으로도 큰 부담이다. 숨기고 싶은 내용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 칭찬에는 빠른 반응..비판엔 '무대응'
연착과 안전 등 민감한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항공사의 경우 특히 현장에서 발생하는 긴박한 상황이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공개되는 고객 불만에도 SNS 운영자들은 딱히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객불만 접수업무 담당부서가 엄연히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SNS 운영을 통으로 대행사에 맡기고 있어 고객불만을 섣불리 대응하기 힘든게 현실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사 불만의 경우 특히 '보상'과 관련된 내용이 많기 때문에 SNS를 운영하는 홍보실 차원에서 대응하기 힘든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도 "민감한 사안이 터졌을 때 창구가 여러개면 혼란스러울 수 있어 SNS 불만은 고객서비스 부서로 전달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 SNS에는 긍정적인 내용에만 빠르게 답변한다며 고객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특히 항공사의 SNS는 외국 고객들과도 소통의 창구로 이용되고 있는데 비즈니스석 왕복 항공권을 구입한 고객의 요청에는 빠르게 답변이 올라와 일반고객의 불만 목소리는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 대한항공 페이스북 캡쳐)
◇ 정용진 부회장의 SNS..고객불만 폭탄에 '소극적'으로 후퇴
최근 개장한 쇼핑몰 하남 스타필드의 SNS 홍보대사를 자처했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개장 전부터 입점 브랜드를 하나 하나 소개하고 개장 이후 입점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모습을 공개할 정도로 고객들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섰지만 최근 '소극적'인 운영으로 돌아섰다.
개장과 동시에 SNS를 통해 고객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뜻을 직접 밝혔지만 고객들은 '좋은 첫인상'보다는 개선해야 할 점들을 일제히 쏟아냈다.
주차가 불편하다거나 화장실 찾는게 힘들고 엘리베이터 운영에 문제가 있다든지 안내원이 부족하고 수유실은 아기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만든 것 같다는 구체적인 문제점이 올라왔다.
한 고객은 화장실 가방걸이에 손가락이 찢어져 피가 났다는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고객들의 글 하나 하나는 화가 난 상태의 '불만'이라기 보다 정 부회장의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좋은 점수의 '성적표'를 기대했던 정 부회장은 지나치게 짠 고객들의 점수에 실망한 듯 불만접수 게시물은 이후 슬그머니 사라졌다.
(▲사진=정용진 부회장 페이스북 캡쳐 / 하남 스타필드 개장 이후 고객과의 소통모습. 현재는 관련 게시물이 삭제됐다. / 출처:한국경제DB)
신세계그룹은 정 부회장의 홍보 활동을 '개인의 활동'으로 선을 긋고 있다. 정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SNS를 운영한 것이어서 "개인 SNS에 접수된 불만들을 회사 차원에서 해결하는 움직임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각 계열사별로 고객을 담당하는 부서가 온라인·오프라인 상에 마련돼 있기 때문에 그 채널로 접수된 불만사항들이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된다는 설명이다.
고객들과 소통하려는 오너의 적극적인 시도는 고객들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졌고 홍보와 마케팅 면에서 기업에도 많은 도움이 됐지만 끝까지 유지되진 못했다. 대기업들 역시 SNS라는 새로운 채널 운영이 아직은 서툴다는 반증이다.
(▲ CJONE 공식 페이스북 캡쳐)
SNS 사용자는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올 2분기(4~6월) 페이스북의 전세계 이용자 수는 월평균 17억명을 돌파했다. 전년대비 15% 늘어난 수치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인스타그램도 전세계 이용자가 월평균 5억명을 넘어설 정도로 꾸준히 늘고 있다.
각 기업들은 점차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SNS에서 팬수를 늘리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선 부정적인 내용이 쉽게 공론화 될 수 있다는 것에 큰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 그룹들은 SNS 대응팀을 별도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식품 등 소비자와 밀접한 제품을 만드는 한 그룹 관계자는 "홍보실 차원에서 SNS 위기 대응팀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가 지금은 보류된 상태"라며 "하지만 SNS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언제든 꾸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SNS는 분명 기업이 적은 비용으로 자사 브랜드와 제품을 알릴 수 있는 훌륭한 무대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부정적인 여론이 생산되고 확산되는 진원지로 한 순간에 돌변할 수도 있다.
하루가 다르게 영토를 넓혀가고 있는 SNS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수준높은 위기관리 능력을 기업에게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