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미국 간 ‘세기의 세금전쟁’이 시작됐다. EU집행위원회가 아일랜드 소재 애플에 130억 유로(원화로 16조원)를 세금 추징한 것에 대해 아일랜드 뿐만 아니라 미국도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EU집행위는 룩셈부르크에 소재한 아마존, 월마트와 같은 미국기업에 대해 같은 조치를 구상 중이다.
아일랜드는 세계 3대 조세회피지역이다. 조세회피지역은 낮은 세율로 다국적기업과 고소득자를 유치해 재정보전과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국가를 말한다. 아일랜드가 PIIGS(포르투칼·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중 가장 빨리 재정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세회피지역의 이점을 활용한 위기 극복책도 한 몫 했다.
EU집행위의 세금 추징조치를 수용한다면 현재 아일랜드 내 활동하는 10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의 ‘대탈출(great exodus)’을 촉진시킬 계기가 될 수 있다. 당사자인 애플보다 아일랜드가 더 발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국이 해외에 나가있는 자국기업을 재유치하는 ‘리쇼오링’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의외로 빨리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아일랜드 내부에서는 EU에서 탈퇴하자는 ‘아일렉시티(Irexit=Ireland+Exit)’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재정위기 극복과정에서 아일랜드 국민은 EU의 강력한 긴축요구로 고통과 불만이 의외로 높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된 상황에서 아일랜드까지 가세될 경우 100년 이상 공들여왔던 유럽통합이 깨지게 된다.
전통적인 EU와 미국 간 우호관계에도 균열이 예상된다. 중국의 주도권을 겨냥해 추진해 왔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이 사실상 결렬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의도적인 유로화 약세책으로 미국은 오랫동안 피해를 받아왔다. 무역과 통화에 이어 세금전쟁까지 가세될 경우 경제관계에서 최악의 시나리오인 ‘3중 전쟁(triple war)’을 맞을 수 있다.
지난해 11월 터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구글세 도입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구글세란 애플, 구글 등과 같은 다국적기업(주로 IT기업)이 고세율 국가에서 얻은 이윤을 저세율 국가의 자회사로 넘겨 조세 회피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부과되는 세금을 말한다. BEPS(국가 간 세원잠식 및 소득이전) 협정에 정면으로 위반되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EU외 미국 간 세금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애플이 세금을 피해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보자. 첫 사전준비 단계로 세금이 낮은 조세회피지역에 사무실을 차리고, 그곳에서 자회사인 ‘애플 아일랜드’를 설립한다. 애플 아일랜드는 전 세계 애플이 벌어들이는 이윤이 모이게 될 장소다.
그 다음 소득이전 단계로 애플 본사는 아일랜드에 미국을 제외한 해외법인의 지적재산권 등 모든 소득원천을 넘긴다. 확보된 지적재산권 등을 활용해 아일랜드는 전 세계 애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해외법인으로부터 거액의 로열티를 받는다. 이 경우 애플 본사 소재국인 미국은 ‘세원잠식(base erosion)’이 당하는 대신 자회사가 있는 아일랜드 ’소득이전(profit shifting)‘이 발생하는 셈이다.
최종 조세회피 단계에서는 받은 로열티에 대해 법인세를 내는 게 원칙이지만, 애플 아일랜드는 조세회피지역에서 모든 업무를 총괄하므로 비거주자(외국인)로 간주돼 이 국가의 세법을 적용받는다. 대부분 조세회피지역의 법인세율은 아주 낮거나 아예 부과하지 않아 세금을 적게 내거나 한 푼도 안낼 수 있다. 애플의 로열티를 받았다면 미국의 세법이 적용돼 법인세율 35%가 부과된다.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규모는 상상을 추월할 정도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BEPS로 인한 법인세 수입 감소액이 매년 전 세계 법인세 수입액의 4∼1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1000억∼2400억달러(원화로 환산하면 116조5000억∼279조7000억원)에 달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빠른 시일 안에 구글세와 같은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불과 4년 후인 2020년에는 BEPS로 인한 법인세 수입 감소액이 5000억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현재 IT 업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조세회피기업도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앞으로 각국이 구글세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 재정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에 다른 세수감소와 경기부양 차원의 대규모 재정지출로 대부분 국가가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대비 250%에 달할 정도다.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를 맞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던 IT와 제조업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IT업종은 ‘수확체증의 법칙(생산할수록 생산성 증가)’, 제조업은 ‘수확체감의 법칙(생산할수록 생산성 감소)’이 적용된다. IT기업에 대해 구글세가 부과되지 않으면 일종의 특혜로 두 업종의 속성 상 불균형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신러다이트(IT 파괴) 운동 등 기형적인 IT 급성장에 따른 사회병리현상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추진해온 제조업 부활정책을 구글세 도입 논의와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IT 업종의 확산으로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감소될 것으로 예상됐던 뇌물공여가 오히려 증가하는 이른바 ‘부패의 수수께끼’도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구글세 도입은 국제조세제도 역사상 획기적인 일로 각국 조세행정과 재정수지, 산업과 업종별 증시 명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돼 왔다. 빠르면 내년부터 도입될 것으로 예상됐던 구글세가 EU와 미국 간 세금전쟁으로 차질이 빚을 경우 이 모든 효과를 포기해야 한다. 세계 경제와 각국 재정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불행한 일을 맞게 되는 셈이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