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적인 이야기 탈피한 <범죄의 여왕>
그동안 영화는 대부분 남성 중심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개의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캐릭터들의 조력자 역할 정도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이 아닌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서사를 이끄는 영화가 여럿 등장했다.
<캐롤>의 캐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찾아가고, 수동적인 삶을 살던 테레즈도 결국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살기로 한다. <아가씨>의 히데코와 숙희는 고립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나아가고, <굿바이 싱글>은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 캐릭터를 묘사한다. 특히 <아가씨>, <비밀은 없다>, <범죄의 여왕> 등은 남자 배우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던 장르물에서 여자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이기에 더욱 눈길이 간다.
<범죄의 여왕>에는 오지랖 넓은 시골 아줌마 미경이 등장한다. 미경에게는 서울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있다. 금이야 옥이야 기른 아들이 사법고시씩이나 준비한다는데 행여 밥이라도 굶을까 미경은 마냥 애가 탄다. 그러던 어느 날, 살고 있는 고시원에서 수도 요금이 120만 원이나 나왔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그 길로 미경은 지체 없이 서울행을 택한다. 핑곗김에 아들 얼굴도 보고 밥도 챙기고 빨래도 해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들에게 엄마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그냥 돈이나 부쳐 달라'는 아들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미경은 말도 안 되는 수도요금의 실체를 알아야겠다며 며칠간 눌러앉는다.
아들이 허락한 기간은 단 이틀, 미경도 처음엔 아들 얼굴도 봤겠다 대충 알아보고 말 참이었다. 그런데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틀 안에 그 뭔가가 손에 잡히진 않는다. 엄마와 떨어지고 싶어 난리가 난 아들의 안달에도 불구, 미경은 이제부터 내 멋대로 하겠다고 선언을 해버린다.
아들 앞에서는 자기 인생도 없는 것처럼 굴었던 미경의 선언은 꽤 충격적이다. 그저 아들밖에 모르고 살던 촌부가 범죄에 연루되었을지도 모르는 사건을 제 손으로, 그것이 비록 전혀 과학적이지 않고 전문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지만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영화의 줄거리다.
<범죄의 여왕>이 다른 영화와 다른 점은?
능동적인 여성을 그렸다는 점에서 <범죄의 여왕>은 앞서 말한 영화와 결을 같이 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미경이 <캐롤>의 테레즈나 <아가씨>의 히데코처럼 의존적이었다가 주체적으로 변해간다거나 수동적이었다가 능동적으로 변해가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의 다분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이 아들이라는 옵션 앞에서만 사라질 뿐 능동적인 여성은 그녀의 원래 모습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미경이 원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에피소드가 서사를 만든다. 미경의 당당하고 저돌적인 행동은 핀잔이나 던질 줄 알았던 아들의 인정마저 끌어낸다. 미경의 이야기에 공감이 가는 것은 그녀가 멋진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굿바이 싱글>의 주연은 톱스타이고, <아가씨>의 히데코는 귀족이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정치인의 부인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산다. 하지만 미경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다. 그래서 미경의 서사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평범함이야 말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강력한 한방이다. 무수히 평범한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친근하게 소환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 자꾸 집에 있는 누군가가 생각난다. 지금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되어버린 그 사람 말이다. 우리에게 아침밥을 챙겨주고 빨래를 하며 안부를 묻는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미경이 온 몸을 던져가며 보여주고 있다. <범죄의 여왕>은 가능하면 가족과 함께 보자. 가족 중 누군가에겐 놀라움을, 누군가에겐 위로를, 누군가에겐 용기를 전해줄 것이다.
8월 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