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덕혜옹주’ 손예진 “역사적인 인물 연기, 기본적인 자세가 달랐어요”

입력 2016-08-08 09:47


‘청순의 아이콘’ 손예진은 충무로의 독보적인 여배우로 성장했다.

여배우가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한정적인 충무로에서 원 톱 여주인공으로 존재감을 잃지 않고 있는 손예진은 결코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코미디, 멜로, 액션, 스릴러까지 ‘다양성’을 존중하는 만큼 그의 작품세계와 필모그래피 역시 흥미롭다.

다채로운 연기력과 최고의 티켓파워까지 입증한 손예진이 영화 ‘덕혜옹주’를 통해 다시 한 번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2년여 만에 출연하는 사극 장르의 작품을 통해 한층 깊어진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손예진을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영화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를 원작으로 한 영화 ‘덕혜옹주’는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이자 흥행 여제로 자리매김한 손예진의 덕혜옹주 역 캐스팅 소식만으로도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촬영 내내 책임감과 부담감이 뒤따른 것은 사실이지만, 덕혜옹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그녀의 삶을 영화 속에 잘 담아 관객들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실존 인물인 덕혜옹주를 연기하기 위해 사명감과 부담감을 느꼈던 손예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관련 다큐멘터리와 자료를 찾아 연구했고,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상황 속에서 인물의 특징을 재현하는 등 남다른 열정을 기울였다.

“역사적인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기본적인 자세가 달랐어요. 이미 소설 ‘덕혜옹주’를 읽었어요.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인물이고, 여자의 일생 담고 있으니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허진호 감독님이 ‘덕혜옹주’를 만드신다는 얘기를 기사로 접했어요. 감독님의 덕혜옹주도 궁금했고, 누가 이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했어요.”



고종의 금지옥엽 고명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고종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게 되자 덕혜옹주는 만 13세가 되던 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으로 끌려가게 된다. 매일같이 고국 땅을 그리워하며 일제로부터 시달림을 받은 덕혜옹주. 그때부터 덕혜옹주의 삶은 달라졌다. 일본 백작인 소 다케유키와 강제로 정략결혼을 하게 됐고, 조현병에 걸려 정신병원에도 입원했다. 남편과 이혼 후 딸 정혜를 잃었고 1962년에 이르러서야 고국 땅을 밝을 수 있었다.

“‘덕혜옹주’는 한 여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요. 상업영화다 보니까 어떻게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애써서 이야기를 가공해낸 듯한 영화를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려진 역사적 자료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이 더 컸어요. 보는 분들에 따라 호불호도 갈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기대 보다 더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해요. ‘비밀은 없다’를 해봤기 때문에 감정의 폭발이나, 절제하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고민과 고통은 어떤 작품을 해도 항상 수반되는 것이지만 ‘덕혜옹주’는 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지난 15년 동안 내가 해왔던 것들이 녹아든 작품이에요. 이런 작품을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죠.”

13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간 덕혜옹주의 유일한 동무인 궁녀 복순 역에는 라미란이 열연했다. 외롭고 쓸쓸한 덕혜옹주의 곁을 지키며 가족보다 끈끈한 우애를 나누는 역이다. 덕혜옹주와 복순이 이별하는 장면과 세월이 흘러 공항에서 재회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덕혜에겐 복순 같은 경우가 진짜 유일한 동무였는데, 그 인물마저 곁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니까 슬픔이 배가 됐던 것 같아요. 복순에게 얼른 떠나라고 하는 그 장면이 자칫하면 감정 과잉처럼 보일 수 있었는데, 크게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 다행이에요. 공항에서 재회 장면을 찍으면서 (라)미란 언니가 엄청 울었어요. 헤어지고 처음 보는 거잖아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무조건 ‘이 역할은 라미란 언니다’라고 생각했어요. 언니가 ‘응답하라 1988’과 ‘덕혜옹주’를 동시에 찍었어요. 매일 밤새고 촬영장에 와서 힘들었을 텐데 웃겨주고 힘을 줬어요.”

손예진은 ‘덕혜옹주’에서 노인 역할까지 소화해야 했다. 구부정한 자세와 초점 없는 눈빛, 자신이 처한 상황에 반쯤 미쳐버렸던 덕혜옹주를 표현해야 했다.

“정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노인 분장을 했는데, 덕혜옹주가 아닌 손예진이 보이면 안 되잖아요. 결국 내린 결론이 내 얼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분장을 하자였어요. 그래서 영화 출연을 결정짓고 노인 분장부터 해봤어요. 어색하지 않으면서 관객들이 몰입하는 데 도움을 주는 노역을 하고 싶었죠. 삶의 애환을 분장으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손예진의 연기는 허진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만나 빛을 발한다. 허진호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 ‘외출’ 등으로 유명하다. 특히 2005년 ‘외출’에서 손예진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10여년 만에 ‘덕혜옹주’라는 엄청난 영화로 감독님과 다시 만나게 됐어요. ‘덕혜옹주’는 제가 연기 생활을 하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시나리오였어요. 비극적인 역사만큼이나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만일 신인 감독님이나 내가 잘 모르는 감독님께서 연출하셨다면 고민을 살짝 했을 거예요. 허진호 감독님이라 믿고 출연했던 것도 있어요. 다음에는 감독님과는 코미디 장르를 찍어보고 싶어요. 감독님도 저도 코미디를 좋아해요. 가끔 리허설 때도 코미디로 흘러 갈 때도 있어요.”

‘덕혜옹주’는 덕혜옹주를 연기한 3명의 배우 손예진, 김소현, 신린아의 싱크로율이 화제가 됐다. 신린아는 덕혜옹주의 유년시절을, 김소현은 10대 소녀 시절을 맡았다. 특히 손예진을 가장 좋아하는 선배 배우 중 한 명으로 꼽았던 김소현은 이번 덕혜옹주를 통해 성인 배우 못지않은 깊은 감성까지 고스란히 표현해 내며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

“(김)소현 양과 닮아서 너무 좋았어요. 항상 인터뷰를 통해 저와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해서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소현 양이 절제되면서도 위엄 있는 덕혜옹주를 잘 표현해줬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성인의 덕혜옹주로 넘어올 수 있었어요.”

입국을 거부당한 후 미쳐버리는 신은 역대급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장면은 손예진의 연기 열정이 뚜렷이 드러난 대목이다.

“‘이런 표정을 지어야지’라고 마음먹고 연기한 적은 없어요. 현장 분위기와 상황에 취했던 것 같아요. 입국 거부를 당하고 한택수를 연기한 윤제문 선배님이 나에게 다가오는데 온 몸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경악하는 표정 속에 끔찍함도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 심정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 같아요. 찍으면서 가슴이 아팠던 장면이에요.”



손예진은 ‘국가대표2’를 통해 스포츠 여제로 변신한 수애와 대결을 펼친다. 이번 대결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1999년 연예계 데뷔 동기이기 때문이다. 손예진과 수애는 기존과는 180도 다른 이미지 변신과 깊어진 연기력으로 무장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하는데, ‘덕혜옹주’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앞으로 ‘덕혜옹주’ 같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영화의 다양성도 확보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동안 다행히도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보여드릴 기회가 많았어요. 그런데, 또 ‘덕혜옹주’ 같은 역할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손예진은 충무로 여배우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한다. 2000년 데뷔한 이래 ‘클래식’, ‘연애소설’, ‘내 머릿 속의 지우개’, ‘작업의 정석’, ‘아내가 결혼했다’, ‘오싹한 연애’, ‘타워’, ‘해적:바다로 간 산적’, ‘비밀은 없다’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호평을 받았다.

“해왔던 역할, 비슷한 것들은 재미없는 것 같고 해보지 않은 역할들이 신선하게 다가와요. 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 작품이 있어요. 오랫동안 연기생활을 하고 싶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손예진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후배들이 존경스럽고 부럽다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손예진은 현재 충무로 여배우 캐스팅 0순위다. 여배우 중에서 몇 안 되는 열심히 일하는 배우다. 장르, 캐릭터의 폭도 넓다. 그런데도 여전히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다.

“연기가 감정적으로 힘든 작업이다 보니 언제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외로움과 고독함과 싸움이죠. 그런 시점에서는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감사하게 되요. 힘들지만 힘들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하면 허무함과 서운함도 있죠. 그러나 항상 그런 지점에서는 담담해야 해요. 칭찬을 해주셨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큰 의미가 있죠.”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국가대표2’, ‘터널’과의 여름대전에서 '덕혜옹주' 손예진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