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편. ‘생산 카르텔’과 ‘죄수 딜레마’로 본 국제유가…‘파이널 드로’에 다시 빠지나?

입력 2016-08-01 09:03


국제 유가가 다시 ‘파이널 드로(final draw)’ 국면에 놓여 있다. 파이널 드로란 전쟁에서 뚫리면 패전과 직결되는 최후 방어선으로 손익 분기점과는 다른 개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원유생산업체는 손익 분기점은 배럴당 50달러 내외로 보는 반면 파이널 드로는 40달러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유선물시장에서 콘탱고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조만간 유가가 40달러 선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콘탱고는 공급과잉 우려가 근(近)원물 가격에 반영되면서 원(遠)원물 가격보다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작년 여름과 비슷한 상황으로 그 후 유가는 올해 2월초까지 30달러 밑으로 급락했다.

유가가 40달러 밑으로 재차 떨어지면 세계경제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하반기 이후 유가가 파이널 드로 국면에 빠지면서 베네수엘라 등 원유 수출국은 경제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중동 산유국은 오랜만에 악화된 재정사정을 보충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다. 각국 경제에 ‘D’ 공포를 몰고 와 종전 통화정책의 뿌리를 흔들어 놓았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그 어느 국가보다 컸다. 국내 건설사의 중동 수주뿐만 아니라 대중동 수출도 급감했다. 미국, 유럽 등 잇따른 선진국 위기 속에 피난처(shelter) 목적으로 들어왔던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회원국의 국부펀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40달러 붕괴 초읽기에 들어간 최근 유가 움직임과 관련해 두 가지 의문점이 있다. 하나는 이미 한 차례 파이널 드로 국면에 처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왜 감산을 통해 유가 떠받치기에 노력하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을 비롯한 비OPEC 산유국도 감산은 고사하고 증산에 또다시 열을 올리느냐 하는 점이다.

OPEC는 대표적인 생산 카르텔이다. 회원국 간 결속력 못지않게 감산해 유가도 끌어 올리면서 원유판매대금도 늘리려면 원유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비탄력적’이어야 한다. 만약 탄력적이라면 감산하더라도 유가 상승폭보다 원유수요 감소폭이 더 크게 줄어들어 원유판매대금이 감산 이전보다 줄어드는 자충수를 두게 된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특정재화의 가격이 변하면 그 재화의 수요량이 얼마나 변동하는가를 나타내주는 지표다. 수요량 변동량(?Q/Q)를 가격 변동폭(?P/P)으로 나눠 산출한다. ‘1’보다 크면 ‘탄력적’, 작으면 ‘비탄력적’이라 부른다. 특정재화의 대체재가 많아질수록 탄력적으로 변한다.

원유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다른 ‘D1’은 탄력적, ‘D2’는 비탄력적인 원유수요곡선이 있다고 하자. OPEC 회원국이 감산하면 원유공급곡선은 S1에서 S2로 좌상향으로 이동하게 된다. 각각의 원유판매대금은 ‘D1’일 때에는 감산 이전보다 작아지고, ‘D2’일 때에는 훨씬 커지게 된다. 원유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탄력적일수록 원유판매대금은 줄어들게 된다.

1960년 9월 창립된 OPEC은 두 차례의 오일 쇼크가 발생했던 1980년대 이전까지는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그 후 대체에너지 개발이 속속 이뤄지면서 국제원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고 원유수요곡선도 탄력적으로 변해 감산하더라도 원유판매대금이 늘어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이 세일가스 개발 등으로 원유판매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비OPEC 국가도 유가가 급락하는데도 감산보다 증산에 참여하게 하느냐를 간단한 게임이론인 ‘죄수의 딜레마’로 풀어보자. 국제원유시장은 OPEC와 비OPEC 국가로 양분돼 있다. 갈수록 비OPEC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두 시장참여자가 쓸 수 있는 전략을 ‘감산’과 ‘증산’ 밖에 없다고 가정하면 그 답은 명확하다.

OPEC 회원국과 비OPEC 국가가 감산하면 최소한 유가는 오른다. 하지만 상대방이 증산하게 되면 오히려 감산에 참여한 시장 참여자만 손해를 보게 된다. 특히 최근처럼 원유공급물량이 적체된 상황에서는 감산한 국가는 유가와 생산량이 동시에 떨어져 원유판매대금이 급감하고 상대방에게 주도권도 빼앗기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모두 증산에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게임 결과(‘내쉬 균형’이라 부른다)가 도출된다.

앞으로 유가는 공급 요인보다 수요 요인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원유 최대 수입국인 중국을 비롯한 세계경기 둔화, 파리 신(新)기후체제에 따른 화석연료 규제 등을 감안하면 원유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적다. 대부분 예측기관이 ‘파이널 드로’라 여기는 40달러 붕괴 여부와 관계없이 유가가 크게 오르지 못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