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기업부실 책임은 모두 국책은행 몫?‥쓴 웃음짓는 금융권

입력 2016-07-12 14:34
수정 2016-07-12 14:47
“타이타닉 침몰의 원인과 책임이 비단 선장에만 쏠리지 않는 이유는 책임 소재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국책은행 고위 관계자)



“해양플랜트를 육성하겠다며 각종 정책과 지원안을 쏟아내고 주문하던 주무부처와 유관기관, 정부, 정치권의 종합 산물..산업재편에 대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금융사 최고위 관계자)



“정책실패·경영패착에 따른 부실과 피해를 책임지는 이는 어디에도 없다. 국책은행, 해당기업, 노조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뿐” (조선사 노조관계자)





[사진] 영화 '타이타닉'에서 선주인 브루스 이스메이가 어물쩍 구명보트를 타려다 항해사와 마주치지만 몰염치하게 아랑곳 않고 보트에 오르는 장면

“영화 타이타닉에서 침몰 직전 염치도 없이 구명보트에 스리슬쩍 올라타 저 혼자만 ‘아비규환’의 배에서 일신을 챙기던 선주(船主) 기억 하시나요”

최근 기업구조조정 이슈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던 한 국책은행 고위관계자는 기자에게 제임스 카메룬의 작품 중 걸작으로 손에 꼽히는 영화인 타이타닉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이 고위 관계자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은 이렇습니다.

1912년 4월 2천2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북대서양을 횡단하던 중 빙산과 충돌하며 1천500명의 사망자를 내고 침몰한 초대형 여객선 타이타닉의 처녀 운항의 결말과 그 과정, 책임 소재를 최근의 기업구조조정에 빚 댄 것입니다.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대규모 자금을 수혈 받는 국책은행으로서 관리감독 부실, 방만경영 방임, 낙하산 등 뭇매를 맞는 것에 대해 책임은 통감하지만 모든 것이 국책은행만의 책임이겠냐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선장·선주·설계자의 태만과 방심·오판이 부른 참사

“타이타닉의 침몰을 보면 배의 속도와 방향, 객실과 기관실 등을 총괄하는 선장의 오판과 관리감독 부실 등 분명 잘못이 있지만 선주와 설계자, 당시의 시대적 흐름 등이 뒤얽혀있는 복합적인 책임 구조 아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주변 유람선과 여객선의 무선을 통한 빙하 경고에도 배의 속도를 높이고 항로를 유지했던 존 스미스 선장.

초호화 여객선의 속도와 기술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선주 브루스 이스메이의 부추김과 선장에 대한 외압.

배의 미관을 해칠 것을 우려해 구명보트를 규정보다 적게 탑재토록한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 당시의 시대적 상황 등을 봐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장은 빙산 경고에도 선주의 외압과 최단기간 항해 기록 경신 이라는 유혹을 못 이겨냈고 선주는 승객의 안전 보다는 경쟁 선박회사에 우위

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전속력으로 항해하라며 끊임없이 압력을 넣었습니다.

*관리태만·방만경영·정책실패 등이 부른 조선사 부실

구명보트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몇 명이라도 더 앉히고 정원을 꽉 채운 뒤 바다에 내렸어도 모자랄 판에 정원을 다 채우지도 않고 서둘러 바다로 내려 보내 피해를 키우는 등 각종 부실과 의혹, 상식을 벗어난 최근 부실기업의 방만경영, 관리감독, 정책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1912년 당시 뛰어나지 못했던 제강 기술로 인해 타이타닉 건조에 사용된 강철에 불순물인 황과 인이 다량으로 포함돼 선체가 차가운 바다에서 취성이 증가했고 빙산과의 충돌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당시의 시대적인 기술력과 제반 여건도 사고의 주된 요인으로 꼽힙니다.

침몰에 대비해 선원들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했어야 했지만 출항일정을 서두르는 바람에 이 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타이타닉 침몰은 말 그대로 당시 이해관계자들과 상황 등 총체적인 부실의 산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최근 조선사 부실의 근원으로 꼽히는 해양플랜트와 낙하산, 관리감독 부실, 방만경영, 정부 정책, 성과급 잔치, 시대적 정황 등을 감안할 때 정치권과 정부, 금융·산업당국, 국책은행, 경영진과 임직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유독 국책은행에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음을 에둘러 설명한 셈입니다

당시 해양플랜트 산업을 육성하자며 각종 정책을 내놓고 금융·수출 유관기관을 동원하고 신성장 동력 육성과 고용 창출, 경제 부양 등 당시 정치권과 정부, 산업·금융당국은 각종 자료를 쏟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해양플랜트 신성장동력 선정· 정책 지원한 정부·당국 ‘나 몰라라’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성장 산업으로 육성·지원이 이뤄졌고, 앞을 내다보지 못한 정부와 당국의 산업·금융정책이 이를 뒷받침하다 보니 곳곳에 낙하산 인사들이 자연스레 배치되기에 이르렀다는 설명도 더해집니다.

그 사이 경영진과 임직원들도 비상식적인 숫자놀음에 근간한 성과급과 연봉 잔치 등 자기 몫만 챙기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조선업이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타이타닉처럼 두 동강이 난 채 침몰 직전에 이르게 됐다는 지적도 덧붙입니다.

이 같은 견해는 여타 국책은행과 특수은행, 해당 조선사 구성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국책은행 중견 간부는 “정부와 당국의 지시, 가이드라인 등에 따른 부실기업 지원, 인사 파견 등이 이뤄졌지만 결국 모든 비난은 국책은행이 맞고 손실 분담은 해당 조선사 구성원들이 지는 형국”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최근 파업 결정을 내린 한 조선사의 노조관계자는 “해양플랜트에 따른 손실, 낙하산 인사와 관리감독 태만에 따른 지적과 고통전가 요구만 있을 뿐 산업정책, 금융정책 등 정책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며 “정책실패와 경영실패에 따른 책임 규명 없는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불합리한 처사”라며 수화기 너머로 격앙된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산업재편에 따른 정책·비전 없는 구조조정 구태 여전”



금융사의 한 최고위 관계자는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숱한 구조조정을 해 왔는 데 매번 방식은 이전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산업정책과 비전에 따른 구조조정이 전개돼야 하는 데 종합적인 정책, 지원안, 비전 자체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타이타닉의 침몰 사례는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에서도 침몰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오판을 하고 대응을 잘 못했지만 수습에서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며 최근 구조조정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선장은 끝까지 배에 남아 사태를 수습하며 배와 명운을 같이했고 설계자 역시 자신의 잘못된 설계와 판단을 인정하며 승객과 승무원들의 대피에 힘을 쏟습니다.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일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일부 철강사업가 등 고위층 인사의 경우 구명보트에 먼저 오를 수도 있었지만 가족과 수행원, 승무원들을 먼저 챙긴 뒤 배와 함께 최후를 맞는 책임 의식을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기업부실 책임 실종‥부처 보신주의·책임 회피 공분”



침몰직전 구명보트가 하나 둘 바다에 내려지며 몇 대 남지 않자 안절부절하다 여자와 어린이, 노인 등 노약자를 먼저 태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아이를 한 명을 품에 안고 구명보트에 한 자리를 꿰찬 선주의 행태에서는 모두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부실과 의혹, 잇속 챙기기에 급급했던 조선사 부실의 이해관계자들이 책임은 지지않고 ‘나만 아니면 돼’ 식으로 발뺌하고 뒷전에 빠져 있는 행태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 조선사의 고위 관계자는 “당시 해양플랜트는 원천기술 등 기술력으로나 부품 자립도 측면에서나, 일본도 쉽게 뛰어들지 못했던 부분인데 손을 대지 말아야 할 것을 대 버린 격”이라며 “산업정책 측면과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무모한 측면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해양플랜트 관련 기술과 경험, 레퍼런스, 실적, 부품 기자재 자립도가 취약한 상황에서 무리한 수주경쟁, 저가 수주 등을 통해 지금의 손실을 초래한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문제는 구조조정 작업이 한창인 지금도 해당 주무부처와 당시 해양플랜트 드라이브를 진두지휘, 독려했던 인사들의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물론 향후 산업정책 비전 제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정치권·당국 개입·낙하산 병폐‥설겆이는 국책은행 '몫'

국책은행과 시중은행, 해당 부실기업만 다그치고 설겆이를 떠 맡기는 한편 인력감축 등 손실 분담이라는 이전의 구조조정만 있을 뿐 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침몰 직전 위기에 처한 승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탈출시키기 위해 노력한 항해사와 승무원들, 승객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침몰 직적까지 연주를 하면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선상의 음악가 등 우리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명감과 책임의식입니다.

타이타닉 침몰 이후 운항 원칙과 항해술, 선반건조 기술, 책임 의식, 영국 금융권내 변화 등 새로운 전기를 맞았듯이 우리 기업구조조정도 땜질식 처방이 아닌 시스템, 인프라화 되어야 하지만 이 역시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AIIB 부총재직 상실‥구조조정 책임 회피·부실 의혹 논란의 '결정판'

최근 천문학적인 자금을 태우고도 기업부실과 의혹에서 ‘왜 나만’ ‘나 혼자 죽을 수 없다“ 식의 대응으로 일관하다 AIIB 부총재직 상실로 이어진 사태는 결국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외압에 따른 부작용, 기업 부실·책임 회피라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 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실과 관련해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면서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책임의 소재가 분명해야 함과 동시에 향후 산업정책에 근거한 구조조정 원칙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적당히 덮고 국책은행만 비난받고 해당 조선사 구성원들에 대한 대규모 살생부 작성, 몇 명의 책임자·CEO만 문책하고 끝내기에는 우리경제가 갈 길이 너무 멀고 험난한 데다 새로운 산업재편의 시기가 이미 도래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